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반세기가 지난 이야기이지만 그때에는 너무 무지했던 것 같았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당시 출석하던 교회에서 믿음 좋은 사람들 통해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들은 만날 때마다 신앙의 초보인 나에게 예수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나팔을 불어댔다.
사실 성령을 받으면 믿음생활을 하는 데 있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좋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아니, 지겨울 정도로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성령을 받아야만 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세히 가르쳐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얼마 후 다니던 교회에서 어느 성령이 충만한 사역자를 초청하여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광고를 듣게 되었다. 사경회 같은 말씀 집회가 먼저 끝나고 난 후 초청한 강사를 통해 성령 받을 사람들은 교회 목사관으로 모이라는 광고가 있었다. 나는 아는 분과 다른 사람들처럼 줄을 서서 초초한 마음으로 성령을 받기 위해 기다리게 되었다.
지금 오랜 세월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교회 안에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세상에나! 장로와 안수집사들이 있었고, 성경에도 없는 직분을 가진 서리 집사와 권사들도 있었다. 아무튼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목사관에 들어가 기도를 받고 뒷문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들이 성령을 어떻게 받았는지, 또 성령을 받을 때 어떠한 느낌이나 일(현상)이 일어나는지 초신자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궁금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안내하는 집사를 따라 목사관으로 들어가 그 사역자를 통해 안수를 받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머리에 손을 얻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두 눈을 지그시 짓누르는 것이었다. 신앙이 초보인 나로서는 남들도 다 그렇게 받는 줄만을 알았다.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속된 말로 ‘눈깔 찌르는 안수’가 성경에 나오는 정상적인 안수인줄만 알았다.
한 번도 안수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 시간이 호기심과 긴장감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더 희한한 것은 내가 선 상태가 아닌 드러누운 상태에서 안수를 받았는데, 눈에 티슈 한 장을 덮고 손가락으로 처음에는 서서히 나중에 조금씩 강도가 높아지더니 세게 눌러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눈에 번쩍이는 빛이 보였다. 순진한 나는 눈이 너무 아프지만 ‘빛이 보입니다’라고 말하자, 그 사역자가 그것이 ‘성령의 불’이라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받기 원했던 성령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안수기도를 해주신 그 강사분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 당시 눈이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성령을 받았다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거울에 비추어진 내 눈을 보니 많이 충혈되어 있었고 손으로 살짝 만지기만 해도 무척이나 아팠다.
다음날 아침 호기심이 많은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그 사역자가 하던 대로 내 눈을 손가락으로 처음에 지그시 나중에는 강하게 눌러보았다. 그러자 그 놀라운 빛, 그 사이비 목사가 말한 가짜 성령의 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더 신기한 것은 이상하게 누르면 누를수록 눈은 아팠지만 그 빛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오늘날 성령 받은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제각기 가지고 있는 신앙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먼저 ‘방언’을 강조하는 사람은 방언을 해야 만이 성령 받은 것으로 주장하면서 오순절날 성령이 임할 때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을 성경적으로 제시한다(행 2:4). 또한 하나님 앞에서 떤다는 뜻을 가진 Quaker 교도들처럼 ‘몸에 진동’을 느끼거나 떠는 사람, 혹은 기도를 받고 쓰러져 ‘성령 안에 안식’ 하는 것을 통해 성령을 받으면 몸에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겔 1:28, 단 10:7-10, 계 1:17).
그리고 ‘환상’을 봐야 한다고 나팔을 불어대는 사람은 베드로가 성령 받기 전에는 환상을 보지 못했지만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후에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 본 것을 내세우기도 한다(행 10:9-16). 더 나아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서 안수할 때 사람들이 성령 받은 것(행 8:14-17)과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 받은 것을 내세우면서(행 19:6), 만약 누군가 ‘불의 종’, 혹은 ‘능력의 종’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은 사람은 이미 그를 통해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런 것들은 성령을 받은 절대적인 증거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불건전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외부적으로 보이는 역사가 있어야만 성령이 역사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조용하고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왕상 19: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