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술에 관한 기록이 총 387회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직접적인 관계 귀절이 212, 간접적인 관계 귀절이 175번 나온다.  성경의 배경이 된 팔레스틴 지역에 있어서 술은 일반적으로 대추야자나 석류로도 만들어졌지만 거의가 포도즙을 발효시켜 만든 포도주였다.  이와 같은 술은 히브리인들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술은 성경에서 칭송을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성경을 통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긍정적인 면-

팔레스틴에 있어서 물은 비교적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포도주가 오늘날보다 더 널리 사용되었다.

1. 일상생활에서의 용도 :  포도주는 매 식사시에 음료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14:18, 27:25), 연회시엗 사용되었다(2:1-9).  이런 일면은 연회잔치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미수테>음주’(飮酒)를 의미하는데서도 잘 나타나 있다.  또한 포도주는 아비가일과 시바가 다윗에게 포도주가 담긴 가죽 부대들을 선물한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삼상 25:18, 삼하 16:1), 상급자에게 바치는 선물이나 예물로도(12:17, 14:23, 18:12) 이용되었다.  한편 무역 상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포도주는 솔로몬이 성전 짓는데 필요한 목재들을 공급하는 대가로 두로 왕 히람의 종들에게 다른 물품들과 더불어 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포도주는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다.  즉 현기증을 일으키는 사람을 회복시키고(삼하 16:2), ‘비위와 자주 나는 병에 대한 처방으로도(딤전 5:23), 그리고 상처를 소독하는 약으로도(10:34) 사용되었다.

2. 제물로서의 용도 :  포도주가 생산되는 곳에서는 그 어디를 막론하고 이 포도주가 제사에 사용되었다.  예배자들은 성전을 향한 순례길에 오을 때면 언제나 포도주가 담긴 가죽 부대를 가지고 갔으며(삼상 1:24, 10:3), 어린 양과 고운 가루와 기름, 혹은 이러한 것들의 혼합물과 함께 하나님께 받쳤다(29:40, 23:13, 15:7-10, 28:14).

 

-부정적인 면-

알콜 중독이 고대의 주요한 사회악 중의 하나였다는 증거가 성경에는 많이 있다.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몹시 취하여 자신의 장막에서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듣 결과로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 비극적인 사태를 일으켰다(9:20-27).  이외에도 롯(19:33-35), 나발(삼상 25:36), 암몬(삼하 1:18), 엘라 (왕상 16:9), 수리아 왕 벤하닷과 동맹한 32인의 왕들(왕상 20:16) 등을 술로 인해 수치를 당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정도를 벗어난 술취함은 언제나 개인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 방종과 수치와 패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이사야는 술이 마음을 혼미케 하며(28:7), 영웅 심리에 빠지게 한다고 선언하면서(5:22), 당시 독주로 인해서 비틀거리고 옆걸음 치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맹렬히 비난하였다(5:11, 56:11-12).  선지자 미가도 백성들이 포도주와 술취함에 대하여 좋게 말하는 거짓 선지자를 원한다는 사실에 불평을 토로하였다(2:11).  뿐만 아니라 잠언 저자도 술취함의 폐단으로서 싸우기를 좋아하고 떠드는 버룻이 있으며(20:1, 23:19-32), 자기들의 직무를 소홀히 하며(31:4-5), 가난하게 되고(21:17, 23:20-21), 결국은 재앙과 슬픔으로 그 인생을 마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23:29-32).

이와 같은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술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 술을 이용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그 술 또한 인간에게 유익한가 해로운가가 결정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내에서는 술을 먹는 것이 죄인가 아닌가라는 문제가 심심치 않게 논란의 대상이 되곤한다.   물론 이런 요소는 한국에 복음을 가지고 온 초기 선교사들이 당시 외세의 침략에 기울어 가는 구한말(舊韓末) 나라의 형편을 보면서 좌절과 공호감에 빠져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는 백성들을 그러한 도탄에서 건져내는 급선무가 술을 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회내에서 금주 운동을 강력히 전개한 사실로부터 기인된다. 

여기서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술을 먹는 것이 정죄(定罪)의 대상이어서가 아니라 건덕상(建德上)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술을 먹고 난 이후에 발생하게 될 여러가지 폐단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실수하지 않을 정도로만 혹은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로서, 이 문제의 해답은 각자의 양심과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여야 한다(12:3).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술이 인체의 면역성을 파괴하고 정신을 혼미케 하는 등 정신과 육체 건강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며 성도의 덕을 떨어뜨리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술취함을 방탕과 생활의 염려 등과 같은 차원에서 말씀하시면서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셨다(21:34).  또한 사도 바울도 술취함을 음란, 호색 등과 같이 어두움의 일로 간주하였고(13:13), 사도 베드로 역시 술취함을 구습을 버리지 못한 옛 사람의 자취라고 설교하였다(벧전 4:3).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교회의 금주의 전통은 성경의 가르침에 적극적으로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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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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