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인간사 속에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는 일관된 pattern이 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주의 종들의 생애 가운데 일어난 수많은 기적들이다. 하나님의 대적자들과 싸우는 미가엘 천사를 비롯해서(단 10:21), 예수님께 수종을 들고(마 4:11), 기도로 지치신 것을 도와주며(눅 22:43), 성도를 보호하는(행 12:7-10), 돕는 천사들의 활동(히 1:14)과 방문(창 18:1-15, 눅 1:26), 그리고 치유(행 3:1-10)와 꿈(창 37:9, 마 1:18-22)과 환상(행 11:1-18)등의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주께서 애굽 땅에서 징조와 기사로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외인(온 세계/모든 사람) 중에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렘 32:20). 우리는 하나님을 언급하는 예레미야의 주장을 주목해야 한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논증(論證)의 위험성을 일깨워 준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오던 출애굽 시대부터 포로기까지 표적과 기사의 예가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런 일들이 아직도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성이 단지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거나, 어느 정도의 빈도로는 행하지 않으셨다고 궤변을 늘어놓을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요 20:30),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요 21:25)하다고 분명히 우리에게 말한다. 나의 요지는 단순 명료하다. 성경적으로 옹호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도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가설에 가까운 신학적인 추론으로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쓸데없이 나팔을 불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D. A. Carson이 『Showing the Spirit』에서 성경적 은사들의 존재에 대한 주장을 고증하기 위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은사주의적인 은사들은 교회사의 여러 세기에 걸쳐 산발적으로 지속되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존재하므로 순전히 이론적인 근거로 은사에 대한 모든 보고는 허위이거나 마귀적인 활동의 열매이거나 심리적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익하다”
사실 대학원에서 Calvin Theology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개혁주의 목회자들이 사랑하고 강조하는 5대 교리(TULIP)와 『기독교강요』에 대해 그리 많은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Calvin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개혁주의 목회자들 못지않게 Calvin의 『기독교강요』와 그의 저서들을 사랑하지 않지만 좋아한다. 박해를 받는 France의 Protestant들의 신앙을 옹호하기 위해 쓴 『기독교강요』는 로마교회가 두려워했던 책이다. 당시 신앙의 형제들을 위한 교리 문답서의 필요성을 느꼈던 그는 박해의 중단을 위해 왕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서한의 첫머리에 그의 마음이 담겨 있다. “오로지 본인의 목적은 신앙적인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참된 경건에 이르도록 돕기 위해서 그들에게 확실한 기본 원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Calvin이 26살의 젊은 나이에 이 책을 썼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물건을 선반에 올려놓듯이 마음에 두고 오랫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생각해 본다. 『기독교강요』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Calvin이 종교개혁이 하나님 앞에서 성서적으로 합당하고 적합한 것임을 변증 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당시 Francis I of France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그는 이 서문(序文)에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이적(異蹟)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들(가톨릭 성직자들)은 우리에게 이적을 요구하고 있으나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슨 새로운 복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이미 행하신 이적을 통하여 진리로 확증하신 바로 그 복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이적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확증할 수 있다는 이상한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장하는 이적이란, 원래는 잘 안정되었던 마음을 오히려 불안하게 만드는 것으로 그러한 것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경박하며 허망하고 거짓된 것들입니다. 비록 그 이적들이 신기한 것이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는 대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들입니다.”
이 진술만을 본다면 Calvin은 초자연적 이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훗날 이 진술은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은사중지론’ 교리로 널리 펴져 나갔고, 19세기 구 프린스턴 학파 신학자들인 Charles Hodge와 B. B. Warfield를 통해 강력하게 주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성경 66권이 주어진 오늘날에는 어떠한 초자연적 기적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그 신학적 근거로 Francis I of France에게 바쳤던 Calvin의 진술을 제시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Calvin의 입장은 축귀(Deliverance)를 비롯한 모든 기적(Miracle)과 기사(Wonder)를 거짓 표적(Sign), 혹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마귀의 역사에 따라 나타나는 속임수 정도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Calvin의 이러한 주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남들보다 성경을 아주 상세하게 푸는 놀라운 지혜를 가진 그의 말이 정확히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Calvin의 주장을 여기까지만 본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