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진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사실로는

그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싶어 하며 자신들의 입을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게 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라고 권면하고 싶어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감정이 은혜롭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 이 부분에 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그리스도인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 듯 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을 반대하는 논거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은혜를 받지 않고서도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고조된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며 그들이 체험하는 김정이 강해지면 스스로 감화 받는 일들을 매우 진지하게 많이 말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은혜로운 감정에 모조품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사람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 듯 하다는 역시 그 사람을 지지하는 논거로 합당하게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그런 실례들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그 사실은 더 분명하고도 직접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예수께서 설교하시고 기적을 행하실 때에 함께 했던 군중 가운데서 종종 이런 사례를 접하게 된다.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했다하더라’(막 2:12, 마 9:8, 눅 5:26).  그리스도께서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일으키셨을 때에도(눅 7:16), 그들이 그분께 영광을 돌리거나 그를 극도로 칭찬하는 것을 읽게 된다(눅 4:15).  또한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을 때(행 4:7), 안디옥과 비시디아의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거부하시고 이방인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크게 감동되어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그렇게 한 모든 사람이 참되게 믿은 것 아니었고 오직 일부 선택된 사람들만 믿었다(행 13:48).

 

여전히 교만하고 하나님께 적개심이 있는 사람들도

그들이 하나님에게 특별한 친절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외치고

그들에게 값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높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사울처럼 자신의 무가치함을 확신해서도 아니고

어떤 높은 원칙에 근거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삼상 24:16-19, 26:2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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