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에서의 행위 역할을 설명하는 방법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그 뉘앙스(nuance)는 매우 다양하다.  Paul Barnett은 최후의 심판을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도 하고(고전 4:5) 책망을 받는 자리로 보면서(마 25:24-30), 어느 경우이든지 간에 신자는 무조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고전 3:10-15).  반면에 George Eldon Ladd는 로마서 2장 5-16절과 같은 본문들은 실제적 상황보다는 이론적/가설적 상황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Samuel L. Hoyt는 최후의 심판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영생이 아니라 상이며(계 22:12), 신자들은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과연 어느 사람의 말이 맞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행위의 관계에 대한 Martin Luther의 신학사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Luther는 행위가 은혜보다 앞서더라도 그것이 구원/영생을 얻기 위한 공로가 된다는 Catholic Church의 행위 개념을 전면 거부했다.  그는 칭의(Justification)는 행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Luther’s Works에서 “칭의는 기독교 교리 가운데 가장 참되고 주요한 조항으로서 결코 취소불가능하며, 최후의 심판 때까지 지속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Roman Catholic Church만이 Luther의 유일한 적수는 아니었다.  Catholic 사상이 행위에 깊이 몰두했다면 반(反) 율법주의자들은 행위를 완전히 무시했다.  따라서 Luther는 비록 행위가 칭의를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믿음이 실제임을 증명해 준다는 차원에서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약 2:14-26).  그는 선한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은 우리 마음속에 거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면서(약 2:26), 믿음과 행위 사이의 긴장 관계를 놓고 씨름하면서도 믿음에 우선권을 주려고 애썼다. 

Luther’s Works』에서 말한 것처럼 행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못한다.  예를 들어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행위가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다(요일 4:16-18).  하지만 행위 자체는 두려움을 완화시켜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구원은 Paul Althaus가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에서 강조한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에 근거하여 값없이 받는 선물이기 때문이다”(딛 3:5).  

만약 누군가가 행위 없이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면, 그는 다시 말한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에게 믿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만약 당신에게 행위가 없다면 절대로 믿음 없이 심판대 앞에 서지 말라”(약 2:22).  그 이유가 무엇일까? 

20세기 후반에 와서 수많은 학자들이 믿음으로 얻는 칭의와 행위에 따른 심판을 서로 조화시키려는 연구에 많은 애를 썼다.  또한 이 연구들은 아무래도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이 두 주제가 바울 서신 안에서 매우 날카롭게 서로 대립했기 때문이다.  

1997년에 출간된 E. P. Sanders의 기념비적인 저서인『Paul and Palestinian Judaism: A Comparison of Patterns of Religion』는 바울 연구에 있어 새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Luther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유대교가 사실은 행위에 의한 의로 규정되는 종교가 아니었음을 밝히는 Sanders의 연구는 차후 The New Perspective(새 관점)으로 불리게 된 견해를 지지하는 수많은 문헌을 마구 쏟아내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새 관점이 그동안 저술된 수많은 책 역시 이 문제의 행위의 역할에 집중함에 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는 지난 세기에도 어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안갯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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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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