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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17 칼빈과 예정 1

예정(predestination)이란 용어는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들을 이미 정해 놓았고, 인간의 다른 조건들도 이미 하나님이 정했다는 차원으로 이해되었다.  즉 하나님이 미래에 일어날 어떤 것의 원인을 정하심이라고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돌보심의 차원에서 ‘섭리’(providence)로 알려졌다. 섭리는 하나님이 온 우주와 사람들을 위하여 명하신 것을 반드시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창세 전에’(엡 1:4) 이미 주어진 명령이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그러한 명령은 예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섭리’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물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요약하는 의미로 사용되어 온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먼저 이 땅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주장한 Calvin의 말을 『기독교강요』에서 들어 보자.  “우리는 하나님을 멀고 먼 영원으로부터 그가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지혜로 작정하시고 일단 작정하신 것을 지금은 권능으로 수행하시는 만물의 지배자요 통치자로 삼는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과 땅과 생명이 없는 피조물뿐 아니라 사람의 계획과 목표에서 시작하여 예정된 목적까지 하나님의 섭리가 주관한다고 선언한다”  Calvin은 하나님의 섭리(God's providence)가 자연적인 사건이든 인간의 결정이든 상관없이 모든 일의 발생을 세밀하게 명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세심한 섭리’(meticulous providence)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원한 선택과 유기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고 부르며, 이 작정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스스로 예정하셨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에서 창조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떤 이들은 영생을 얻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저주를 받기로 미리 정해졌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 결과를 얻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얻거나 죽음을 얻는 것이 예정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과 저주받을 사람을 미리 정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Calvin신학만이 보여주는 성격이다.   

성경에는 ‘이중 예정’(double predestination)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이것이다.  이 용어가 하나님께서 ‘선택’(election)과 ‘유기’(reprobation)를 같은 방법으로 실행함으로써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그 다지 좋은 용어가 아니다.  그런데 Calvin은 ‘이중 예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신학 곳곳에서 이러한 개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강요』에서 나온 말을 다시 한번 들어보자.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사랑으로 포용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진노를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사람들을 예정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구원을 선언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신 사람들만이 그의 자비를 구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예정하신 사람들만 조명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버림받은 자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하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나의 주장은 여전히 확고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을 빼앗긴 자들은 저주를 받을 일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영원한 생명으로 창조된 사람들, 즉 선택받고 예정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반면에 영원한 멸망으로 창조된 사람들, 즉 처절하게 버림받는 유기자들이 있다는 관점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였다.  이렇게 미리 선택받은 사람들과 진노받을 사람들을 정한 것을 Calvin의 추종자들은 ‘이중 예정’이라고 명명하고, 그들의 개혁신학의 내용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온건 칼빈주의(moderate Calvinism) 자들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지만, 극단적 칼빈주의자(Hyper Calvinist)와 다르게 온건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무조건적이되,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건적이라고 믿었다.

Calvin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구원받을 사람들을 따로 선택하셨다는 Augustine과 Luther의 신학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책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Calvin이 주장한 것처럼 하나님이 저주받을 사람들을 선택했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신학적 입장은 때로 ‘단일 예정’ (single predestination)으로 불렀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를 선택하셨으나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운명에 관해서는 아무런 적극적 의지를 표현하지 않고 ‘간과’(preterition)해 버렸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간과’라는 말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저주받을 사람들을 방치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Calvin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은 선택(election)과 유기(reprobation)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응답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인도하고, 다른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으로 예정되었다는 교리에 대해 『기독교강요』에서 ‘작정 교리는 잔인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여기에서 ‘잔인한 작정 교리’란 무조건적 선택 교리를 주장하면서 설명한 유기의 교리를 가리킨다.  Calvin은 하나님께서 유기의 창시자라는 생각에 큰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 생각을 강경하게 주장하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것이 잔인하고 무서운 결정이란 것을 나는 물론 인정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어리석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의 타락과 그로 인해서 후손이 멸망할 것을 예견하셨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결정에 따라서 그렇게 되도록 마련하셨다”

이러한 예정에 관해서 Calvin 자신도 하나님의 예정은 참으로 두려운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것은 누구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교리가 아니다.  성경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교리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영혼의 문제에 관해 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예정을 굳게 믿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자들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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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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