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오늘날에도 모세에게 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시고( 3), 초자연적인 기적을 초대교회 때와 같이 일으키시며( 3:1-10), 예언을 하거나( 11:28), 방언기도로 말한다면(고전 14:39), 교회 전통과 질서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당혹스럽고 교리적으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성령이 머무를 가장 안전한 장소는 오직 성경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사실 개신교 주류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신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은사들이 오늘날 교회에서 나타날까 봐 무척 두려워하거나 이미 사도시대에 이런 은사들은 다 소멸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처럼 조상의 전통에 묶혀 공통적으로 한결 같이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는다는 말을 누가 하면 심기가 불편하고 극도로 의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John Wesley 18세기에 같은 말을 했을 때 런던 주교가 겁을 먹고 공포에 질린 것처럼 질서에 집착하여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죽은 전통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질서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질서와 제도 때문에 성령께 자유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는 자유로우시며 동시에 질서가 있으시므로 모든 사람이 무질서하게 동시에 이야기하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며, 방언을 할때 통역을 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고전 14:26-33).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Charles H. Spurgeon은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진리를 옹호하는 일에는 두려움을 몰랐던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 잠시 설교를 멈추고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젊은 청년, 자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장갑은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서 훔친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예배가 끝나고 난 뒤에 얼굴이 창백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한 청년이 Spurgeon에게 다가와 개인적인 상담을 요청했고, 그 청년은 장갑 한 쌍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 물건을 손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목사님만 아시는 비밀로 해주신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도둑질 했다는 말을 들으면 충격으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C. H. Spurgeon, Autobiography, Volume 2: The Full Harvest 1860-1892』에서 나오는 것으로 Spurgeon은 이러한 사실을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거나 조직신학을 잘 배워서 알아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이러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 나오는데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을 했고(왕하 5:26), 아람군대 왕의 신복 중 하나가 왕에게 한 말(왕하 6:12)중에도 선지자 엘리야에게 초자연적인 지식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엘리사가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 통달했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얻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은사 중지론자들은 성령이 모든 육체에게 전례 없이 부어질 것이라는 요엘서 2장의 약속이 성취 결과( 2:17)( 12:6)예언( 21:9) 그리고 환상( 9:10-12) 등의 계시적 활동과 더불어 은사는 오로지 기초적이고 일시적인 방식으로만 기능했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20세기에 정경이 완성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정경 이외의 예언적 계시나 은사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자 Richard Gaffin그리스도의 단회적 창설사역은 그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교회 창설기 시대에 일시적으로 주어진 은사들은 사도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영구적으로 철수되었다.  계시가 종결되었기 때문에 계시에 수반하는 모든 은사들도 종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러한 예언적 계시에 대해 D. A. Carson은 조직 신학자가 사용하는 좁은 의미의 계시와 성경이 말하는 넓은 의미의 계시의 정의를 혼돈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Carson의 주장에 대해 Gaffin은 매우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입장을 보였는데, 사실 그가 은사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만약 예언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정경이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계시가 올 때마다 정경의 또 단위가 보완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기에,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모든 계시의 언약성(covenantal nature)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이런 기능들이 오늘날에도 계속된다는 것은 지나친 견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계시라는 말을 기록된 성경과 동일시하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자와 목사들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일 뿐, 은사주의자들은 성경 66권이 기록된 이후에 신약의 예언이 성경과 동일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은사중지론자들이 말하는 계시에 대한 해석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나온 신학적 편견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계시를 받았거나 예언을 하면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처럼 성경말씀에 무엇인가 더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심각한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확실하고 완벽하게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주 안에서 결혼할 것을 말하지만(고전 7:39), 어느 지역에 사는  누구와 어떻게 결혼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 것처럼 누구를 인도하기 위해서( 16:13), 또는 권면하거나 위로하기 위해(고전 14:3), 때로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16:9), 하나님이 성경을 초월하여 말씀하실 가능성은 성경이 그 자체에 대해 주장하는 충분성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Wayne Grudem이 말한 것처럼 순간적 계시에 근거한 예언을 통해 드러내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점을 인정하거나, Spurgeon이 설교 시간에 성령의 은사인지식의 말씀을 사용한다고 해서(고전 12:8), 이것이 성경의 충분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유익을 주는(고전 12:7), 다양한 은사들( 12:6-8, 고전 12:8-10, 12:29-30, 4:11)이 초대교회가 사라진 뒤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거나 혹은 하나님이 입을 닫으셨다고 믿게 만드는 내용은  성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1세기 교회에서 성령께서 불신자의 죄를 드러내어 회개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초월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중요했다면(고전 14:24), 21세기에는 왜 그것이 덜 중요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은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신비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기에 반드시 건강한 영성을 유지하려면 지적인 것과 체험적인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J. I Paker“The Holy Spirit and His Work” in Applying the Scriptures: Paper from ICBI Summit III』에서 한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믿는 기독교의 일부 가지들은 은혜 언약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의 구원적 사랑은 분명하고 건전하게 취급하는 것 같은데도, 활력을 주시는 성령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경건면에서 메마른 것 같다. 반면에 은사주의적 기독교의 일부는 그 모든 넘쳐흐르는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성자보다는 성령에 관심을 집중하고 사실상 성부를 무시한 탓으로 김이 빠져 버리고 스스로의 진흙 속에 빠져서 위축되고 미숙한 것처럼 보인다.”  간추려 요약하면 말씀만 강조한다면 방자한 지성주의자가 될 우려가 있고, 은사만 강조한다면 천박한 감성주의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에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균형 잡힌 신학과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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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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