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감정들과 다른 감정들 사이의 차이점은 크고 뚜렷하게 구분해 주는
또 하나의 다른 표지는 은혜로운 감정들이 더 높이 고양되면 될수록
영적인 만족을 위한 영혼의 영적인 욕구와 갈망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거짓된 감정들은 그 자체로도 만족해한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본성이 어머니의 젖을 갈망하게 되는 것처럼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아이의 본성은 거룩하게 자라기를 갈망한다. 갓난아이의 건강 상태가 최상일 때 가장 강한 식욕이 생기는 것이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2-3). 참된 그리스도인은 더 큰 영적 깨달음과 감정들을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더 성장하기 위해 은혜와 영적인 양식을 더욱 간절히 갈구하는 거지가 된다.
영적인 즐거움을 조금 경험한 사람은 어떤 다른 즐거움을 갈구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즐거움에 온전히 만족하기 때문에 어떤 변화도 원하지 않으며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된다. 영혼은 결코 물리거나 실증내지 않는다. 이런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같은 즐거움을 더 많이 갈구하게 된다. 영혼이 정적인 선을 경험하면 할수록 영혼은 영적인 선의 탁월하고 비할 데 없는 고상하고 만족스러운 아름다움을 더 알게 되며, 영혼의 완전함에 이를 때까지 더 많은 영적인 선을 더 간절하게 갈구하고 갈망하게 된다. 따라서 영적인 감정들은 본질상 그 감정들이 크면 클수록 은혜와 거룩함을 더 많이 원하고 갈망하게 된다.
성도에게는 거룩하고자 하는 불타는 갈망이 있으며 이것은 생명력 있는 열기가 몸에 자연스러운 것처럼 새로운 피조물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성도에게는 거룩을 더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영을 더 거룩하게 열망하고 갈증을 느끼는데 이것은 호흡이 살아 있는 몸에 자연스러운 것처럼 거룩한 본성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거룩 또는 성화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고자 하는데 더 직접적인 목적이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한 젖을 사모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말씀으로 그들이 거룩하기 자라기 위해서이다.
위선자들은 깨달음이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영향력보다는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크게 나타나는 것과
깨달음이 가져다주는 현재의 위로 때문에 깨달음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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