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살다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볼 때,

그들 중에 어려움 없이도 잘사는 것 같은데

유독 나 혼자만 혹독한 일을 당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좀 다르고 경우가 좀 다를 뿐이지

사람은 누구나 다 고난을 겪습니다.

어떤 때는 아주 심한 고난과 환난의 지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이거 하나님께서 나를 치시는 것은 아닌가?”하는

은근히 두려운 마음과 함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벌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조차 우리에게 주신 분으로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하나님이 치시는구나하는 오해를 합니다.

고린도후서 18-9절은

이러한 우리의 오해를 불식시키시기 위해 쓰여진 구절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인데도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 당했습니다.

온갖 견디기 어려운 일은 계속해서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마음에 어떤 생각까지 들었냐 하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급한 생각이었음을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어려움을 주십니까?

왜 죽을 일만 생기게 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뢰하도록

바울을 훈련시키시기 위해서 그러셨던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게끔 만드시기 위해서

바울에게 그러셨던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울을 만드시기 위해서 그러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

견디기 힘든 일들만 계속 일어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치시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이 없어 하나님께 얻어 맞고 있어서 벌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의뢰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기 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영적인 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 인생이 여기서 끝장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을 당했다 해도,

그것이 우리 인생의 끝이 아닌 줄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 일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장중에서 그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 어려운 일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훈련의 장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잘 극복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 한다면

반드시 전화위복한 여러분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오직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더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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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그것은 정해진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면 좋겠는데

성경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심판은 누구나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를 성경은지옥이라고 합니다.

지옥은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

지옥에 거라면 차라리 네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았을 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돈 욕심 때문에 지옥에 간 가룟 유다라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지옥은 사람이 양심의 고통으로 인해 괴로워서 살래야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끝없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 무서운 고통을 당하는 곳,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은 그곳에 갑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신 여러분!

그 심판을 어떻게 받으시려고 하십니까?

그 참극의 자리와 무서운 심판의 자리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하십니까?

정다운 부모 형제에게 아직 예수님을 권하지 않고 계신 여러분!

그 아비규환의 자리에 여러분의 부모와 형제가

처참하게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있는 것을 어떻게 보시려고 합니까?

지옥이 있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유치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유치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있는 지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지옥에 가야 지옥이 있는 줄 안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때서야아 지옥이라는게, 정말 있었구나하면

그 인생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간 것입니다.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 떠들지 마시고

먼저 예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신에게지옥이 있습니다해도 믿어지지 않을 겁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으로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헛되이 들으시면 안 됩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성경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저를 구원해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주 진실 되게 고백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다른 일에는 실패를 해도 기회가 여러 번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면 그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때 가서야 울고불고 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누구한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습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원의 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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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오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냥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지,

이런 곳이 정말로 있을까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여기는 밤도 낮도 없고,

시간 기준이 없어 세월의 감각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계속되는 괴로움과 공포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여기는 처절하고도 상상을 초월한 고통과 두려움뿐입니다.

하루가 몇 날이 되는지,

이 무섭고 끔찍한 나날을 앞으로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세상에서 한 시간이 여기서는 아마 수 십 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영혼은 소스라치며 뜨거운 화염 때문에 이를 깨물고 몸을 떨고 있고,

세상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소름끼치는 참상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죽기 전에 남들처럼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들었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손가락을 촛불에 넣어 보라. 고통을 참을 없을 것이다,

지옥의 불도 이처럼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창조나 신화가 아니듯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은 비유가 아니다.”

만약, 그 당시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했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것은 고통과 공포가 가득 찬 이곳에

아무도 오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전에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도 않고 비웃었습니다.

교회에 다녔고, 직분도 받았고, 봉사도 많이 해서 상당히 좋은 소문이 났지만,

그런데 내 마음 깊은데서 부터 진정한 죄의 회개는 하지 못했습니다.

 

죽기 얼마 전에 친구가 내게 해준 성경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없느니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다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거듭나지 않으면 제 신세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도 들었고,

도적질 같은 것은 하지 않아 별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하나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같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안타까운 절규를 마음으로 받기만 한다면

지옥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이 가공할만한 문제에 대하여 다시 숙고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잠깐이라도 다시 살아나서 땅에 사는 가족과 형제들에게

이곳의 비참한 상황과 무서움을 전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죽었던 날 나에 대한 호화로운 장례식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와서 내 업적을 칭찬하고 나의 죽음을 서러워했습니다.

실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남들이 나를 알아주기 위해 마지못해 가끔 자선을 베풀었고,

직분 때문에 헌금을 했고,

봉사나 구제할 때마다 교회에서 은연중 광고해 주길 원했고,

나보다 믿음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은 상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잘 믿고자 하는 마음이 가끔 생기기도 했지만,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 그리고 재산과 사회적 지위 등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염려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이웃에 가장 모범적인 목사와 장로,

그리고 권사와 집사가

나와 같이 이곳 불 못에서 울부짖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당시에 내가 보기에는 직분을 받아 잘 믿는 것 같았는데,

그 사람들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 분들 가운데,

예수님 믿지 않고 성경과 담 벽을 쌓거나

주님을 부인하는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신앙생활 한다면서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결국 똑같이 비참한 운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 고통을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영혼구원을 위해 말합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그분을 영접하신 분은 쭉정이, 염소, 가라지, 미련한 다섯 처녀 같이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세상과 타협하고 온갖 불의를 행하고,

예수님의 피 값을 주고 산 교회에 와서

당을 짓고 분쟁을 일으키고,

교회 지체들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고,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사는 사람들은

이곳에 올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입니다.

 

만약 지옥에 오는 것이 소망이요 꿈이면,

지금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당신도 나와 같은 신세가 되어

이곳 지옥에서 슬피 울며부득부득이를 갈며

그때잘 믿을 걸, 잘 믿을 걸하면서

영원토록 고통과 형벌 속에서 후회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제발 지옥에는 오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천국으로 가세요.

그곳을 보니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서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고 있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압니까?

만약, 당신이 지옥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면

죽은 후, 일분도 못되어 그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당신은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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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나라의 히스기야 왕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웃에 앗수르 나라 왕은 산혜립이란 사람이었습니다.

호시탐탐 유다나라를 넘보다가 마침내 쳐들어와서 금방 함락할 기세였습니다.

그 전략은 천하무적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었던 군대였고,

이에 비해서 유다나라 히스기야 왕의 군대는 아주 형편이 없었고,

그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좀 비교를 해 보려고 해도 워낙 오합지졸이라

유다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라는 선지자를 히스기야 왕에게 보냈습니다.

너희가 이길테니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과 유다백성은 별별 생각을 다 해봤습니다.

이사야라는 사람이 뭔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전했을 거야

어차피 죽을 , 하나님이 그저 위로의 말씀을 하시는구나

갑론을박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이긴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우리가 이긴다는 징조를 보여주시길 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유다나라와 히스기야 왕에게 보낸 징조가 바로 본문입니다.

 

그것은점입가경이었습니다.

징조가 전혀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내일 당장 산헤립 군대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이길 가망성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만약 이때 하나님께서 장갑차와 탱크 수십 만대 하고,

공수특전단 수십만 명을 하늘에서 뚝 떨어뜨려 주시면서

너희가 이길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라하셨으면 믿었을 텐데

금년에는 스스로 것을 먹을 것이요 이년에는 거기서 것을 먹을 것이요,

제 삼 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라고

느닷없이 먹는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꼭 그렇게 하십니다.


히스기야 왕과 그 백성들이 자기네 땅에서 난 식물을 먹으려면

이들이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 군대에게 전쟁에 져서 전멸 당해 버리면

자기네 땅에서 난 식물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너희가 이기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말이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라도

이 전쟁에서 산헤립 군대를 완전히 초전박살을 내게 하실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군대가 얼마나 초라하든 형편없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서 약속하신 대로 히스기야 왕과 그 군대로 이기게 하셔서,

그들이 자기네 땅에서 난 식물을 먹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셔서 유다백성들이 아무런 수고도 없이

십팔만 오천 명이 하루아침에 송장이 되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귀한 약속을 징조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수도 없이 많은 약속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말씀들을 모두 다 그대로 지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꼭 이루어 주실 줄도 믿습니다.

이것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성도가 믿음을 갖고 전진하며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금년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 이년에는 또 거기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 삼 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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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 중 반을 달라고 해서 집을 나갔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서 한번 자기 소신껏

인생을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말렸지만 고집이 얼마나 센지 말을 듣지 않고

아버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먼 나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야무진 꿈을 가지고 집을 나왔지만

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타향에서 허랑방탕하게 살며

가지고 나온 돈은 얼마 되지 않아 바닥이 났습니다.

결국에는 남의 집 돼지 간에서 쥐엄 열매로 배울 채우는 신세까지 되었습니다.

그것도 못 먹을 때가 태반이었고,

가지고 나온 돈을 다 쓰고 나니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돼지들이 득실거리는 우리 안에 앉아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이래 자신도 모르는 버릇이 하나가 생겼는데,

그것은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동구 밖을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었습니다.

행여 작은 아들이 돌아올까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밤낮없이 기다렸습니다.

이제나 돌아올까 저제나 돌아올까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멀리 동구 밖에서 돌아오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거가 먼데도 희미한 모습만 보아도 자기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분명히 둘째 아들이지만 거지도 그런 상거지는 없을 정도로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아버지는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달려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잘 왔다, 집으로 가자” 말하면서 목을 끌어안고 너무 기뻐했습니다.

아버지는 하인들을 시켜 제일 좋은 옷과 신발,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시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열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밤이 되었는데 아홉 아들만 있고 한 아들이 안 보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불을 끄고 주무시겠습니까?

부모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행여 불을 끈 것 때문에 그 한 아들이 집을 못 찾아올까 봐,

방에 불도 끄지 못하고

밤새도록 동네 어귀를 쳐다보며 가슴조리며

그 한 아들을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에 찌들었을 때 그분 앞에 나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와서 솔직하게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진심으로 고백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조건 품어주시고 과거도 묻지 않으십니다.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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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건물을 지을 때 ‘함께 지어져’ 갈려면

재료들로 쓰이는 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밑에 있는 돌은 위에 있는 돌을 떠 받쳐 주고 있어야 하고,

중앙에 있는 돌은 양쪽 옆의 들들과 꽉 맞게 끼워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고,

서로 연결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돌들이 먼저 깎아짐과 깨어짐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집 짓는데 디딤목 쪽에 돌이 하나가 필요하다고 합시다.

마치 비슷하게 맞는 돌이 있어서 가져다 놓았는데 딱 맞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딱 맞는 돌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정으로 모난 것을 깎아내고 깨트리고 깨끗하게 다듬어서 맞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갔을 때 마침 전도사역부에서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해서

몇 시 몇 분까지 교회당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시간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안 보이고 교회 사무실에다 물어봐도 잘 모르고 해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때서야 임원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왜 아무도 안 나왔냐고 되레 큰 소리를 칩니다.

임원이라는 사람은 왜 그렇게 꼬장꼬장한지,

도대체 마음에 안 들고 세상에서는 뭣도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교회에서만 저렇게 ‘방안퉁수’ 같이 큰 소리하나 싶어 아니꼬운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도 임원이니 말을 들어야 하고,

일은 왜 그렇게 짜임새가 없는지 요령도 없고,

그래서 한번 나갔다가는 다시는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하지만 또 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깎이고 깨트려지면서

자신의 아집과 고집들이 어쩔 수 없이

다듬어지고 닦여지는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시는 곳입니다.

죄에 빠져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부르셔서 모이게 해놓으시고,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된 수준까지 함께 지어져 가도록 훈련을 시키시고,

서로 연결되어 가도록 연단을 시키는 곳입니다.

교회는 항상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독불장군이 필요 없습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복된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양육과 훈련,

기도모임은 가능한 참석해야 믿음이 자라납니다.

빠지면 빠질수록 손해이고,

거기에는 비록 깎여짐과 불만족스러움과 무시당함,

그리고 아니꼬움과 묵사발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 영광스럽게 다듬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얼마 되지 않아 보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으니…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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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더러 ‘상한 갈대’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농부의 고대하던 쌀은 자라나지 않고 논에 갈대만 무성히 핀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 갈대가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부산 ‘을숙도’인가 하는 데를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놀러가서

거기에 핀 갈대를 보는 것은 멋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쌀이 자라야 할 그 자리에 무성하게 피어난 갈대는

농부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갈대 같은 사람이라면 벌써 다른 사람에게 거치는 사람이 되고 있고,

볼 상 사나운 사람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우리더러 ‘꺼져 가는 등불’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꺼져 가는 등불은 주위를 제대로 밝히지 못합니다.

제 구실을 못하므로 심지가 타면서 연기가 잔뜩 피어 나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눈물 나게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눈물짓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칙이 무서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구든지 죽기 전에 꼭 심은 만치 거두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정말 사람을 환장(?)하게 만듭니다.

바로 우리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고 아픔을 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우리 더러 하나님께서는 엄청나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기는 커녕 “저 놈 누가 안 잡아가나!”하고

이를 갈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 하나도 제대로 사랑 못해서

때마다 그들 마음을 박박 긁어 놓는 나에게 그분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도저히 연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와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과 도대체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뭐, 좀 그럴 가능성이 있으면 시도라도 해보겠는데,

이것은 완전히 ‘맹탕’입니다.

 

나는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등불인데,

그런 나에게 성경은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두 극단에 대한 갈등!

바로 이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만

원수만 보면 혈압이 오르고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위장도 튼튼한데 울화통이 치밀어 오릅니다.

나는 도저히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그러기에 성령의 도와주심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마음,

이 마음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이 갈등을 붙드시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아무리 세게 기도해도 하나님은 어지럽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그분은 반드시 주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사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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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과 육’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말합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은 무엇입니까?

사단과 그 휘하에 있는 귀신들을 말합니다.

‘씨름’은 무엇입니까?

싸움입니다.

한라장사와 백두장사가 상금으로 내놓은 황소를 갖기 위해

모래판 위에서 몸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싸움의 대상은 악한 영들인 마귀와 귀신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악한 영물들은 사람을 통해서

특별히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온갖 악한 일을 다 꾸미고 다니는 사악하고 간사한 존재들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나를 비방하며 다닌다고 합시다.

이때 싸워야 하는데 그 대상이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적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

뒤에서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만일 배후에 있는 이 악한 영들의 정체를 지나쳐 버리고,

급하고 분한 마음에 그 사람에게 달려가서

“야, 임마! 뭐가 어째! 어디 한번 붙어볼래!”

이렇게 말한다면 이미 영적싸움에서 지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를 잘못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입니다.

그 사람에게 한바탕 하려고 할 때가

바로 악한 영들이 나를 배후 조정 하려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 한 번 큰 소리로 이렇게 명령하고 대적하시길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사악한 귀신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신사, 숙녀 체면에 ‘쪽’ 팔리게 무슨 그런 소리를 지르라고 그러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은 체면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마귀와 귀신들은 영의 법칙으로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단호하게 명령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만약에 이렇게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같이 맞받아쳐 싸우면 바로 사단이 파고듭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사람을 한번 박살내버리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마귀가 하자는 대로 하면 즉시로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어쩌다 부부싸움 하다가,

직장사람들과 다투다가,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화를 터뜨렸다 하더라도

그때 한 번만 확실하게 하십시오.

하루 종일 가지고 있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분을 가지고 있으면 사탄이 틈을 타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제어하는 법은 마귀가 하자는 대로하지 말고 무조건 거꾸로 하십시오.

마귀가 내 마음에 속삭이기를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대로 있어 한 번 붙어봐”라고 충동질하거나

한바탕하라고 할 때에 거꾸로 그 사람에게 웃으십시오.

그것도 방긋 웃으십시오.

물론 얼굴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는 사람은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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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영적인 감동을 주십니다.

두드리시는 방법은 수만 가지입니다.

전도자, 가족, 환경, 신문, 방송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 문을 열어 드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우리의 삶 밖에서 계셨습니다.

우리가 문을 열어 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를 통해 예수님께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 어서 들어오세요.

내 인생에 들어오셔서 죄로 찌든 나를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것은 또 선물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준다고 합시다.

이때 선물을 받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손을 내밀어 감사함으로 그것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다음 그것이 내 것이라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나도 이제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하시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또 집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아들이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 재산의 반을 달라고 해서 그 재산을 갖고 나갔습니다.

떠나면서 자기 맘대로 한번 소신껏 살아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간 돈은 얼마 되지 않아 바닥이 났습니다.

결국에는 남의 집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신세까지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다시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이래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버릇하나가 생겼습니다.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동구 밖을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었습니다.

행여 아들이 돌아올까 애타게 밤낮 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멀리 동구 밖에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 단숨에 달려 나갔습니다.

구원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이제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 때,

누군가 나를 알아주거나 반겨줄 사람이 없고 공허한 생각이 들 때,

삶에 대한 어떤 기대나 희망이 사라질 때,

그리고 나를 구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바로 당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모셔 들일 때입니다.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을 해보세요.

“하나님! 무거운 인생 길 시달리다가 이제 주님께 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용서해 주세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십니다.

오늘 바로 주님께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분이 주시는 선물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느니라(계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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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로맨틱한 것을 연상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이 뭐냐고 물어 본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마도 자기 부모요, 남편이요, 아내요, 자식이요, 형제일 것입니다.

남남이라면 보기 싫으면 안보면 됩니다.

서로 틀어지면 헤어져 버리면 그 뿐입니다.

그러나 남편, 아내, 자식, 부모한테는 그게 잘 안 됩니다.

피붙이인데 밉다고 수틀린다고 안보겠다고 해서 안보면 그것으로 끝나버리는 게 아닙니다.

미워도, 싫어도, 원수 같아도, 그래도 내 남편이요, 아내요, 자식인데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렇다고 숙명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나를 살피셔야 합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다 하고 별별 기막힌 죄를 다 짓고 다녀도

하나님께서 나를 오래 참아주시고 끝까지 용서해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오래토록 참아주시고 무조건 용서해주셔서

오늘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셨듯이 지금 보면 미워죽겠는

저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언젠가는 구원해 주셔서

천국백성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그때까지 참고 끝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내 기준을 가지고 조급하게 내 남편, 내 아내, 내 형제를 정죄하는 자리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나같이 미련한 것도 불쌍히 여겨주시고 기다려주신 그 하나님께서

언제 가는 저 사람도 변화시키셔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속이 터질 때도 있고 오장육부가 뒤집어 지는 것 같은 때도 있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어떤 ‘폼’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상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아직 주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이 부딪혀 가면서도

하나님께서 저 사람도 반드시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고

끊임없이 참고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저 사람은 능력이 있어!

뭔가 큰일을 하는 사람이야!

이런 소리 들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저 사람은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야!

저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참는 것을 보니까 저 사람은 오장육부도 없는 사람이야!

이런 평가를 받으려고 애쓰십시오.

물론 쉽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되지도 않습니다.

성경말씀 몇 번 읽고 금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노력하셔야 하고 기도해야 하며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참는 일을 바로 시작하십시오.

다음에 시간 있을 때 하겠다고 말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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