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납될 수 없는 죄

자살 2023. 8. 6. 15:41

『신곡』은 죽음 이후 사후세계로의 여행을 주제로 한 13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Durante Alighieri가 1308년부터 죽은 해인 1321년 사이에 쓴 대표적인 서사시다.  이 책은 로마의 시성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시인 Vergilius를 지옥의 안내자로 묘사하고 있다.  지옥편에서 보면 지옥의 두 번째 문을 지나면 망자들이 모여 있는 제칠 영역이 나온다.   이 영역 안에는 세 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1층에는 ‘하나님을 모독한 자’와 ‘사람을 죽인 자’,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영원히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지옥문 입구에는 무서운 경고문이 하나 붙어 있다.  “모든 희망을 버려라! 내 문을 지나는 자여”

『천로역정』의 저자 John Bunyan은 일인칭 소설 기법으로 『Visions of Heaven and Hell』이란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주인공 Epenetus를 등장시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구원을 받아 천사의 인도로 천국의 영광과 지옥의 고통을 체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penetus가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할 때 세미한 음성이 들려온다.  그 나직한 음성을 Bunyan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 자신을 영원한 불행에 던져서 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기쁘게 하지 말라. 네가 스스로 치명적인 ‘자해’(自害)를  가하면 그것으로 네 멸망의 도장을 찍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실진대 이렇게 고의로 그분의 형상을 멸하고서 어찌 그분에게 자비를 얻을 소망을 가질 수 있겠느냐”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속에서 그 답이 나온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이것은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연민을 느끼면서 하신 말씀이다.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느껴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알 길이 없다.  물론 맛보기로 경험해 볼 수는 있다.  방법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불이 켜진 가스레인지 쿡탑에 벌거벗은 몸으로 올라가 앉아 있으면 된다.  오래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단 10초면 된다.  지옥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누구든지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악이다.  여기에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 ‘꺼지지 않는 불’(마 3:12)이 있는 곳, ‘게헨나’다(마 5:29).

오늘날 현대인들의 생각은 한 사람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고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극도로 노령이거나 고통스럽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의 경우에는 죽음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근거에서 자살이 허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일부 사회에서는 자살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 자살을 특정한 범주에 제한하려고 한다.  특히 일본의 종교적인 자살, 예를 들면 ‘사무라이’는 자신의 실패를 불명예로 여겨 할복하는 것을 명예로 여겼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때에 사용된 ‘가미가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삶의 의미에 있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명예스럽게 생각했다.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자살 테러’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기독교의 영향으로 삶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라 자살을 범죄로 여겼다.  Augustine은 『신국론』에서 어느 누구도 개인적으로 죽을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자살은 자기 살인이며 회개의 기회를 완전히 가로막는 죄로 정죄를 했다.  Thomas Aquinas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없애버릴 권리와 하나님의 주신 생명을 거부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자살은 교회 공동체를 대항하는 무서운 죄로 정죄했다.  Jonathan Edwards도 자신의 이모부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마귀가 그를 절망적으로 몰아갔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요약하면 자살은 ‘용납될 수 없는 죄’다.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지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자살이 용납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성경에 보면내가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43:7).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는 말씀이다(벧전 4:11).  예를 들면 아히도벨과 같이 인생이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 사람이 있다(삼하 17:23).  이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혹은 시므리처럼 권력의 눈이 멀어 왕권을 쟁취하지 못해 왕궁에 불을 놓고 분신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다(왕상 16:18).  과연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살이 용납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의심 없이 믿는 자들이 있다.  더 나아가 본인 스스로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한다.  문제는 이러한 고백을 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가치가 없는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다.  성경은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9:4).  격을 높이는 뜻으로 사용한다면 ‘시신’(屍身)이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혐오스러운 느낌을 주는 차가운 ‘송장’(corpse)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 자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죽은 자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죽음을 구하였던 자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요셉을 잃고 마음고생이 심했던 야곱(창 37:35)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질적인 병, 원망과 불평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압박감을 받았던 모세(민 11:15), 그리고 바알 숭배자였던(왕하 9:22) 이세벨에게 쫓겨 절망에 빠진 엘리야(왕상 19:4)가 있다.  또한 가정의 풍비박산으로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던 욥(욥 3:21)과 부인 천 명과 살아봤지만(왕상 11:3) 인생무상을 느낀 솔로몬(전 2:17).  그리고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구했던 요나(욘 4:3, 8)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죽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들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민 27:16),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고후 12:9), 그분께 소망을 둠으로(딤전 6:17), 무서운 유혹을 이겨냈다.  

자살은 신중하게 계획된 행동인 경우는 거의 드물고 극단적이고 충동적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좌절감과 고독함, 그리고 경제적 상실감과 정신질병인 경우 자살의 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삶에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있다(욥 5:7).  하지만 이것은 욥이 말한 것처럼 인생을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으로 믿어야 한다(욥 23:10).  왜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다(마 16:26). 

무엇보다도 자살충동을 느낄 만큼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될 때 혼자 힘으로 감당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믿음의 형제들을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약 5:14-16).  예수님께서 각 지역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있다.  바로 이런 사람들, 잃어버린 영혼, 방황하는 영혼, 삶의 소망이 없는 영혼, 자포자기한 영혼들에게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할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며 순교한 사도 바울이 있다(딤후 4:6-8).  반면에  신앙을 포기하고 목매어 죽은 가룟 유다가 있다(마 27:5).  이들이 하나님 앞에 받을 심판은 하늘과 땅 차이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말씀이 나온다.  종이가 남아돌아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다.  이것은 자기 기준대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원래 인간은 오래전부터 제 멋대로 살고 싶어 하는 좋지 못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삿 21:25).  슬픈 현실은 불신자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태반이다.  내 인생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 많은 부류 중 한 부류가 소중한 생명이 자기 것인 양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누구든지 자살하면 그 사람은 지옥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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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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