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매우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된다.  이런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너무 말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바리새인이나 잘난 체하는 위선자로 정죄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한편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즉시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이며 성령의 구원하시는 능력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무지하고 성급하게 단정해 버리곤 한다.  이 사람들은 신앙적인 일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은 여러 사건들에서 충분히 본 것처럼 사람들의 판단력이 흐리고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성경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원칙으로 만들고 자신의 지혜와 분별력을 믿기 때문에 종종 범하는 실수다.  비록 성경에는 우리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고 다른 사람들의 영적 사태를 판단할 때 사용할 원리로 가득 차 있지만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하는 것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건전한 영적 상태에 있다고 판단 내릴 수 있는 원리가 된다는 말씀은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단지 입과 혀에 달린 믿음일 뿐이며 성경에서 말씀하는 나뭇잎들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풍부하게 말하는 것은 좋은 이유 때문일 수도 있고 나쁜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마음에 쌓은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의 마음이 거룩하지 못한 감정들로 가득 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에 쌓은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지 사람들이 강한 감정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 체험을 많이 말하게 될 뿐 아니라 매우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풍부하고 매우 열정적으로 말한다는 것으로 단지 그들이 신앙적인 일들로 크게 감동되었다는 사실을 증거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참된 은혜 때문에 생긴 감동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거짓된 감정들은 만일 그 강도가 같다면

참된 감정들보다 더 심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거짓 믿음의 본질이 바로 겉으로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런 현상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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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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