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그의 직무에 있어서

많은 사역을 행하시는데 거기에는 회심,

특별히 중생이 포함되고,

또한 그는 우리를 성화시키는 사역을 하십니다.

덧붙이면 성령은 확신과 보증,

그리고 그와 더불어 증거와 증언 및 봉사와

사역의 문제에 있어서 위대한 활동을 하십니다.

성령의 이러한 사역들을 분명한 구별이 있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는 끝없는 혼란이 있게 됩니다.

그의 사역은 이렇게 분류되어 질 수 있습니다.

즉 일반사역과 특수사역,

다른 말로 쉽게 표현하면 그의 간접사역과 직접사역입니다.

 

성령은 오늘날 교회에 임재해 계시며,

또한 그곳에서 일반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역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의미하고 있는 것은 성령의 일반사역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독교의 부흥에 대해 살펴보는 그 순간,

그것들이 교회사에 현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그것들은 성령의 사역이며

성령이 동작주(operator)가 되시지만,

그는 이제 예외적이고 드문 방식으로 작용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이가 바로 성령이신데,

그의 일반사역, 즉 성령은 우리 마음에 그의 뜻을 밝히시며,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열어 보이시며,

우리를 가르치는 자나 전파자로 사용하십니다.

지금 성령의 사역이 다소 간접적이지만,

그러나 성령께서 직접적인 방식으로 작용하신다는 것이 분명하며 명백합니다.

 

실로 이것은 구약에 있는 성령의 사역과 신약의 성령의 사역과의

뚜렷하고도 가장 큰 차이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성령은 특별하고 직접적인 사역을 위하여 구약에서는 어떤 사람,

즉 선택된 사람, 예를 들면 선지자와 같은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고,

그들이 일종의 무아경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가 그들 가운데 조용히 역사하고,

또 그들의 능력을 조금 높여 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는데,

계시와 능력에 관한 의식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사역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은 그 특별한 목적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엘이 말했듯이 이와 같은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임하실 때를 우리가 보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큰 차이점은 성령을 받게 될 사람들이

아주 다양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풍성함과 부요함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사에서 특히 부흥기들에 있어서

아주 흔하게 입증되어 온 것입니다.

 

저는 300년 전의 청교도들 가운데 위대한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존 오웬 박사의 진술을 인용하려 합니다.

이것은 그의 글 “성령과 교제에 대한 논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들이나 그 자신의 사역들,

혹은 어떤 논리나 추론과 결론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부어 주시고 또 즉각적인 사역,

마치 성령께서 엘리사벳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라이의 방문을 받았을 때,

세례요한을 복중에서 기뻐 뛰어놀도록 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실 때,

그때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또한 기쁨과 환희가 넘쳐 나게 됩니다“

 

이제 존 오웬과 같은 사람으로 그와 동시대 사람이며,

이 영적 창공에 밝게 비추고 있는,

또 다른 별인 토마스 굳인 박사의 글을 인용하려 합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에 임하시고 인간을 압도하시며,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또 그는 하나님의 것임을 확신시켜 주며,

그리고 하나님이 영원부터 

그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빛은 일반적이 신앙의 빛을 넘어선 빛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고 있는 요점인데 즉 일반적이 아니라 예외입니다.

토마스 굳윈에 따르면 이것은 어떤 다른 것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여러분을 하늘나라에 더 가까이 인도하는 체험으로,

그것은 실로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 엄중한 경고를 주어야 할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이것은 평상적인 아니라

바로 천국 문에 이르기 위한 비상하여 예외적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것을 넘어선 단 한 가지의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그 자체가 영원한 영광입니다.

 

저는 여러 면에서 여기 두 사람과는 아주 다른,

특별히 그의 신학에 있어서 다른 사람인 요한 웨슬리의 글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는 18세기의 사람으로 청교도나 개혁주의나 칼빈주의자가 아니라,

알미니안 교리의 선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확하게도 위의 두 사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반성이나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즉적적이고 직접적인 어떤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평강과 사랑을 미리 맛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기만이 아니라

참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증거를 가지기

오래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회 역사상 세 분의 뛰어난 사람들에 의한

성경적 교훈에 대한 가르침과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세 분 모두는 체험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이고

또 압도적인 성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교회의 생활에서 이것과 성령의 일반작용과를 혼동하는 것은,

실제로 매우 중대한 면에서 성경을 오해하는 것이며,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짓는 데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제가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코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이란 이 구절을 설명해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러분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할 시금석입니다.

 

오늘날 제가 느끼는 우리의 가장 큰 위험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억제를 옹호할 때가 아닙니다.

즉 오늘날 교회에서 자제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깨어 일어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에서 교회가 약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이드 존스 『성령 세례』

'평신도 훈련 > 읽어볼만한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0) 2019.02.12
성령의 주권적 사역  (0) 2019.01.11
주의 영광을 보여 주소서  (0) 2018.10.07
성령의 능력에 관한 솔직한 대화  (0) 2018.09.20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0) 2018.07.1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