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신앙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게 하고

예배의 외부적인 의무들에 열심히 헌신하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감정에 참된 신앙의 본질이 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표지가 아니다.

 

최근에 사람들이 성경 읽기, 기도, 찬양, 설교듣기 등에 시간을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신앙 감정을 부정하는 주장으로 간주되어 온 것은 매우 부당하다.  참된 은혜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신앙적인 일들에서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은 성경에서도 분명히 말씀한다.  참된 은혜는 여선지자 안나에게도(눅 2:37),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영향을 미쳤다(행 2:46-47).  또한 은혜는 다니엘로 하여금 하루에 세 번식 엄숙하게 행하는 기도의 의무를 기쁨으로 감당하게 했다(단 6:10).  그것은 다윗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시 55:17).  은혜는 성도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다(시 135:3).  그리고 시편 147편1절은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참된 은혜의 본질이다(시 84:1-7, 10).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을 외적으로 많이 행하고 그 일들에 열심히 헌신하며 그 일들에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은혜가 임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성향을 은혜를 입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되지 때문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는데 그들이 예배는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었다(사 1:2-15).  그것은 바리새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길게 기도하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다(눅 18:12).  거짓된 신앙은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게 하고 진지하게 만든다(사 58:4).  영적이지 않으며 구원받지 못할 신앙도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적인 의무와 규례를 기뻐하게 만든다(사 58:2).  그것은 에스겔의 청중들(겔 33:31-32), 헤롯 왕(막 6:20), 세례 요한의 다른 청중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요 5:35).  돌밭 같은 마음을 가진 청중들도 기쁨으로 하나님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거짓된 신앙의 사람들도 신앙적인 일들을

외적으로 많은 열심을 내며 행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안다.

진정 그들은 그 일에 온전히 몰두하며 자신들의 거의 모든 시간을 그 일에 바친다.

과거에 로마 교회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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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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