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Nehemiah)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심이다.  그는 유대의 명문 출신으로 하가랴의 아들이다(1:1).  그의 형제 중 한 사람은 수사(Susa)에 간 공식 사절단의 한 사람이었는데(1:2), 훗날 그는 예루살렘의 통치자가 되었다(7:2).  느헤미야와 그 부친의 이름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jah)라는 말이 들어 있음을 보아 그의 가족들이 유대의 정통 신앙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팔레스틴 침공시 포로로 잡혔다가 페르시아 치세하에서 아닥사스다 1(Artaxerxes) I, B. C. 464-423)의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하였다(1:11).  이처럼 페르시아의 관원으로 있던 그는 앞에서 밝힌 사절단의 일원으로 수사에 온 그의 형제로부터 팔레스틴에 있는 동족들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1:3).  참담한 소식을 전해드린 그는 너무나도 슬퍼서 울며 금식하는 가운데 동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무엇인가를 하기 위하여 팔레스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일단 그러한 결심을 한 그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왕께 자기의 간곡한 소원을 아뢰었으며 허락을 받았다(2:5-10).  이러한 느헤미야의 태도에서 우리는 가식이 없는 동족애와 애국심을 읽을 수 있다. 

한편 B. C. 444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먼저 페허가 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주력하였다(3).  성벽의 재건은 적의 침입을 막고 그곳에 사람들을 다시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이러한 성벽 재건 작업은 에스라가 주도한 이스라엘 부흥 운동(3)의 한 부분이었다.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 중에서도 성벽이 완공되자(6:15),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죄악상을 통렬히 비판하고 그들간에 만연해 있는 악습을 척결하기 시작하였다(13).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유대 백성과 하나님 간의 관계를 회복시켰는데, 이 길만이 진정 조국(祖國)을 살릴 수 있는 길이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비록 조국의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독립 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여 조국과 동족을 사랑하며 애쓴 애국자 느헤미야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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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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