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한국에 전쟁 소문을 퍼트린 어떤 여성이 자신의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믿지 않으면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조성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여성은 귀신에게 순간순간 조종 당하고 있기에 구약 선지자와 신약 선지자의 차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낸 참선지자가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9:1, 삼상 10:18)라고 말할 그 당시에는 선지자가 전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과 같았고(18:19, 33:7), 자신의 개인적인 해석과 적용 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메시지 그대로를 전하고 선포했습니다( 22:38).  따라서 하나님의 보낸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고(삼상 8:7), 그의 말에 불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과 같았습니다(왕상 20:35-36).  그러나 D.A. Carson이나 Wayne Grudem이 말한 것처럼 신약의 예언자는 예언의 내용을 조심스럽게 점검 받을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하였는데, 이 말의 의미는 신약의 예언은 구약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 같이 하지 말아야 하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있는 신구약 성경에 의해 분별하고 확인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신약의 예언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기록된 성경을 통해 다른 지체들에게 확증을 받고 시정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고전 14:29).

 

무엇보다도 그녀의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고린도전서 143말씀처럼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소망과 기쁨을 주어야 정상인데( 1:5), 문제는 이 여성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마음에 소망이 일어나기 보다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거나 마음에 안정을 갖지 못하고 생업을 내려놓고 교회만 매달리는 일들이 일어났고, 심지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피신하는 현상들이 생기는 것을 볼 때 그 여성의 메시지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분명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말미암는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데( 10:17), 하나님의 메시지를 통해 소망을 주기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생겨 믿음이 흔들리거나 파선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딤전 1:19). 물론 하나님의 메시지 속에는 죄를 깨닫게 하거나(58:1), 죄인을 심판하는 경고성 말씀(33:7-9), 그리고 책망과 바르게 하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딤후 3:16),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시지도 않고(딤후 1:7), 인내하는 가운데 소망을 갖도록 은혜를 주실 아니라( 15:4), 어려운 환경 속에 흔들리지 않도록 든든하게 세워주신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20:32).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메시지를 무시할 필요는 없고, 그가 전한 메시지 속에서 헤아려 좋은 것만을 취하면 되는데(살전 5:20-22), 예를 든다면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여성의 문제점을 조금 더 살펴보면 예언은 성령의 깊은 감동 속에 전해지는 메시지인데(벧후 1:21), 이 사람은 입만 열면 마치 자신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직통으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말하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약성경 시편의 기자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중단 없는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3:1, 28:1, 39:12, 83:1, 89:46, 109:1).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요구하거나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예언을 수시로 수가 없었습니다( 42:1-7).  신약에 와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종종 답답한 일을 당하더라도 낙심하지 않았다고 했고(고후 4:8),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을 한다고 말합니다(고전 13:9).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수시로 메시지가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누군가 분별하거나 토를 달면 그 상대방(목사)을 향해 언성을 높여가며 회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볼 때(고전 13:2), 사람은 이미 성경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이고, 이미 점치는 귀신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신약의 예언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가능한 것이지만( 2:17-18), 역대상 252절에 보면 사람들이 아삽의 지휘 아래 예언을 하고, 아삽은 왕의 지위 아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 지도자(담임목사) 권위 아래서( 13:1), 예언이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들을 통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적대적이고 회의적인 사람들의 반응인데, 이들은 공격할 빌미를 잡고 은사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봐라! 저게 무슨 예언이냐, 무당 점치는 것이 아니냐!”  마치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미끼로 해서 고소할 조건을 찾으려는 바리새인처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8:1-11).  물론 이것이 공갈과 협박(왕하 18:17-37), 그리고 비판과 논쟁을 좋아하는 이단(사냥꾼)들처럼(딤전 6:4), 거짓말을 밥 먹듯이 잘하는 영이 비틀어져 있는 마귀의 습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8:44), 좋은 빌미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예언이 어떤 미숙한 사람에게는 마음에 상상일 수도 있고( 13:17), 사탄이 인간을 속이려하는 것도 있기 때문( 23:13)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요일 4:1).  그러나 이것을 모르고 미혹의 영에게 속아(요일 4:6), 메시지를 여과 없이 그냥 전하는 사람이나 이 일을 통해 성령의 은사인 예언에 대해 줄기차게 비판하는 일에 앞장선 목사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마귀에게 충동질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고전 12:7), ‘영들 분별함의 은사에 대한(고전 12:10), 절실함입니다.  특히 이 은사는 말씀이 혼탁하고(고후 11:4, 딤후 4:3-4), 온갖 잡다한 영들이(왕상 22:21-23, 12:43, 6:12, 딤전 4:1, 18:2), 판치는 이 세대에 반드시 필요한 은사인 것만은 사실이기에 현대 교회는 이 은사를 기도하는 가운데(고후 1:11), 간절히 사모하며 구해야 할 것입니다(고전 14:1,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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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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