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들 중에서

‘참된 기독교’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란 어떤 것인가?

가톨릭일까, 루터파일까, 츠빙글리파일까

재세례파일까, 후스파 일까, 칼빈파일까?

진실로 종교적인 문제에서 절대적 확실성이 존재하는가? 

진정 성서의 말씀은 언제나 해석이 가능한가? 

독선가인 칼빈과는 반대로

카스텔리오는 겸손하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하고 있다.

 

종교의 진실은 본성상 신비로운 것이며,

일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끝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사랑이 사람들을 깨우치고

최후의 말씀을 보존하지 않는 경우에

그런 논쟁에서 한없이 피가 흘렀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은 부족할 수도,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호 간의 관용이 첫 번째 의무라는 뜻이다.

 

누군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거품을 물고 미쳐 날뛰는 일이 왜 필요한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혹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 대해

너무나도 뚜렷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오만하게 다른 사람을 멸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오만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다면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오직 완고함 때문에 반항이 생겨나고

정신적으로 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잔인한 행동을 하려는 저 거칠고 야만적인 욕망이 생겨난다. 

오늘날 이런 선동적인 비방에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열을 올리고 있다.

카스 테리오는 단 한 가지만이

이러한 야만성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관용이었다. 

우리의 세계는 단 한 가지가 아니라

수많은 진리들을 위한 공간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서로 나란히 모여 살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신념을 판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평신도 훈련 > 읽어볼만한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0) 2021.02.18
하나님과 문화  (0) 2019.12.14
회개  (0) 2019.11.23
내 안에 죄 죽이기  (0) 2019.10.25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0) 2019.10.05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