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들이 거짓된 감정들과 다른 점 또 한 가지는
그것들이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성도들이 경험하는 미덕들과 은혜로운 감정들의 균형이 이 땅에서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 균형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결함이 있다. 그것은 은혜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거나 말씀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잘못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본성적인 기질의 독특한 결점 때문이기도 하고, 교육의 결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 외에 다른 많은 약점들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은혜로운 감정들과 성도들이 가진 참된 믿음 사이가 소름끼칠 정도로 조화롭지 못한 경우는 결코 없다. 이런 부조화는 위선자들의 거짓된 믿음과 가식적인 은혜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된다.
성도들과 위선자들 사이에 있는 한 가지 큰 차이는 성도들의 기쁨과 위로에는 특별하게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과 애통함을 동반한다는 사실에 있다. 성도들은 처음 회심할 때도 죄를 슬퍼할 뿐 아니라 회심하여 그들의 기쁨이 자리 잡은 뒤에도 죄를 여전히 슬퍼한다. 성경은 참된 성도들을 죄를 애통해 한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애통해 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여전히 죄를 애통해 하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거짓된 열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미워하는 열심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미워하는 열심히 있다. 하지만 참된 열심을 가진 사람은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지배적이고 위험한 악을 대항하기 위해 적절하게 열심을 내지만 주로 그 열심을 자신의 죄와 싸우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죄악을 크게 혐오하는 척 하고 자신의 내적인 부패함에 대해 많이 울부짖는 척 하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는 죄를 가볍게 여기며 죄를 짓지 않으려는 분투나 죄를 애통해하지도 않으면서 죄를 짓는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은 마음과 삶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신앙적인 교제에 큰 열심을 내지만,
신앙의 골방에는 열심히 적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종종 감정적으로 높이 고양되지만,
그들이 단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대화할 때는 감화를 적게 받는다면
그들의 믿음은 매우 어두운 것이다.
'신앙감정론 > 뚜렷이 구별해 주는 표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 (0) | 2017.03.09 |
---|---|
하나님을 향한 갈망 (0) | 2016.12.01 |
하나님을 두려워함 (0) | 2016.01.06 |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감 (0) | 2015.09.30 |
성품의 변화 (0) | 2015.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