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법은 일정한 범주에 속한 사람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특별법과 일정한 시기에만 효력을 지니는 한시법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율법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한시법이었던 할례, 제사 등과 같은 의식을 제외하고는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닌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율법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인만큼 성도들은 이를 자신의 신앙이나 여건에 따라 지키고 지키지 않는 방자함을 범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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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율법을 폐하지 않고(마 5:17), 도리어 율법을 더욱 굳게 세웁니다.  즉 은혜는 죄인의 마음속에 되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엡 1:6), 새로운 능력과 의에 대한 소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고전 15:10), 그 결과는 회심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으로 율법을 지키게 해주는 것입니다(롬 6:22, 8:4, 갈 5:22-25, 엡 5:9).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도리어 율법이 없는 자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인 것입니다(고전 9:2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딛 3:5), 성도들은 더욱 율법의 순종해야 합니다(롬 6: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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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죄를 용납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에서 비롯한 반면 ‘은혜’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속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율법과 은혜는 성격상 정반대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율법과 은혜는 다같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유기적인 속성에서 기인했다는 점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사실 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엡 2:8)는 율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대한 완전하고 영구적인 순종(롬 10:4)과 율법이 규정하는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갈 3:13),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율법의 성취가 없는 은혜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과 은혜는 서로 다른 무엇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뗄 수 없는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율법을 통해 우리의 죄악을 깨닫고(롬 3:20),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게 됩니다(갈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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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성도에게 뿐만 아니라(롬 3:28),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에게도 효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딤전 1:9-11).  특별히 불신자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효용성을 나타내는데, 먼저 율법은 불신자의 양심을 깨우쳐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합니다(갈 3:24).  그러나 불신자들이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상태와 길에 머물러 있을 경우에는 그들로 하여금 장차 임할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는 근거가 됩니다(신 28장).  이처럼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의 기능에 대하여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지극히 유익한 것으로 때로는 매우 두려운 것으로 작용하게 됩니다(신 11:27-28).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은 우리는 죄를 멀리하여 율법의 요구에 부합하는 선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롬 1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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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율법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거룩한 삶을 유지하도록 그 기준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지니고 있고(출 20:1-17), 이 율법은 성도들에게 유일무오(惟一無誤)한 규칙이 되지만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있어서 더 이상 그를 구속(拘束)하는 법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법이 됩니다(롬 7:22, 약 1:25).  또한 율법은 성도들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롬 7:7), 죄로 인한 그들의 ‘전적부패’와 ‘전적무능’을 인식시켜 줌으로써 온전한 구원의 길을 보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몽학선생’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갈 3:24).  뿐만 아니라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가를 보여줌(롬 5:17-19)과 동시에 예수님이 율법의 엄격한 요구를 온전히 이행하심으로써(마 5:17),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사실을 성도들로 하여금 깨닫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지닙니다.  한편 율법은 이처럼 많은 효용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원으로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갈 2:16).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완전한 순종의 모범을 통해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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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하나님의 거룩에 기인한 하나님 의지의 표현으로(롬 7:7-9), 거룩하고 완전하며(시 19:7), 절대적으로 선한 것입니다(딤전 1:8).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10절에서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 자체(사 33:34)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율법이 정죄하고 있는 죄의 결과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 6:23).  이것은 오늘날의 형법이 형사 범죄의 원인이 아닌 것처럼 율법은 죄를 죄 되게 할 뿐이지(롬 7:13), 그 자체가 죄이거나 죄의 원인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는 말씀처럼(롬 7:12), 우리는 율법을 반대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선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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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인간 전존재를 총망라하는 포괄적이고도 완전한 수행을 요구하나(왕상 2:3), 죄에 오염되어 부패함으로써 연약하게 된 인간은 그 요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히 10:1).  물론 범죄 하여 타락하기 이전의 최초의 인간에게는 율법이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은 율법을 온전히 수행함으로써 능히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인간은 변질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함으로(창 1:27), 하나님의 거룩한 성질에 온전히 부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초 인간의 타락은 그가 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변질 왜곡시켰고(롬 5:12), 그 결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질에 온전히 부응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전 7:29).  따라서 율법은 더 이상 구원의 방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갈 5:4), 본래 생명에 이르게 할 그것이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롬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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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율법은 그 요구의 범위에 있어서 포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율법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관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시 119:96), 생각될 수 있는 모든 죄를 금지하고(롬 7:12-13), 생각될 수 있는 모든 선(善)을 명령합니다(롬 7:7).  또한 소극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태(약 4:17)와 적극적인 모든 범죄를 아울러 정죄합니다(롬 3:23).  그리고 율법은 그 정신에 있어서 포괄성을 지니고 있는데, 율법은 의로운 말과 행동을 명령할 뿐만 아니라(마 5:22, 막 12:31), 의로운 성향과 마음의 상태를 요구합니다(마 5:28, 고후 10:5, 엡 5:1, 벧전 1:16).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은 그 요구의 범위에 있어서 외적인 행위와 내적인 마음, 그리고 적극적 범죄와 선을 행치 않는 소극적 행위 등 인간 전체 전부분에 걸쳐 총망라하여 언급할 뿐만 아니라, 그 정신에 있어 하나님의 거룩에 완전히 일치할 것을 요구합니다(레 11:44).  또한 율법은 포괄성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완전한 사랑(마 22:37), 즉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숭고성을 지니고 있습니다(막 12:30-31).  사실 죄성에 오염됨으로써 연약하게 된 인간으로서는(롬 5:12), 이러한 율법의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롬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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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의미에 있어서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율법이라 하나, 넓은 의미로는 창조 시부터 피조물 내부에 존재하는 법칙을 율법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전자는 ‘성문적 율법’이라 하고 후자는 ‘기본적 율법’이라 합니다.  먼저 기본적인 율법은 그 대상이 비이성적 존재인가, 혹은 이성적 존재인가에 따라 다시 자연율(natural law)과 도덕률(moral law)로 구분이 되는데, 여기서 자연율(自然律)이란 비이성적 피조세계에 내재된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고, 도덕률(道德律)이란 자유의지를 지닌 이성적 존재로 지음 받은 피조물의 본성 속에 내재된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성문적 율법은 기본적 율법보다는 시기적으로 늦게 주어졌으나 보다 구체적이며 멸망 받을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탁월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도덕법과 의식법, 그리고 시민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도덕법’은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률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요약하여 놓은 폐지할 수 없는 율법으로 그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고(출 20:1-17),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며(마 22:37-40), ‘의식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제사법, 성결법과 같은 종교적/의식적 규정으로 할례, 제사, 식물의 정결과 부정의 구별, 절기 등의 외면적 의식들을 관한 법들이 이에 해당하고, ‘시민법’은 선택받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성결한 사회생활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모세를 통해 주신 법입니다.  이 시민법은 의식적 율법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수한 상황에 맞추어 주어진 것으로 매우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법으로 오늘날 그대로 자구적으로 적용할 수 없지만, 그 율법에 내재된 정신과 원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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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자신들의 소나 나귀가 구덩이에 빠져 죽게 생겼으면 안식일이라도 그 짐승을 꺼내 살렸습니다(눅 14:5).  그것은 그 짐승이 불쌍해서라기보다 재산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으로 고통 받고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고쳐준 것을 가지고 안식일을 범한다고 비난했습니다(눅 13:14).  사실 그들은 고통 받는 사람을 자신의 소나 나귀만큼도 중하게 여기지 않았고 고통 받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참 뜻을 알지 못했지만(요 7:23),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함으로 안식일의 참 뜻을 아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었고(눅 6:5), 안식일의 규례를 초월하는 분이시며(롬 14:5-6),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그리스도를 위해 있는 것이었습니다(막 2:27-28).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에 비추어 봐도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범했다는 주장은 타당치 않고, 무엇보다도 죽음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방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뿐더러(눅 10:29-37), 그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사랑의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인 것입니다(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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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피조물이지만(창 1:27), 인류의 시조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함으로서 마귀의 종이 되었고(히 2:14), 그 죄의 결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롬 5:12).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의롭게 살 능력조차 없을뿐더러(렘 2:22), 남은 생을 완전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이미 지은 죄 값으로 죽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롬 6:23).  그러나 인간이 죄인임으로 인하여 당하는 죽음의 형벌을 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죄 없는 다른 사람이 그 죄인을 대신하여 죄 값을 받는 것입니다(갈 3:13).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담당하도록 죄 없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나게 하시고(갈 4:4), 율법을 완수하심으로써(마 5:17), 완전한 의인이 되어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기에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벧전 1:19).  즉 그리스도는 죄 없이 태어나(히 4:15), 평생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써 율법을 완수하셨고 율법에 대하여 의인으로 인정되었습니다(롬 5:18).  이렇게 그리스도는 완전한 의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히 9:28),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해결하신 것입니다(벧전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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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내용상 하나님(1-4계명)과 이웃(5-9계명), 그리고 자신(10계명)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를 제시합니다.  이 십계명에 따라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려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1계명), 순결한 예배를 드리며(2계명), 망령된 말을 삼가하고(3계명), 안식일을 지켜야 했습니다(4계명).  성경의 증거로 볼 때 예수님께서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어기셨다고 볼만한 것이 없었고 그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했을 뿐입니다(빌 2:8).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무를 다하려면 부모를 공경하고(5계명), 인간(6계명)과 결혼을 존중히 여기며(7계명), 남의 재산권을 보호하고(8계명), 그리고 진실한 증언을 해야 합니다(9계명).  어느 누구도 이점에 대하여 예수님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고 심지어 가까이 접할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조차도 그에게 아무 잘못을 찾지 못했습니다(눅 23:14-15).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10계명), 가책을 느끼거나 위축되지 않으셨고 자신을 비난하는 유대인들에게 당당하게 반박하였으며(요 10:32),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께 기도하여 온전히 응답을 받았습니다(요 11:41-44).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십계명을 다 준수한 사람이셨습니다.  더 나아가 실제적인 행위의 판단의 근거로 삼는 모세 율법의 수준을 뛰어 넘어 동기와 마음의 상태까지 강조하셨는데, 예수님은 살인이나 간음은 물론 형제에게 화를 내고 욕하는 것과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1-48).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 율법이 요구하는 정의(正義)를 만족하고도 남는 분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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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리스도인들조차 인간이기 때문에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불성실한 신앙생활을 변명하는 말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성령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말씀대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율법을 범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첫 번째 근거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난 것입니다(롬 6:18, 22).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것은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이미 지은 죄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도 않습니다(롬 6:2, 14).  하나님의 자녀가 율법을 범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두 번째 근거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에게 신(神)을 주어 율례를 행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겔 36:27).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따라 살 때 육체의 욕심을 이기고 빛의 자녀로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엡 5:8-9).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로마서 8장4절 말씀처럼 주님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성령을 따라 능히 율법(도덕법)을 지킬 수 있고(롬 13:8-10), 그 율법은 사랑을 통하여 온전히 이루어집니다(마 22: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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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율법을 행함으로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 3:20).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것이고(마 5:13-16), 또한 자신의 영적순결을 유지하면서 믿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롬 15:2).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천국백성답게 살아야 하는데(벧전 2:9-10), 만약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음행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주의 전을 더럽히는 것이고 창기의 지체를 만드는 행위로(고전 6:15, 19),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마 5:27-32).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것으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잘못된 생각입니다(롬 13:8-10).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불신자보다 모든 면에서 의롭게 살도록 노력해야만 하고(마 5:20),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약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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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제2위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신 분으로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에도 사람들에게 율법의 제정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을 율법 가운데서도 으뜸 되는 것으로 보았고(마 5:17), 율법을 백성들에게 선포한 모세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였지만 그는 율법의 제정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자에 불과했습니다(출 20:1-23:23).  따라서 율법의 제정자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는 율법의 전달자인 모세의 권위와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기 때문에(행 6:14), 예수님은 당시 율법 교사들처럼 모세나 다른 선지자들을 인용치 않고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 5:22, 28, 32)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당시 율법 교사들과 같이 기존의 행위 중심의 율법 해석을 하지 않고 이를 뛰어넘어 마음의 동기를 강조하셨는데(마 5:21-48), 그것은 실로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율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살인행위만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욕하는 것만으로도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마 5:21-22).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율법 해석자들이었던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다른 율법 제정자로서의 권위를 가진 것이었고 백성들도 그의 권세 있는 가르침에 실로 놀라움에 금치 못했습니다(마 7: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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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마 5:17)고 말씀하셨듯이, 만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기한 것이라면 예수님 이후 시대에 출생한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율법 없이(롬7:7)는 인간을 정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4:15).  또한 인간이 정죄 받은 죄인이 아니라면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도 율법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는 말은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위로 율법을 완수하신 것(마 5:17)과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롬 3:31), 그리고 예수님이 율법의 본래의 목적을 성취하신 것을 의미합니다(롬 10:4).  사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라 의롭게 살면서 생명을 얻고 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지만 백성들은 율법을 어김으로써 율법 아래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 외에 의롭게 되는 다른 길을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히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었습니다(행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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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본래 제2위 하나님이셨으나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빌 2:6), 이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율법 아래 나게’(갈 4:4)하셨다고 명시적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율법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를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증거 했는데(히 4:15), 여기서 죄 없다는 판단은 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율법이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롬 5:13).  이와 같은 성경구절들은 그리스도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율법을 지켜야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만일 율법을 범한다면 그 역시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해 온전히 순종함으로 온전케 되셨고(히 5:8-9), 의로운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롬 5:18).  결국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의인이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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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에는 반드시 입법자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듯이 율법 역시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 대상인 인간으로 하여금 거룩하게 이르게 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갈 3:19)이라는 성경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행을 방지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그것이 왜 죄이며(롬 3:20),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일깨워 죄의식을 갖게 하고(롬 7:7),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바울이 율법을 몽학선생(蒙學先生), 즉 어린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자라고 한 것도 이 두 번째 율법 제정 목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갈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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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성경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넓게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행위의 모든 법칙, 또는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는가 하면(요 12:34), 좁게는 모세오경이나(마 5:17, 눅 16:16), 도덕생활에 기준이 되는 도덕적 율법(십계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출 20:3-17. 신 5:6-21).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고, 이러한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정의하면 “모든 피조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실행을 위한 강제력이 뒷받침된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의 표현으로(롬 7:7-9), 그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결정됩니다(신 1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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