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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26 성경이 갑자기 떠오름
  2. 2013.06.26 술과 그리스도인

신앙 감정이 성경 본문을 마음속에 기억나게 한다는 것은 자체는

그 감정들이 진정으로 거룩하고 영적인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성경 말씀이 생각남과 동시에 일어날 때 그것이 그 감정을 구원하는 은혜로운 감정이라고 판단 내리는 적합한 근거가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특히 고양된 감정이 소망이나 기쁨 또는 즐거움과 기쁨과 연관된 감정일 경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험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그 감정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알리는 표지라고 여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마음속에 아주 달콤한 약속들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한 본문 다음에 그 다음 본문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성경 전체에 걸쳐서 관련된 말씀들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런 감정이 확실히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올바른 것이며 그들의 영적 상태가 건전하다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문제에서 무지하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잘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잘못된 것이 없고 순전하며 완전하기에 성경 말씀에서 비롯된 체험들은 반드시 옳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 성경 말씀과 더불어 생길 수 있지만 성경을 오용하지 않고 바르게 실천하여 참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의미로 볼 때 성경에서 합당하게 나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성경 본문이 성스러운 것이어서 마귀는 감히 그것들을 만지지도 못하고 오용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너무나 담대한 나머지 그리스도를 붙잡아 광야로 높은 산으로 성전 꼭대기로 끌고 다닌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성경을 악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한 능력을 소유한 사단에게 소리나 글자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단의 도구로 타락한 이단 교사들이 성경말씀을 악용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벧후 3:16).  우리는 그들이 성경의 모든 부분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성스러운 분문이라고 하는 것은 없으며 그들은 성경 본문을 악용하도록 허용되고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영혼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무기들을 사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따라서 사단은 성경과 자신의 도구들을 그렇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결론내릴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거짓 교사들이 그런 일을 할 때에 그들은 사단의 도구와 종으로서 그리고 사단의 자극과 영향을 받아 그런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마귀가 사람들을 기만하고 멸망시키려고 성경을 악용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어리석음과 부패함 역시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남과 더불어 생기는 고조된 감정을 체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인해 자극된 감정을 체험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돌밭과 같은 심령의 소유자들처럼

그 감정 안에 참되고 구원으로 이르게 하는 믿음의 본질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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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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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술과 담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문제는 아주 오랫동안 한국 교회에서 끊임없이 거론되어 온 문제로 기독교인들 중에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술 자체를 금하는 구절이나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성경 구절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술과 담배를 금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독특한 역사적 산물이지 결코 신앙의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술과 담배에 대해서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술과 담배의 문제가 신앙의 핵심 문제가 아니라는 말은 옳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2:8).  따라서 만약 초신자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여 신앙생활을 중단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 일로 인하여 신앙생활을 중단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하지만 그러나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직분자라면 반드시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의 기호와 즐거움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유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딤전 3:1-13).  왜냐하면 직분자의 행동에 따라서 믿음이 약한 신자들을 실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실족시키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고 경고하고 있는데( 18:6-7), 만일 내가 원해서 아니면 취미로 하는 모든 것들 중에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주고 덕스럽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다른 형제로 하여금 신앙을 실족하게 만든다면( 9:42),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39:9).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2: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사람이기에(벧전 1:18-19),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샀다면(고전 6:19-20), 그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20).  만약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힌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고(고전 3:16-17), 자신이 뿌린 씨는 자신이 거두게 될 것입니다( 6:7-8).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인 몸에다 술을 집어넣는다면 과연 그 몸을 가지고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5:11-12).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의 착한 행실을 통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시는데 말입니다( 5:16).

 

그렇다면 성경은 술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술 취하지 말 것을 경고할 뿐 아니라( 5:18), 술에 취한 자와 사귀지도 말 것을 말하며(고전 5:11), 또한 하나님은 술 취한 자를 싫어하시고 그들에게 화가 임할 것을 여러 차례 경고하셨는데( 5:11, 22), 이것은 술을 먹고 취하거나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23:31).  신약에 와서는 술 취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주님은 경고 하셨고(고전 6:9-10, 5:19-20), 사실 술에 취하는 행동은 예수 믿기 전에 하던 세상적인 버릇으로(벧전 4:3),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면 반드시 옛 사람의 행동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4:22-24).  왜냐하면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고( 2:20), 만일 주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나중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입니다(고후 5:10).  구약성경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나오는데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거룩한 제사장들이지만( 3:1-3),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향로에 다른 불을 가져다가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 앞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10:1-2).

 

그러면 이들이 왜 하나님께서 명하지도 않는 다른 불을 가져다가 제사를 드렸을까요?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이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레위기10 8-9절에 보면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가 죽고 난 다음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 갈 때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이 말의 의미는 술을 먹고 취한 상태에서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술만 먹으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것인지 저것인지 판단력이 흐려져 분간이 안 됩니다( 28:7).  그래서 술 취한 사람은 정신이 혼미하고 몸도 말을 듣지 않고 입에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오고 가는 곳마다 싸움질하고 토하고 심지어 길거리이나 골목이 자기 집 안방인줄 알고 개처럼 드러누워서 자기도 합니다( 23:29-35).  술은 인간을 동물처럼 만들어버리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술에 취한 몸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12:1, 고후 7:1).

 

그리스도인은 술을 먹고 취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술을 만들거나 파는 것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데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계에서 술을 팔아 그 술을 먹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사고로 죽거나 아니면 술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 범죄를 했다면 그 사람에 대한 죄 값을 하나님은 누구에게 찾습니까?( 18:4). 술 먹고 취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술을 만들거나 팔았던 사람입니까?  만약에 술을 먹은 사람이 술로 인한 사고로 죽었다면 술을 먹고 죽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술을 만든 사람과 팔았던 사람 역시 하나님 앞에 간접적인 살인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 살인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죄로서( 21:8, 22:15), 주님은 이렇게 술 먹고 범죄한 영혼에 대해 심판대 앞에서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14:12).  왜냐하면 모든 영혼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데 그 영혼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 술을 판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8:30-32).  여러분들 중에 이 말씀을 들으면서 술 먹고 취하는 것이나 술을 파는 것에 대해 전혀 죄책감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하나님께서 버리시기로 작정된 사람인지 아니면 에서처럼 선택받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9:13).

 

사실 하나님은 무조건 심판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든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벧후 3:9), 그분이 기회를 주셨을 때 죄에서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3:15).  그러므로 술을 먹고 취하는 것과 술을 파는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며 그 분 앞에 심판을 자초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본인이 술 먹는 것을 신앙과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자유하는 자들입니다( 5:13).  먼저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행사하기 전에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과 원리를 먼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으로 말하고 있지 않는데 고린도전서 8장과 로마서 14장에서 고기 먹는 것과 관련하여 양심이 강한 자와 양심이 약한 자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대표적인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우상제물에게 바쳤다가 시중에 나온 고기를 먹는 것이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만약 그런 고기를 먹음으로 믿음이 약한 사람을 실족하게 한다면 삼가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고전 6:12, 10:23).

 

물론 결혼기념일이나 생일날 가족들과 함께 술 한 잔 마시는 것을 가지고 지옥에 가지는 않겠지만 이웃의 유익을 고려하여 나의 자유를 제안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행사의 출발점이고(고전 8:9), 비록 그리스도인의 자유 안에서 허용된 것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덕이 되지 못한다면(벧전 2:16),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을 삼가 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고전 10:3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금하고 있지 않는 모든 허용된 일들에 자유 하지만(고후 3:17), 우리의 기호보다 먼저 다른 형제에게 덕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인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고전 10:24).  쉽게 말하면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구체적으로 술 먹지 말라는 구절이 없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은 이것이 비본질적인 문제이므로 신앙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술/주폭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도 있고 이웃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5-16).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행사되어야 합니다( 22: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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