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없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말씀은 ‘너희가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는 말씀 후에 하셨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인가?

예수님은 가지 모두가 이유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할 없음”과 “하고자 하지 않음” 속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궁극적인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진술하든

우리는 어느 쪽도 무시해서는 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책임은

인간 존엄성과의 양도할 없는 측면이다.

책임은 심판 날에 마침내 드러날 것이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형을 선고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가 위해하든지 미미하든지에 관계없이

사회적 계급을 무론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억압적으로 짓눌려서 끓어 엎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에 대한 최후의 존경의 표시로

각자가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진술할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다 책임은 인간에 있다.

가장 우매한 죄인에게도 일말의 결정 능력은 여전히 있으며,

실로 하나님을 향한 방자한 반항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근거로

책임을 벗어날 없다.

운명이니 형이상학적 구조나

그의 연약한 본성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의 중심인 인간 자신이

자기의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얼버무림으로써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도 죄다.

나치 전범들이 가장 자주 내세우는 변명은

단지 명령만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정은 언제나 동일하게 책임을 그들에게 물었다.

실로 십자가의 본질적인 배경은

인간의 , 책임, 죄책뿐만 아니라

이런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반응

그분의 거룩과 진노도 포함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사실은 성경적 종교의 기초다.

따라서 죄가 하나님의 거룩과 양립할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그것도 희생의 피를 들고 들어가는 외에는

어떤 사람도 휘장 속으로 들어갈 없었으며

만약 들어간다면 그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서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려는 때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엄밀한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너희가 사이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언약궤) 가까이 하지는 말라’( 3:4).

웃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주제넘은 행동의 위험에 관한

분명한 교훈을 배경으로 하여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피난처와 정결케 됨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말보다도 가장 두려운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을 것이다.

내게서 떠나가라

 

 

스토트 『그리스도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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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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