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앙의 초보인 자매가 성령의 은사 방언’(고전 12:10)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면서 방언 받지 말 것을 강조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 자매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자기 자신의 잘못된 영적체험에 대해서만 신뢰할 뿐, 과연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검증하지 않은 채(고전 14:27-29, 살전 5:21, 요일 4:1), 무조건 방언 받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은 성령이 각 사람의 유익을 위해 허락하신 귀중한 은사(고전 12:7)을 심히 거역하고( 7:51), 소멸하는 것으로 좋은 태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살후 5:19).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방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귀한 선물이고( 1:17), 믿는 자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자기 덕을 세우는 은사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고전 14:4, 26),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신자의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에게 잘못된 것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신뢰해야만 합니다( 7:9-11, 8:32).  그리고 누구든지 독단적인 말을 하거나 어떤 주장을 내세우기 전에 그것에 대한 연구조사를 미리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2때 분별력 없어 귀신이 주는 방언인지 아니면 자기 도취에 빠져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방언 받은 것으로 착각하며 쓴 『방언, 그 불편한 진실』의 저자처럼 이 자매 역시 성령의 은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부터 차분하게 배우지 않았기에 일어난 문제인 것 같습니다(딤후 3:14).  그러므로 자신의 분별력 없는 무지하고 미련하게 행동한 것을 하나님과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19:3).

 

오늘날 성령의 은사에 대해 체험이 없는 사람은 방언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에 잠재의식에서 올라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특히 Nils Bloch Hoel의 저서 『Pentecostal Movement』에서 말한 것처럼 방언을 심리학적 질병으로 진단하고 방언을 말하는 자를 일종의 변종으로 진단합니다.  그의 의학적 견해는 들어보면 “진정한 Xenolalia(외국어란 뜻)는 일시적인 정신적 현상으로서 환자가 황홀경에 들어가거나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외국어를 근육 운동을 통해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상태인 기억증진증(Hypermnesia)과 과거의 경험을 회상했을 때에 그것이 미경험인양 느껴지는 정신병리학에서 말하는 잠복기억(Cryptomnesia)이라는 전문 용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만족스럽고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이 방언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Hoel의 이런 주장은 오늘날 방언하는 사람이 황홀경이나 정신적 충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상태가 온전한 가운데 방언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온 잡설(雜說)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록된 대로 방언하는 자는 몰아지경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식이 있어 방언을 통제할 수 있고(고전 14:27-32), 성령이 역사하실 때 비합리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하고 중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행 2:4, 14).

 

물론 고전적 신비주의 경건과 다른 일부 신비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예를 들면 혼자만이 성령의 은사를 독점적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이 예배나 기도 중에 광적이거나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무질서한 행동을 통해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방언은 일종의 무아지경의 언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데 일조했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신앙의 초보이거나 말씀으로 무장되기보다는 은사를 먼저 받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묘사하는 바는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오순절날 강한 능력으로 임하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방언을 그치고 베드로가 모인 군중들에게 설교를 할 수 있었고( 2:1-21), 사도 바울도 방언을 순서에 따라하고 세 사람이 넘지 않게 하라고 명함으로서 방언을 말한 사람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과 스스로 자제할 수가 있고 아무도 방언하지 않을 때나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만 방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4:27).  더 나아가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할 것과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을 고린도 신자들에게 가르친 것으로 볼 때에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방언은 Lloyd Jones가 말한 것처럼 심리적인 방언이나 귀신이 주는 방언과 달리 충분히 자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고전 14:26-33)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바울이 방언을 일종의 무아지경(無我之境)의 말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방언의 은사에 대해 Peter Wagner는 “자신이 배우지 않는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역량이고, 그분께 받은 즉각적인 메시지를 자신이 배우지 않는 하나님의 성별된 언어로 그분에게 전달하는 역량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방언을 사적방언공적방언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먼저 사적방언은 흔히 기도의 언어로 간주하고 방언통역의 은사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1428절의 말씀을 제시합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통역이 없는 방언은 교회에서 활용되면 안 되고 그 은사를 가진 사람은 다만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공적방언은 방언통역의 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하면서 통역이 없으면 공적방언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교회에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고전 14:27-28).  요약하면 사적방언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도의 언어로서 자기의 덕을 세워주기 때문(고전 14:4)에 통역할 필요가 없지만 공적방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교회 공동체에 전달하는 것으로 반드시 통역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고전 14:23).  따라서 바울이 말한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라는 말은 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방언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회중 가운데 통역하는 사람이 없을 때 즉, 예배 중에 통역이 없는 방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 성령의 열매인 절제를 빼놓고 신앙생활을 한다면(5:23), 이런 초보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인해 고린도교회처럼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에 기록된 방언(고전 12-14)은 성령 하나님이 각 사람의 유익을 위해(고전 12:7), 허락하신 귀한 은사이기(고전 12:11)에 누군가 방언을 금하거나 귀신의 역사로 매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고 또한 방언은 남용이나 오용될 수 있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지혜로운 관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고전 14:40).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방언의 은사가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고전 13:8-10)에 오늘날 방언이 존재하느냐에 대해선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고, 방언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을 누리는 유익한 은사로(고전 14:14)서 우리의 영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는 놀라운 그분의 선물이기도 합니다(1:17).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를 때 돕는( 8:26), 은사이기에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20).  물론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6:18)과 로마서826절의 말씀을 해석할 때, 이 구절들은 방언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도생활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체험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지만, 아무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에게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합니다(고전 14:18).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방언 말한 것보다 훨씬 많이 했다고 고백하는 이 말속에 그가 지녔던 영적인 권능의 비밀이 여기에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따라서 누군가 '방언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방언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신자들만이 말하는 천상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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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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