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per의 불만

최후의 심판 2025. 3. 29. 10:44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인물은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 두 명의 저명인사, 영국 신약학자 N. T. Wright와 미국 목사 John Piper다.  비록 마지막 최후의 심판에서의 행위의 역할이 두 사람 사이에 드러난 견해 차이의 핵심은 아니지만, 상당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음 확실하다.  문제는  The New Perspective(새관점) 보급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인물 중 한 사림인 Wright가 최후의 심판에서 신자에게 주어질 최종의 칭의는 그가 살아온 삶 전체 기초하여, 또는 어느 정도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주장해 왔다.  다시 말해 칭의는 행함(performance)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자 Piper는 The Future of justification: A Response to N. T. Wright에서 Wright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Piper가 가장 크게 우려한 것 중의 하나는 “Wright가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칭의가 행위에 기초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취지의 깜짝 놀랄 만한 주장”을 천명했다는 것이었다. 

Piper는 다시 한번 The Purifying Power of Living by Faith in Future Grace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념을 밝힌다.  “우리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법정에서 우리의 믿음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공적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 대한 증거다. 따라서 바울이 ‘각각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말할 때, 그는 우리가 받을 상이 우리의 행위에 따라 주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행위에 따라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런데 Wright에 대한 Piper의 불만은 Wright가 ‘오직 믿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칭의에 대한 Catholic의 해석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 Piper의 불만이었다.  Piper에 따르면 “Wright는 내가 우리의 선한 행위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한 필수적 증거라고 말할 때 의미한 바와 다를 바 없는 의미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따라서 Piper는 “나는 Wright가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사실은 이것이 그가 믿고 있는 바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이미 살펴봤듯이, Piper는 심판뿐 아니라 심지어 행위가 한 사람의 최종적 구원에도 필수적이라는 점을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가 가장 크게 우려한 부분은 Wright가 최종적 구원의 궁극적 기초 혹은 근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완성된 십자가 사역에 대한 믿음에 있다기보다는 우리의 행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었다.  Piper는 The Future of Justification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칭의에 대한 근거로서의 율법 준수로부터 자유롭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말을 들은 Wright도 꿀 먹은 벙어리가 아니었다.  그는 Justification God’s Plan and Paul’s Vision』이라는 책으로 Piper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자신은 우리가 구원을 우리의 힘으로 얻는다거나 구원을 위해서는 완전한 삶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롬 6:1-11)과 성령의 내주 하심(롬 2:25-29)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고(롬 6:6-11), 율법에 순종할 수 있으며(롬 8:4), 몸의 행실을 죽이고(롬 8:13), 마침내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롬 8:13).  한 마디로 자신의 견해는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연이어 말한다.  “인간은 성령이 그들 안에 역사하실 때에는 진정한 인간,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이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율법이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들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최후의 심판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최종 판결을 이끌어내는 삶이다.  이것은 믿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에 앞서 현세에서 사람들을 의롭다고 칭하신다면, 그것은 믿음이 그렇게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이들의 특성을 잘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Wright의 답변은 그를 비판하는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불충분했다.  최종적 구원에 대한 근거가 여전히 모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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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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