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2권3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에서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신성과 인성이 구원자 되심의 필수적인 조건임에 대해 배우며,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시고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음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나아가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 되심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것인가에 대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논증하고 있는 브리안 메이든의 『오직 한 길』은 2권3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소책자라 적은 분량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다른 종교들과 끊임없이 비교해 가며, 왜 예수님만이 오직 한 길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이 책은 기독교가 오직 한 길을 주장하는 것은 편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랑의 표현임을 보여주고 있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음을 종종 얘기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노력을 기울이면 모두들 정상에 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어느 종교를 택할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두 정상에서 만나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같은 신에게 이를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종교는 결국 같은 곳에 이른다는 보편구원설을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고 종종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을 전혀 가르치시지 않았다.  그는 모든 종교가 진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종교적인 일에 성실하면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신을 숭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우리는 참 하나님을 섬겨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전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여러 ‘길’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시기는커녕, ‘내가 곧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주장하셨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역시 이러한 그리스도의 궁극성과 유일성을 믿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의 유일성에 대한 이러한 신약의 믿음을 어떻게 설명하고 변호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기독교가 하나님께 이르는 많은 길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오해는 기독교가 단지 하나님과 도덕에 대해 가르칠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이러한 오해로 본다면 만약 다른 종교에서도 기독교와 유사한 이상들을 갖고 가르치고 있다면 기독교는 분명히 유일무이한 종교가 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는 단순한 윤리나 도적, 아름다운 이상들이 아니다.  단순히 종교적이거나 윤리적 이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주창하는 있는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만들어 주는 것은 역사적 사실들이지 우리의 이상이나 윤리, 경험들이 아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같이 종교 지도자들의 통찰력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서 행하신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며 또 이런 사건들로 인해 우리의 구원이 성취되었다.  만일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메시지는 소멸될 것이다.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들과 구별되는 신조 중 하나는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교리로 그가 참 하나님이며 참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가르침 때문에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절대적으로 독특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사건은 모호하고 신화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단연 독특한 것이 된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 자신이 자신의 창조주를 거역했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종교로 만드는 것이 예수님의 성육신이지만 성육신이 그 자체로 신약의 중심 메시지는 아니다.  하나님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즉 인간을 죄로부터 구하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전 인류는 죄에 빠졌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그의 법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실제로 인간으로 오셔서 그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셨다.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하지만 그렇게 살 능력이 없는 완벽한 삶을 그분께서 사셨고, 우리가 당해야 마땅할 죽음을 그분께서 당하셨고, 받아야 마땅할 벌을 그분께서 받으셨다.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모두 우리가 지켜낼 수 없는 행동과 이상들의 집합체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적으로 교훈이나 가르침과 모범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이다.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며 예수님께서 홀로 우리의 구속을 위해 돌아가셨다.  이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  더 이상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나사렛 예수가 주장한 신성이 사실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갈보리에 바쳐진 예수의 희생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입증되었다.  예수님의 부활과 들리심은 유일한 것으로 예수님만이 사망을 정복했다.  다른 종교지도자들 중 아무도 육체적으로 죽음에서 살아난 자가 없으며 죽었다가 살아나는 신에 대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도 개념뿐이지 역사적 사실로서 제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과 빈 무덤은 신화나 아름다운 환상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들이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공로와 행위의 종교이며 우리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로 구원을 우리가 힘써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행과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선한 일에 열심을 품어야’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아니라 전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럼 왜 다른 많은 종교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가장 적절한 설명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그래서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혼자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는 불완전하며, 부분적으로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진리 자체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될지 아닐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채로 남겨둘 수밖에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느 누구도 기독교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복음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들도 부르셔서 회개와 새 생활에 이르게 하실 수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구원의 확신의 근거를 갖기 위해서는 복음을 듣는 것이 여전히 꼭 필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이 편협한 것은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선함과 지혜로 하나님을 찾았고, 그래서 그들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자만심과 편협함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관용을 혼동하고 있다.  잘못되어 가고 있는 자에게 겸손하고 온유하게 얘기해 주는 것은 당연하며 가능한 한 솔직하고도 설득력 있게 잘못을 일깨워주는 것이 가장 자비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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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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