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3:5).

죄를 죽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성도들이다(3:1).  중생하지 못한 사람도 죄를 죽이는 일을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법대로 그 일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것을 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순서에 따라 먼저 해야 할 다른 의무가 있다.

 

1. 성령을 소유한 자만이 죄를 죽일 수 있다

성령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죄를 죽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장님이 보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것이 성령 없이 죄를 죽이는 일보다 더 쉽다.  사람이 죄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8:9).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그분에게 관심을 갖는 자는 성령을 소유한 자이다.  그런 자만이 죄를 죽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 점을 바울은 상세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8). 

타락한 상태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8:9).  즉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성도만이 육신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이 당신 안에 있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물론 여전히 당신의 몸은 죄로 인해 죽은상태에 놓이게 된다(8:10).  하지만 죄를 죽이는 삶을 계속 수행하게 되어 새로운 속사람이 의를 위해 살아나게 된다.  바울은 로마서 811절에서 이 진리를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연합 교리로 설명한다.  이 연합을 통해 그 분에게 이루어졌던 역사가 우리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 정욕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망상이다.

 

2. 죄를 죽이는 일은 거듭남과 관련이 있다.

죄를 죽이는 일은 기본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실로 하나님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처음부터 죄를 죽이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먼저 해야할 일은 회심이다.  즉 전 영혼의 회심이지 특정한 정욕을 죽이는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죄를 자각했을 때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2:37).  그래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울부짖었다.  이때 베드로가 그들에게 내린 지침은 무엇이었는가?  베드로는 그들에게 교만, 분노, 악의, 잔인함 등과 같은 죄를 죽이라고 말했는가?  아니다.  그는 죄를 죽이는 일이 지금 당장 그들의 할 일이 아님을 알았다.  대신 배드로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했다(2:38).  그들의 영혼이 먼저 완전히 변화되어 자신들이 찌른 부님을 진정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그들이 낮아져서 죄를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요점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 성도가 아닌 사람은 아무리 그럴듯한 노력으로 죄를 죽이려고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열심과 열정, 그리고 세심함으로 마음과 생각에 대항해서 싸울이지라도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정욕을 허락하신 이유

특정한 정욕이 활개치며 당신을 지배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주의 깊게 동행하지 않는 데서 파생된 결과이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일반적인 의미에서 죄의 정욕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믿음이 좋은 휼륭한 사람일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진실로 정욕은 교활하고 간교하며 반항하여 사람을 유혹한다.  사람이 정욕의 뿌리이자 근원인 자신의 마음을 부지런히 성찰하고 무엇보다도 생명과 죽음의 원천인 마음을 다스린다면 정욕은 시들해져서 죽게 된다.  하지만 방심하게 되면 정욕은 특정한 방법으로 붙출되어 우리의 감정을 통해 생각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를 짓도록 유혹한다.

둘째,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정욕을 허락해서 우리의 태만을 징계하시기도 한다.  악인인 경우 하나님은 그들이 짓는 특정한 죄를 징벌하기 위해 다른 죄를 짓도록 하신다(1:26).  즉 조그만한 죄를 심판하기 위해서 더 큰 죄를 짓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이와 같이 행동하신다.  그래서 믿는 자들의 나쁜 점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목적으로 여러 난처한 상황들을 허락하신다.  바울에게서 사탄의 가시는 그로 하여금 충분한 영적계시를 통해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후 12:7).  또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그의 헛된 자만심을 교정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결론적으로 죄의 정욕의 위력은 이와 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정욕의 지배를 잠시 허락하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부주의한 신앙생활을 징계하며 교정하신다.  이같은 사실을 고려할 때 전체적인 삶이 개혁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한 정욕을 죽이려는 인간적 시도는 분명히 잘못된 발상이다.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정욕을 철저하게 죽이고자 한다면 모든 부분에서 부지런하게 순중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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