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은 회심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삶의 모든 부분,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련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life)에서 행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Wesley는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일하신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일해야 한다.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도 일하지 않으신다. … 하나님의 은혜의 덕 안에서,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 안에서 계속하여 여러분을 보호하고, 동행하며, 인도하신다”
Wesley와 같이 Calvin도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증언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laws of God)에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Calvin은 그리스도인이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선행 은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의 대결은 Wesley와 Calvin의 책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구원 그 이상을 말하고, 그리스도인의 삶 그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사람 전체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 즉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혹은 ‘선행하는 은혜’(preventing grace)를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Calvin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이나 상관없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모든 일을 주관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악한 일이 없으며, 적어도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맞지 않는 일은 없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저항할 수없도록 명하기 때문에 우연히 일어나거나 예상하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Calvin은 『기독교강요』 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신실한 사람들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간 상인이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숲 속을 헤매던 그는 강도 소굴에 들어갔다가 강도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이 미리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예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정했기 때문이다(욥 14:5). 그러나 우리는 사고 범위에서는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대목에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죽음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이 일을 이끄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Calvin은 선한 것이 하나님에게 나온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죄와 악을 포함하여) 나쁜 것들은 (사탄이 했을지라도)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Calvin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통치의 유효한 본성을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죄와 악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그는 모든 선한 일들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의심이 없었다. 동시에 고통이나 고난, 죄 혹은 악에 대하여 인간은 책임을 갖지만 하나님은 책임이 없다고 믿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 비난의 책임을 돌리는 것인데, 이는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반대로 Wesley는 사람들을 회심으로 불러 믿음을 갖게 하고 죄를 회개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회심으로 부르는 소명이 진정한 것인지 확인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부름에 응답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영생뿐 아니라 지상에서의 일시적인 삶도 그러한 응답에 달려 있다. Wesley는 Calvin의 믿음과 대조적인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실질적으로 은혜의 저항할 수 없는 성격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다. 『Predestination Calmly Considered』에 나온 Wesley의 말을 들어보자. “주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대사를 파송하신다. 하나님이 직접 ‘포로 된 이들에게 구원을 선포하면서’ 어떠한 제한이나 암시를 두지 않으셨다. 그러나 Calvin을 따르는 여러분은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마치 하나님이 감옥 문 앞에 서서 열쇠를 손에 들고, 포로들을 불러 초대에 응답하라고 요청하면서,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유인책을 제시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귀중한 약속을 주고, 순종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협박을 하는 분으로 그린다. 그 순간에 주님은 그들에게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고 이미 결정한 분으로 가정하고 있다. … 형제들이여, 그것은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을 도대체 어떤 종류의 신실함을 가진 분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인가?”
Wesley는 Calvin 선생의 신앙이 성경의 가르침뿐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Calvin은 구원이 전적으로 사람들의 책임 밖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Calvin은 인간이 자신의 영원하고 영적인 행복을 책임지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Wesley는 인간이 책임이 하나님의 통치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확신, 혹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사는 것을 결코 약화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인간의 책임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은혜롭게 역사하는 관계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임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 정의 그리고 다른 특성들을 보다 확실하게 증명한다.
Calvin과 Wesley의 다른 유형의 은혜를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Calvin은 『기독교강요』 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반적 은혜’(general grace)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는 은혜라고 믿었다. 일반적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 사이에 다양성이 존재하도록 하고, 그들의 죄와 악이 파멸의 길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반적 은혜는 모든 사람이 현재의 삶에서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는 유익한 증거다. 그러나 그 유익은 ‘일시적’(temporal)이다. 일반적 은혜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special grace) 혹은 ‘유효한 은혜’(effectual grace)가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지는 않는다. Calvin은 『기독교강요』 에서 말한다. “어리석거나 부족하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그 결점 때문에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무에게도 임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구원하는 특별한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베풀지는 않지만, 유익한 일반적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베푸신다. Calvin은 일반적 은혜가 사람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을 보여주고, 바로 그 이유가 사람에게 인성과 지성, 성취와 관련하여 숱한 개성과 ‘다양성’(diversity)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하나님은 사람 안에 율법을 주시는데, ‘십계명’(Ten Commandments)의 경우처럼 율법을 주는 것은 일반적 은혜의 행동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은혜는 여전히 일시적이며 인간의 구원에 직접적인 동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일반적 은혜에 대한 Calvin의 믿음은 선행은총에 대한 Wesley의 믿음과 차이가 있다. Wesley는 선행 은총이 사람들의 구원을 돕는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의하면 선행 은총은 구원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궁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반적 은혜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죄와 악의 즉각적인 영향력을 억제하는 이 세상에서의 능력과 더 많이 관련된다. 그러므로 선행 은총은 성령이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사람들을 영적 성장에 참여하도록 이끌고, 안내하고, 능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영적 삶에 더욱 역동적이고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
Wesley가 선행은총을 말할 때, 강조점은 인간의 협력자 역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한다는 데 있었다. 그 후에 사람들은 믿음과 회개로 응답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한 책임성을 갖게 되었다.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에서 Wesley는 말한다. “구원은 은혜를 확신함으로 이루어지는데,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회개라는 말을 쓴다. 회개를 통하여 우리 자신에 대하여 보다 많이 알게 되고, 돌 같은 마음이 구원으로 나아간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구원을 경험한다. 우리는 두 가지 큰 줄기인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로 나아가게 하는 ‘은혜로 말미암아’(through grace), ‘믿음을 통하여 얻는 구원’(are save by faith)을 경험한다”
Wesley와 Calvin은 칭의의 문제에서 전혀 이견이 없었다. Wesley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Calvin의 관점에서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거룩하게 하는 은혜에 있어서는, 잘 알려진 것처럼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Wesley에 따르면 은혜는 칭의뿐만 아니라 성화를 위해 선행적으로 유효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정하신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수단을 취함에 있어 책임적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