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Calvin의 추종자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오늘날 어떠한 초자연적 기적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내세우기 위하여 Francis I of France에게 바쳤던 Calvin의 진술을 사용했다.  문제는 그의 진술 앞부분만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Calvin의 진술 의도 가운데 한쪽만 바라본 것이고, 원문(原文) 그대로 전체를 옮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意圖)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진술을 반드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다시 Calvin의 말을 들어보자.

“만일 이적의 정당한 목적과 그 효용을 성경이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들의 이 헛된 생각들은 한층 더 과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사도의 설교 다음에 따르는 여러 가지 이적들을 그 설교를 확증하기 위해서 행해진 것이라고 말하였으며(막 16:20), 누가도 역시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시니’(행 14:3)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와 똑같은 말씀을 다음과 같은 사도의 주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히 2:3‐4, 롬 15:18‐19).  이 말씀에서 우리는 표적과 기사가 복음의 인장임을 알게 되었는데, 복음의 신앙을 파멸하도록 우리가 이것들을 악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서 기자의 말대로, 이적보다 우위인 이 교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검토되며 고찰되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인 줄로 압니다. 그것이 확증되면 그다음으로는 마땅히 이적에서 확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건전한 교리의 표는 인간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려는 것입니다(요 7:18, 8:50). 그리스도께서 이 교리의 시험을 확증하셨기 때문에 이적이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 어떤 다른 목적에 적용된다면 그것은 부당한 것입니다(신 13:2)” 

이 진술에서 Calvin은 당시 Catholic 교회가 일부 거짓된 교리들을 악용하기 위해 초자연적 이적을 이용한다는 점을 바르고 정확하게 지목하고 있다.  또한 성경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여전히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해서만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며(막 16:20), 따라서 온전히 내용을 분석하고 깊이 있게 연구되어 확실하게 증명된다면 ‘다음으로는 마땅히 이적에서 확증을 얻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환언하면 Catholic 사제들에 의해 잘못 악용되고 있던 은사를 지목해 비판하였던 것이지, 진리의 말씀에 입각한 성경적 치유나 초자연적인 이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마 8:16)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어떠한가?  그들 역시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했다.  사도. 바울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라고 주장한다(살전 1:5).   

이렇게 예수님과 바울, 그리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역을 입증하고 확증하기 위해 성령의 초자연적 현상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것이 그들에게도 필요하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그러한가?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임재도 기적적인 현상의 필요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적인 현상의 필요성을 배제한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사의 똑같은 기간 어떤 영적인 은사가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았거나 없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그 은사의 사용에 반대하셨거나 현시대의 남은 자들에 대한 그 은사의 유효성을 부정하셨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은사가 희박했다면 그것은 은사를 사도들의 생존 기간에만 한정하는 신학적 원리 못지않게 무지와 영적 침체 때문이다.  요지가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현상은 구속사에서 몇 군데에 집중되어 있고, 따라서 산벌적이라는 개념에 호소하는 은사중지론의 논리는 성경적으로, 논리적으로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 것이 있다.  왜 Old Princeton School 신학자들은 Calvin이 모든 은사와 기적을 오직 사도들과 관련이 있으며 교회 창설기 시대에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해석한 것일까?  여기에는 Charles Hodge나 B. B. Warfield 등의 신학자들이 활동하던 19세기 후반 당시 학계의 지배적 조류였던 근대주의(Modernism)와 모든 문제가 과학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Science omnipotence(과학만능주의) 사고가 일부 관여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은 개혁주의 신학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는 Calvin이 원래 진술하려 했던 의도를 약간 비틀어서 해석한 것이다.  즉, 자신들의 입 맛에 맞게 학문적이며 문화적 동향에 맞춰, 조금 원색적으로 말하면 ‘밴댕이소갈딱지’ 같은 신학으로 편협하게 해석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완벽한 신학적 범죄다.     

사족이지만, 이런 신학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시대가 만든 괴물’ 극우의 목사 추종자들처럼 이미 ‘세뇌’(brainwashing)가 된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상하리만큼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해석되어 들린다는 것이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고, 성경적으로 말하면 마귀에게 충동질을 당해 평생을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믿는 것이다.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범죄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안에서, 신학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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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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