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 노르웨이의 오슬로가 그랬다.

그녀는 내가 그곳의 교회에서 설교한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오슬로에 그녀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즉시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방문 약속을 잡았다.

친구들이 그녀를 집회 장소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테레시아는 돈을 모아서 왕복 비행기 표를 샀다. 

떠나기 전에 나이로비의 모든 친구들이 그녀와 함께 기도했고,

그녀가 갈망하는 성령의 불을 받아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오슬로의 교회가 문을 열자마자 테레시아가 먼저 들어갔다.

교회에 사람들이 가득 때까지 테레시아는 앉아서 기다렸다.

그때 지역에 사는 자매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했다.

“당신이 하나님께 받기 원하는 어떤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당신에게 주시겠다고 제게 말씀하셨어요”

그것은 놀라운 확증이었다.

테레시아는 자매에게 감사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어 강대상에 올라간 나는 테레시아의 존재를 금세 알아챘다.

노르웨이 교회에서 아프리카 여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은 그녀는 눈에 띄었다.

내가 병자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하면

그녀는 기도를 받으러 쏜살같이 달려 나갈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미 8년이란 시간을 기다렸지만 다음 초청까지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내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앞으로 달려 나와 앞에 서서 기대감에 떨고 있었다.

 

다음에 일어난 일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고

테레시아는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내가 그녀의 머리에 안수했는지 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그것을 인식할 겨를이 없었다.

하나님의 불은 손의 안수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여하간 나는 그녀의 머리에 안수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강력한 힘에 의해 아래로 밀려 넘어져 공중으로…

힘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녀의 신발이 양쪽 벗겨졌다.

한쪽 신발은 노르웨이 청중들 한가운데 떨어졌는데 다시 찾을 없었다.

 

오슬로의 집회가 끝났고 나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때 테레시아는 교회 바닥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서 친구들이 그녀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그리고 그날 신었던 신발 짝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밤에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기 위해

신발 짝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테레시아에게 부으신 기름부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녀는 축복을 헛되이 받지 않았다.

테레시아는 사역의 능력을 받으려고 왔기에 사역을 것이었다.

1988 우후루 공원에서 울던 여자 테레시아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었다.

“오 하나님, 본케 목사님에게 10 명의 영혼들을 주실 있으시다면

제게 100명을 100명이라도 주세요.

주여, 그러면 저는 행복한 여자가 되겠습니다”

 

테레시아는 오늘날 매우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

아프리카 사람들 입에 그녀의 이름이 회자된다.

나는 그녀의 승리를 전해 듣고 주님께 물었다.

“왜 주님께서는 위대한 사역에 이혼녀를 선택하셨습니까?

우리 성경학교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많은 훌륭한 남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대신 테레시아를 선택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을 내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테리시아를 선택한 것은 내가 깨어진 그릇을 취하여

영광의 그릇으로 만들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말씀이 나를 얼마나 겸손케 했는지 모른다.

 

오슬로 집회 2 그리고 내가 우후루 공원에서 설교한지 정확히 10 후인 1998

나는 아내 아니와 나이로비를 방문했다.

우리는 공원 옆의 호텔에 묵었다.

나는 일부러 첫째 주일에 그곳에 찾았다.

그날 우후루 공원에는 20 명이 모였다.

테레시아는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설교했고,

수천 명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마치 사도행전이 계속되고 있는 같았다.

 

라인하르트 본케 『부흥, 성령의 축제』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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