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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8.18 Monica of Hippo
  3. 2017.04.27 Henry Morton Stanley
  4. 2017.01.26 Charles Haddon Spurgeon
  5. 2016.10.27 Mary Slessor
  6. 2016.07.21 John Knox
  7. 2016.04.28 John Hyde
  8. 2016.02.24 Dwight L. Moody
  9. 2015.12.02 George Muller
  10. 2015.09.09 Nicolaus Ludwig Zinzendorf
  11. 2015.07.08 George Whitefield
  12. 2015.04.29 Martin Luther

Pandita Ramaba

기도의 사람 2017. 11. 24. 13:38

Ramabai는 남부 인도의 신분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Sanskrit의 대가이자 힌두교 경전교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물욕이 없는 인물이었고,

급기야는 빈털터리가 되어 마을 전전하는 음송 시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Ramabai도 고통에 찬 유년을 보내야 했고,

잇달아 부모형제를 잃고는 더욱 암담한 현실에 처하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그녀의 뛰어난 지성과 위트,

즉흥적인 Sanskrit 시작(詩作) 능력은 당시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녀는 결국 학자협회로부터교사라는 칭호까지 얻었는데,

그녀의 이름의 ‘Pandita’는 다름 아니라 

교사를 의미하는 ‘Pandit’의 여성형 표현이다.

그러나 유명세도 잠시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남자와 결혼하면서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그 남편마저 이내 병사한 후에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던져지고야 만다.

힘든 상황과 불확실한 미래는 

그녀로 하여금 힌두교 신앙에 대해 회의하게 만들었으며

앞날을 약속해 줄 진정한 신을 찾게 했다.

그녀는 결국 예수님의 품에서 참 안식을 얻었고,

그로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추구하게 된다.

1889 가난한 영송과 고아들을 위한 쉼터를 설립한 Ramabai

그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동시에 교육과 직업 훈련의 기회 또한 베풀었다.

그녀는 인도 전통사회의 억압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고,

과부들의 권익 옹호와 아동의 결혼 금지를 위해 싸웠다.

그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민간인이 읽을 수 있는 인도어 성경 번역에도 시간을 쪼개어 냈다.

그녀의 믿기 힘든 불굴의 의는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기도와 성경공부에서 나온 것이었다.

격무의 연속이었던 그녀의 하루는 

언제나 새벽 4시의 간절한 기도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성경교사이자 약한 자들의 자애로운 어머니였던 Ramabai

소박하고 순전하게 간구함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부유하거나 위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가 사랑의 손으로 매일 양식을 주시기에 행복합니다.

하루하루 필요한 것 이상은 

조금도 받지 못하고, 은행 통장도 없고, 수입도 전혀 없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에 두려울 것도 잃을 것도 후회할 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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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ica of Hippo

기도의 사람 2017. 8. 18. 13:12

기독교 3현모(賢母) 가운데 사람인 Monica

기독교 역사상 획을 그은 신앙 위인 Augustine of Hippo 친모이다.

시대 최고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Augustine 방탕한 삶에서 건져내어

기독교도로 개종시킨 것이 바로 어머니 Monica였다.

Augustine 그의 불후의 명저 『참회록』에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Monica가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기도드린 세월은 10년이 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들이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올 줄을 모르자,

그녀는 존경하던 Ambrose 주교를 찾아갔다.

그녀가 흐느껴 울며 아들을 돌이킬 방도를 묻자 현명한 주교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결단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하나님은 Monica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Augustine 돌이키셨으며,

기독교사에 길이 남을 신학자요,

종교지도자로 되게 하셨다.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였던 그녀의 눈물은

로마 전례의 축일 기도문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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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활동을 하다 1869년 아프리카에서 소식이 끊긴

David Livingstone을 찾아내라는 밀명을 받고

아프리카 탐험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는 천신만고의 역정 끝에,

1871년 11월 식량과 약품이 모두 떨어진 채

앓고 있는 Livingstone과 극적으로 만났다.

이때 Stanley가 “Livingstone 박사님이지요?”라고

인사를 건넨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1874년 Livingstone 구출을 위해 다시 한번 아프리카로 갔으나

이번에는 Livingstone의 죽음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탐험에서 그는 나일 강의 원천인 빅토리아 호를 발견하고,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등 아프리카 탐험의 한 장을 새로 썼다.

그를 불굴의 탐험가로 만든 요인으로는

그의 타고난 담대함과 인내심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강하게 만들어 준

기도의 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새로운 도전과 위험과 앞에 설 때마다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기도는 나의 눈을 멀게 하거나

마음을 희미하게 하거나 귀를 막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일에서 즐거움과 자부심을 얻게 해주었고,

1,500마일의 숲 속을 거뜬히 지나갈 수 있도록 희망을 주었으며,

매일 매일의 위험을 극복할 의욕을 주었습니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 가운데는

우간다의 토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된 기적 같은 이야기가 있다.

탐사 여행 중에 만난 한 원시부족의 추장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설명하고

깊은 인상을 심어 준 Stanley

더 나아가 그 지역에 선교사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낼 결심을 하였고,

그 중요한 편지를 본국에 전달한 인물로 한 프랑스인을 선발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 젊은이는 험난한 여정 중

무지몽매한 토인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의 비참한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몇 달 뒤 영국 군인들에게 그의 유골과 함께

그가 신었던 부츠 안에 있던  Stanley의 편지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한 용감한 탐험가의 기도와 이름 없는 청년의 희생은

이렇게 해서 위대한 기적 하나를 성취하였다.

이 편지에 감동받은 7명의 선교사가 Stanley가 있던 오지로 들어가서

그 일대의 원주민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계시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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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위대한 설교자 Spurgeon은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악을 거부하고,

진리를 옹호하는 일에는 두려움을 몰랐다.

젊은 시절에 경험한 분명한 회심과

청교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성경해석 방법,

천부적인 유머감각과 맑은 목소리,

그리고 적절한 몸놀림은

그로 하여금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호소력을 지닌

최고의 설교자가 되게 하였다.

그는 또한 누구보다도 기도의 위력을 믿는 사람이었고,

그의 배후에는 항상 기도하는 지원부대가 있었다.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다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한다.”

“마른 눈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그에게는

그야말로 기도가 영혼의 본능이었고

삶의 성취였다.

그의 기도문들은

그 유명한 설교 내용들보다

때로는 더욱 깊이 있고 아름다우며

세월의 벽을 뛰어 넘어

우리를 감격하게 하고 

‘박동수’(搏動數)를 높인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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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Slessor

기도의 사람 2016. 10. 27. 10:14

19세기, 여성에게는 엄격하기 그지없었던 시대에 태어난 Slessor는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아프리카 개척선교사로 일생을 불사른 용감한 여인이었다.

스코틀랜드의 궁핍한 가정에 출신인 그녀는

열한 살의 어린나이 때부터 일을 해야 했고,

열네 살부터는 매일 10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는 생활을 13년이나 이어가야 했다.

그녀에게는 교회는 더러운 빈민가의 비참한 삶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이미 진실 된 회심을 경험했고,

20대 초반부터 퀸스트리트 선교회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선교의 열망을 키워가던 Mary

여성 선교사에게도 문이 열려 있는 칼라바르 선교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드디어 1875년 그 유명한 탐험가 Livingstone의 죽음을 계기로 선교사로 지원하고야 만다.

이내 Slessor는 나이지리아 칼바르트에 정착하여 언어를 배우며

선교사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지만,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내륙 오지로 들어가서 개척사역을 하는 것이었다.

여러 곡절 끝에 3년이 지나서야 내륙에서 사역할 기회를 얻었다.

주술과 마술이 지배하는 어둠의 땅에서 그녀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동안

동시에 토인들의 불합리한 풍습들을 뜯어 고치려고 애를 썼고,

불평등한 취급을 받던 여성들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열정가였던 그녀는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듣고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오지에 들어가도 염려할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의연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었던 적대적인 토인지역에서 25년간이나 헌신한다.

그토록 용맹하고 열의에 차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공은 숨기려고만 하였던 그녀는

후배 선교사들의 사역을 위한 기반 작업에 충실히 임할 뿐,

어느 정도 개척 사업이 안정되면

다른 선교사에게 해당지역과 업무를 넘기는 일을 반복하였다.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믿는 믿음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던

굳센 여인 Slessor는 무교육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아프리카 선교 사역의 가능성을 극적으로 확장시켰다.

그녀의 처절했던 노력은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주축 세력이 되었다.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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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Knox

기도의 사람 2016. 7. 21. 14:31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 평가받은 Knox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선구적 지도자였다.

그는 한때 사제 서품을 받고 로마교황청 공증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당시 개혁 신앙을 부르짖던 George Wishart의 영향을 받으면서

완벽하게 개신교도로 거듭났고

타고난 차분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의 대변자요,

지도자로서 투쟁의 기치를 들어 올리게 되었다.

가톨릭 정권의 핍박을 피해 유럽대륙으로 건너가

John Calvin 그리고 Theodore Beza 등과 교제하는 동안

신앙을 위협하는 군주에 맞서 대항할 권리와 의무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559년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Knox는 가톨릭 정권에 대항해 종교개혁을 추친 했는데

잉글랜드로부터 군사, 경제적 지원을 받아 무력 충돌까지 감행하였다.

1560년 드디어 종교 개혁파가 스코틀랜드를 휘어잡았고,

이때 John Knox는 칼뱅주의에 입각한『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을 제정하고,

『녹스의 전례서』를 만드는 등,

개혁교회의 교리와 전례에 관한 연구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가톨릭인 Mary Stuart가 다시 집권하면서

개혁파는 어려운 시절을 맞기도 했으나 Knox는 의연히 대처하였고,

1567년 Mary가 몰락한 이후 개혁교회는 다시 큰 힘을 얻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Knox 시대의 스코틀랜드는

도저히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Knox 자신부터가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대적 소명에 앞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개혁과 부흥의 횃불을 높이 든 John Knox를 통해 하나님은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다.

Knox는 누구보다 기도의 심오하고도 엄청난 위력을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 아니하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천명하기도 하였다.

 

진실한 기도는 단 하나도 하늘에서 무위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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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Hyde

기도의 사람 2016. 4. 28. 14:31

기도로 인도 북부지역에서 기독교 부흥의 기적을 일으켰던 John Hyde는

미국 북장로교 출신 선교사다.

1892년 졸업과 동시에 인도에 파송된 그는

더디기만 한 기도의 길을 몇 년이나 인내하며 걸었고,

1094년 뜻이 맞는 이들과 기도 연합회를 설립한 이래

체계적인 기도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그가 세운 기도실은 한 번도 비워진 적이 없었다.

Hyde와 그의 동역자들이 밤낮을 가라지 않고

기도하는 일이 꾸준히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간절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고,

인도인들 가운데 성령이 임하고,

죄를 회개하고 거듭남으로

참 자유의 기쁨을 누리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기도하는 Hyde는 이후로도 뼈와 몸이 녹는 기도를 올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한 집회에서는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라는 단 몇 마디의 문구로 청중들 가운데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하도록 인도하기로 했다.

부흥의 염원하는 그의 뜨거운 중보기도가 일으킨 불길은

계속해서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때로는 성령의 역사가 너무 강해 기도회를 해산시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1905년 펀자브 주 시알코트에서 일어난 부흥의 해일은

1910년까지 이어지며 기적과 결실들을 이끌어 냈다.

Hyde는 보통 기도할 때 얼굴을 땅에 대고 했다.

그의 기도 방식은 소박하게 간구의 말을 읊조리고는

가만히 기다리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간구가 자기 존재에 자체에 속속들이 스며들 때까지

하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분명히 응답하실 거라고 확신할 때까지

그는 간구하고 기다리기를 거듭하였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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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ight L. Moody

기도의 사람 2016. 2. 24. 15:29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 전도자인 Moody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9남매의 가난한 가정에서 어렵게 자라났다.

생계를 잇는데 급급하여 정기교육은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고,

구둣방 점원 노릇으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부터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강력한 권능을 부여받고,

엄청난 스케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

비록 목사 안수조차 받지 못했지만,

이 평신도는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목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애정으로 청중을 대하고,

또 청중으로 하여금 그 영향력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능력을 타고난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그가 믿었던 그리고 행동했던 모든 것들의 주제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삶에서 위대한 권능이 드러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데 있다.

그는 그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여호와께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는 인생길에 놓인 온갖 어려움들을 기도로써 이긴 사람이었다.

그가 행한 모든 일에는 반드시 기도의 뒷받침이 있었다.

 

기도는 져야 할 짐이나 감당해야 할 지겨운 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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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Muller

기도의 사람 2015. 12. 2. 15:21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Muller는 10세가 되기도 전에 절도를 저지르고,

청년시절에는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하는 등 어두운 삶을 살았다.

그의 비뚤어진 인생은 1825년 한 기도 모임에서 놀라운 전환을 맞게 된다.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어느 그리스도인의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고,

문자 그대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1835년 영국 브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운 그는

이후로 평생을 고아들을 기도로 양육하는 일에 쏟아 부었다.

시편 68장5절의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긴 그가

길거리에 떠도는 아동들을 위한 헌신한 기간은 60년이 넘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세월 동안 그가 고아들을 먹여 살리는데 정부의 힘을 빌리거나

특정 부자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순수하고 온전하게 하나님 아버지 한분만을 신뢰하고 기도하여

그 응답을 통해서만 사역을 계속하였을 뿐이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그러한 그의 기도가 항상 응답받았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위기가 있었으나

기도하는 Muller에게는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진정한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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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선교지도자이자 독일 경건주의 운동을 확산시킨 개혁자,

Zinzendorf는 교회 연합운동을 시도하였고,

모라비안 형제회를 세웠으며 수많은 찬송을 작사하였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빛나는 업적은

선교의 위대한 세기를 위한 주춧돌을 놓았다는 점일 것이다.

독일 드레스덴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경건주의자인 할머니와 숙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영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고,

그러한 상황은 할레대학에 입학한 후 루터교 경건주의 A. H. Francke로부터

영적감화를 받으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수학하는 동안 그는 친구들과 함께 겨자씨 모임을 조직하고,

신앙문제로 고민하는 형제들을 도우며 해외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다.

1719년 유럽 여행 도중 한 미술품 전시회에서 본 예수 수난화에 큰 감동을 받고,

자신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필생의 사역에 관하여 심사숙고하게 된다.

Domenico Fetti가 그린 그 그림에는

“내가 너를 위하여 이 일을 당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각명(刻銘)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구세주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겠다고 결심하였다.

1722년 Zinzendorf는 그의 영지로 피난 온 기독교 피난자들을 보호하면서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한 자신의 맹세를 지켜 나가기 시작하였다.

Herrnhut(주님의 보호처)라 불렸던 그의 영지에는

어느덧 종교적 피난자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1727년 이 공동체의 놀라운 영적부흥이 일어나게 된다.

이 일이 계기로 Zinzendorf와 공동체 사람들은 선교와 헌신에의 열망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모라비안 선교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하루 24시간 꼬박 드리는 기도가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이어졌으며,

이러한 중보기도는 이후로 대를 이어 지속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선교를 위해 세계 곳곳으로 파송되는 결과를 낳았다.

1760년 Zinzendorf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모라비안 교회는 28년간의 활동을 통해

236명의 선교사를 배출해 내었다.

한 명의 기도의 사람이 일으킨 기도 운동은 자발적 선교 운동으로 이어졌고,

비록 강 같은 순교의 피가 흐르기는 했어도

많은 일꾼들이 세계 각처에서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기도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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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field는 18세기 영국 대각성 운동의 주역이었고

칼뱅주의 부흥을 이끌었던 주인공이며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전도자/설교자로 불리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할 당시 홀리 클럽 활동을 통해 Wesley 형제와 친목을 다졌고

보다 진지하게 거룩한 신앙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1735년 진정한 회심을 경험한 그는 졸업 후 고향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는데

1736년 그가 외쳤던 첫 설교는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놀라운 영적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후로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복음에 대한 변하지 않는 열정을 안고 하루에 서너 번씩 설교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웨일스와 스코틀랜드를 포함하여

영국 전역을 누비고 다니며 설교를 하였고

7차례나 미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뜨거운 영성에 기초한 그의 설교는 엄청난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왔고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얼마나 잘 들추어냈던지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영혼의 고뇌를 느끼지 않는 이는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거듭나야 한다”는 그의 피맺힌 외침은 수많은 심령들을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돌이켰고

결국 미국 대각성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되기도 했다.

Whitefield는 자신의 삶에서도 엄격한 태도를 고수했는데

하루를 식사와 수면 8시간

기도, 방문, 교리공부를 위한 8시간

연구와 묵상을 위한 8시간으로 세 등분해서 사용할 정도로 철저하였다.

그가 매일 밤 점검했던 목록을 보면 얼마나 빈틈없이 자기를 관리했는지를 알 수 있다.

 

* 나는 개인기도에 뜨겁게 기도했는가?

* 모든 대화나 행동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가?

* 하루 일을 계획하는 가운데 진행했는가?

* 모든 면에서 검소하고 침착했는가?

* 무슨 일을 행할 때 열심히 혹은 힘 있게 했는가?

*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면에서 온화하고 상냥하고 친절했는가?

* 거만하거나 허영을 일삼거나 난잡하거나 시기하지 않았는가?

* 모든 죄를 고백했는가?

 

하나님의 아들만이 그분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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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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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Luther

기도의 사람 2015. 4. 29. 14:2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롬 1:17), 말씀에 의지해,

1517년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가톨릭의 모든 종교적 관행을 뒤집어엎는

『95개조 반박문』을 공개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불꽃을 쏘아올린 Luther

초인적으로 보일 만큼 카리스마를 지닌 개혁가인 동시에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다.

또한 개인의 경건생활에 있어서는

그의 존재 그대로가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모범이 될 만큼 신실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신이 기도하는 골방까지 들어오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설교와 대화에 비해 기도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전례를 위해 작성한 기도,

교회 관리용의 기도,

그리고 그가 억류되어 있을 때,

그의 방 친구가 엿들었다는 기도 등이 엮어져 있을 뿐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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