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 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지식과 체험을

갈망해 본적이 있습니까?

모세는 바로 그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고 인자하게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 주십니다.

 

이것은 모세에게만 해당하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사야도 한번은 하나님을 어렴풋이 적이 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5).

그는 너무나 놀라 비틀거릴 정도였습니다.

사도 요한도 영광을 언뜻 보게 되었을 ,

“발아래 엎드려져 죽은 같이 되매” 라고 말했습니다(:17).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과 똑같은 육신을 입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그러한 체험을 하지 못합니까?

어째서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서 조금 밖에 알지 못합니까?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17:3).

단지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어떻게 말했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14 전에 하늘로 올리움을 받는 체험을 했습니다.

안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기이하여서 자기는 진실로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적나라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사람들에게만 일어난 일이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러한 가능성들을 인식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또한 여러 세기에 걸쳐 하나님 자신을 추구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숲속에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에

체험한 것을 기술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을 읽어 적이 있습니까?

또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위대한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드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이야기를 읽어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 세대와 보다 가까운 사람을 소개 한자면 무디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어렴풋이 보여주셨을 ,

그는 하나님께 그만 손을 거두어 달라고 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죽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육체적 체질이 영광 아래서 부서지고 녹아지는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손을 거두어 달라고 요구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것들을 자주 읽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광의 임재 속에서 또는 임재에  대해서 느끼고는

문자 그대로 땅에 엎드러져 기절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기절하거나 죽은 것처럼 되었다는

기록을 읽을 놀라서는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러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감당할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의 부분적인 특성입니다.

그러나 응답은 부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분명합니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보여 주소서”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것을 구하십시오.

교회를 위해서,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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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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