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혀는 말(horse)의 고삐나 재갈보다도 작고 배의 키보다는 훨씬 더 작아서 논리적으로 본다면 이것을 조절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성경은 말의 파괴성에 대해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라고 표현합니다(약 3:1-6).  여기서 혀는 말(word)을 의미하고 혀를 움직여 소리를 내며 이 소리를 언어로 사용하는 것처럼 말을 조절하거나 통제하지 않으면 작은 불씨가 온 산을 태우고 큰 건물을 집어 삼켜 태우는 것 같이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하는 자신에게도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전 10:13).  야고보는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고 말하는데(약 4:11), 여기서 ‘비방하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나쁘게 말하다” 혹은 “다른 사람을 대적하여 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대방에게 불리하게 말을 하는 행위로 William Barclay에 의하면, 이 단어는 대화의 현장에 없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나쁘게 헐뜯는 행동”이나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말해 어떤 사람들은 당사자가 없는 은밀한 곳에 모여서 혹은 인터넷 댓글을 통해 한 사람을 파괴시킬 수 있는 어떤 정보들을 주고받거나(잠 18:8), 그 사람에 대하여 좋다든지 나쁘다든지 아니면 도덕적으로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판단을 하는 것인데, 이 판단은 대체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좋지 못한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비난이나 비판으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시 52:4).

 

사실 이러한 비방을 일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스스로 높은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을 낫게 평가할 때 나타나는 좋지 못한 ‘갑질’의 행위로 상대방을 적수로 놓고 깎아내려 자신을 상대방보다 더 높은 자리를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한 마디로 이런 행위는 “교만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죄 짓는 것은 사실을 말하느냐 거짓을 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인격적인 모독을 가하거나 깎아내리는 말을 할 때, 그것이 비방이 된다는 것입니다(딤전 5:13).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비방을 일삼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경고하신 것처럼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에(롬 3:8), 성경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하면서 그 말을 통해 그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도 있고 정죄함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마 12:36-37).  다시 말해 형제에 대해서 무심코 내뱉은 “터무니없는 말”이나 “함부로 지껄인 말”, 심지어 “무가치한 말”들까지도 심판 날에 문제가 될 만큼 유죄 판결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마 5:22).  로마서에서도 이 비방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롬 1:29-32)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겠지만(잠 21:23), 만약 혀를 잘못 놀리면 무서운 심판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잠 18:21).

 

우리는 성경에서 이 비방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찾아볼 수 있는데, 모세와 아론의 누이이며 여선지자(출 15:20)인 미리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인 모세가 이방 사람인 구스 여자와 결혼을 했을 때(민 12:1), 시기심과 질투심을 가지고 모세를 향해 비방을 하자(민 12:2), 하나님은 이 문제를 판결하기 위해 회막 문에 나타나 아론과 미리암을 향해 진노하셨고 그녀는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민 12:9-10).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은 엘리사를 보고 조롱하던 사십 이명의 어린아이들이 졸지에 곰에 물려 죽은 사건으로(왕하 2:23-24), 분명 주님은 ‘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마 12:14),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대머리’라고 조롱하는 말 한마디 때문에 동네 아이들이 때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인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을 근심케 하고(엡 4:30),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지름길은(잠 18:8), 상대방을 향해 신랄하게 비방/비판을 하는 것입니다(히 13:7).  그래서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신앙이 자신과 맞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의 좋은 점마저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비방하지는 말아야 하고, 또한 그의 언행이나 행동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하더라도 마치 자신만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속단하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4:5).  그 이유는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에게(롬 3:9), 다른 죄인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롬 14:4).

 

사실 죄인이 죄인을 판단하거나 비방 혹은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고(마 7:1-5), 우리들 중에 누구를 비방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의인은 단 한사람도 없고(롬 14:10),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푸른 하늘도 더러워 보일 수 있는데(욥 15:15-16), 하물며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사는 죄인들이(전 9:3), 남을 판단한다면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렘 17:9).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과 상관없이 단 한시도 죄를 짓지 아니하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로(요일 1:8), 그 누구도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깨끗하고 완벽한(왕상 8:46), 범죄치 않는 인간은 아마도 이 세상에는 없을 것입니다(전 7:20).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생각하실 때 단지 부정적인 면을 꼬집어 내기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생각하시는 것은 (민 23:21), 그분이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자비하시고(시 78:38), 인애하시며(호 12:6), 온유하시기 때문입니다(삼하 22:36).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보신다면 우리 또한 죄를 지은 사람이나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을 볼 때 불쌍히 여겨야 하고(엡 4:22), 무엇보다도 주님의 성품인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마 11:29), 그를 도와 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단 12:3).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어떠한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소문이나 선입견 혹은 인간적인 감정을 앞세워 비방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갈 6:1).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놓고 말을 할 때 가능한 그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면만을 이야기해야 하고, 만약 그 사람의 고쳐야 할 부분이 있어 부득이하게 언급해야만 할 경우가 있을 때에는 바리새인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나팔을 불지 말고(마 6:2),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 사람에 대해 보여주시는 만큼만 말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마 18:15).  만약 그렇지 않고 계속 같은 문제를 가지고 끊임없이 비방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처럼 똑같은 죄를 짓지 않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와는 다른 종류의 죄를 짓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방한 죄에 대해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롬 2:1-3).  사실 율법의 핵심은 사랑인데(마 22:37-40), 같은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최고의 법인 사랑을 저버리고(약 2:8), 율법을 비판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율법을 주시고 율법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도전하는 무서운 죄악을 저지르는 행위입니다(약 4:11-12).  쉽게 말하면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재판장이 되어 하나님의 위상을 찬탈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자기 죄를 끝까지 회개하지 않거나 돌이키지 않는다면 분명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그 사람에게 응하게 하실 것이고(딤전 5:24), 하나님께로 받은 놀라운 은혜와 상관없이 그는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눅 6:46-49).

'생각해 볼만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의 충만함  (0) 2018.03.31
자비량 사역은 성경적인가?  (3) 2017.03.11
신약교회의 예배스타일  (0) 2015.12.19
성령의 바람  (0) 2015.08.01
가증스러운 신앙  (0) 2015.05.30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