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는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서에 나오는 기사(記事)의 배경이 되는 나라이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바벨론 포로민이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허락했던 자이다(스 1:1-4). 그리고 느헤미야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였던 자는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인 아닥사스다 1세였던 것 같다(느 2:1-6). 한편 아하수에로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았던 자이며 유대인들을 하만으로부터 보호했던 왕이다(에 2:17, 8:3-17). 이러한 인물사적(人物史的)인 배경 외에도 페르시아는 유대인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니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을 중시하는 자들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빛과 어두움, 선과 악 등의 대립적 사고 체계가 페르시아의 이원론적 개념에서 따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요 3:19-21). 또한 페르시아는 한때 서남 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여 대제국으로서의 위엄을 떨치기도 하였으나 후에 쇠퇴의 길을 걷다가 다시금 서서히 국력을 회복하여 오늘날에는 이란(Iran)이라는 이름으로 국명을 바꾸고 새로운 발전을 꾀하고 있다. 본고(本稿)는 페르시아의 국명과 위치와 역사, 그리고 문화의 순서대로 내용을 전개하려 한다.
1. 국명
페르시아(Persia)라는 국명은 개혁 성경에 ‘바사’로 번역되어 있다. 히브리어로 <파라스>, 구페르시아어로는 <파사>, 그리고 헬라어로는 <페르시아>, <페르세스>, <페르손> 등으로 불리웠던 이 국명은 현대에 이르러 Reza Shah Pahlavi, 1925-1941)에 의해 ‘이란’(Iran)으로 개명되었다.
2. 위치
서남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는 페르시아는 지리적으로 매우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즉 그 국경은 북쪽으로 소비에트 연방과 카스피 해(Caspian Sea)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페르시아 만과 호루므즈 해협(Strait of Hormuz), 오만 만(Gulf of Oman)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서쪽 국경은 이라크(Iraq)와 터어키(Turkey)에 맞닿고 있으며, 동쪽 국경은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과 서파키스탄(West Pakistan)에 맞닿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란’이라는 지명은 위에서 언급한 지역과 아울러 통상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서파키스탄, 그리고 발루키스탄(Baluchistan)을 합한 지역을 일컫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3. 역사
대부분의 페르시아인은 코카서스 종족이며 그 외에도 유대 – 페르시아인 사이의 혼혈인 및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페르시아의 역사는 B. C. 6000년 이전부터 시작된 선사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본고는 B. C. 675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만을 간략히 살펴보려고 한다. B. C. 675년에 페르시아의 왕이 된 Teispes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파르사의 왕으로 봉해진 Aritaramna와 안샨의 왕으로 봉해진 고레스 1세이다. 이 고레스 1세의 손자인 고레스 2세가 바로 에스라에 나오는 ‘바사 왕 고레스’(스 1:1)인데, 그는 B. C. 539년에 바벨론을 멸망시켰다. 이후의 왕권은 Cambyses 2세를 거쳐 다리오 1세에게 전해졌으며, B. C. 486년엔 다시금 크세르크르스(Xerxes), 즉 아하수에로(Ahasuerus)에게 전해졌다. 혹자는 캄비세스(Cambyses) 2세가 아하수에로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리오(Darius) 1세와 아하수에로는 둘 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다(스 4:5-6, 에 1:1). 아하수에로는 집권 후 페르시아의 오랜 숙원이었던 헬라 정복을 단행하였으나 오히려 살라미스(Salamis) 해전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그 다음 나오는 왕은 아닥사스다 1세로서 에스라, 느헤미야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스 4:7-24, 7:1-26, 느 1:1, 2:10). 이후 헬라, 로마가 세계 패권을 차지하던 시대하에서 급속도로 국력이 쇠퇴하였던 페르시아는 A. D. 226년 사산 왕조 시대에 이르러서야 세력을 회복하게 되는데, 아닥사스다 1세 이후의 인물에 대해서는 성경적 언급이 전혀 없다. 사산 왕조의 통치하에서 페르시아에는 미드라교(Mithraism)와 마니교(Manichaeism)가 발생하였으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동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산 왕조는 자국 내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다. 한편 7세기에 이르러 아라비아의 회교도들이 온 세계를 회교화하려는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때 페르시아도 회교도들에 의해 침략을 당했으며 결국 이슬람 제국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1925년에 팔레비(Reza Shah Pahlavi)가 왕좌에 오른 후부터는 이란에 민족주의 성향이 대두되었으며 1979년에는 이른바 ‘회교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이 축출되고 회교 지도자 호메니아(Ruhollah Khomeini)가 정권을 잡고 ‘이란 회교 공화국’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문화
페르시아의 예술과 문학, 그리고 과학은 유럽 셰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천문학, 건축, 조각술 등이 있다. 한편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의 성문집(聖文集)인 아베스타(Avesta)는 외경서와 같은 후기 유대교의 제반 문헌들에 끼친 영향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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