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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27 참된 교회란?
  2. 2015.01.10 교회와 하나님 나라
  3. 2014.10.11 눈에 보이는 교회의 약점
  4. 2014.08.02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5. 2014.05.17 교회란?
  6. 2014.02.22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

한국은 기독교 10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인구의 4분의1에 해당되는 큰 교세를 자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서울 시내를 돌아보거나 밤에 남산에 올라가보면 불과 몇 미터 사이를 두고 크고 작은 교회들이 같은 상가 안에 혹은 길 하나를 두고 들어서 있는 것을 볼 때 한국 교회는 다른 나라와는 분명 다른 것을 알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나라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교회들 중에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의문시 되는데 오늘날 건물은 화려하고 웅장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실상은 사데 교회처럼 죽은 교회들이 적지 않은 상태이고(계 3:1),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기보다는 지탄을 받는 일이 허다하며 신자조차 자신의 삶 가운데 불신자와 구분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고 성경적으로 말하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빌 3:18).  성경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고전 13:1-2), 요즘 현대교회는 이 사랑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에 분열과 분쟁이 그치지 않아 교파 간에 교리만 조금 달라도 서로 적대적인 관계 속에 경쟁 상대로 여겨 대화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고 과연 이런 교회들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고 뜨고 서로 싸우다 멸망당할 교회들(갈 5:15)에 대해 Hans Küng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죄 많은 동시에 거룩하고 거룩한 동시에 죄 많은 공동체이다”  그러면서 교부시대 이래로 자주 일컬어지고 있는 비유를 들어 교회는 하나의 ‘순결한 창녀’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교회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공동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세상으로부터의 죄의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일수록 유사품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 땅에 세워진 유일한 제도로서(행 20:28),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사 43:7, 21), 그 구성원을 영생으로 이끄는 교회들 중에는 ‘사단의 회’(계 2:9), 즉 거짓된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사단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고후 11:14),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인데(요 10:10), 만약 이것을 깨닫는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참된 교회에 속하였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이방신전들에 관해 논한 적이 있는데(고전 10:19-22, 12:2), 여기서 ‘이방신전’이란 거짓된 종교 모임을 말하고 계시록에 나오는 ‘사단의 회’ 역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참된 유대인이 아닌 자칭 유대인의 모임을 가리키는데(계 3:9), 바로 이런 것이 거짓된 교회의 모습이며 이들은 사단의 왕국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된 교회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교회를 참된 교회로 인식하게 해주는 독특한 특징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 LutherCalvin은 견해를 같이 하는데 Calvin『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반복적으로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며 또 듣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를 지킬 때에 거기 주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만일 말씀과 성례에서 주께서 인정하신 규칙을 지니고 있다면 그 집단은 거짓이 아니다. 이 원칙에 의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는데 말씀과 성례를 보존하고 있는 한 다른 결점이 많더라도 우리는 그 공동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역으로 말하면 진리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고 성례를 행하지 않는 교회, 인간적인 교훈이나 듣기 좋은 허탄한 이야기(딤후 4:3-4), 즉 망령되고 거짓된 교리가(딤전 6:20), 선포되는 곳에 참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을 통한(엡 2:8), 구원의 복음 소식을 감추거나(롬 1:15-17), 성경 말씀에 있는 하나님 계시의 진실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위격을 부정한다면 그 어떤 모임도 예수님의 피로 세운 교회라고 말할 수 없고(행 20:28),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요일 4:6).

 

이렇게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요 8:31-32, 47, 14:23, 요일 4:1-3,),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지키도록 명령하신 ‘세례’와(마 3:13, 28:19), ‘성찬’을(마 26:26-30),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시행하는데(행 2:38, 고전 11:23-26, 갈 3:26-27), 여기서 세례는 사람들을 교회로 받아들이는 수단이고, 성찬은 교회의 지속적인 회원임을 표시하는 수단이긴 하지만 가룟 유다를 생각해 볼 때(마 26:25-28), 교회가 세례와 성찬을 행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행 1:16-18).  따라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에서 “성례는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은혜 계약의 거룩한 표요 인치심”이라고 했고, Calvin 역시 “성례를 올바로 거행하게 될 때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확증해 주며 또한 견고케 해주는 방식”이라고 강조했지만, 만약 이 성례를 집행함에 있어 성경에 가르치는 바에 따라 죄의 용서와(행 2:38), 주님과의 연합(갈 3:26-27), 그리고 새 생명으로의 부활과(롬 6:3-5),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을(고전 12:13), 확신하지 못하거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마 28:19), 집행되지 않는다면 성례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세례와 성찬을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고 그분과의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구원의 소망을 선포하는 성례의 근본 뜻과 의미를 상실하고 시행한다면 그 교회는 참된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말씀과 성례의 시행이 있을 뿐 아니라 ‘권징’의(마 8:15, 살후 3:6-16, 딤전 1:20, 딛 1:13, 계 2:14-20), 신실한 시행도 뒤따르는데 그 이유는 유한한 인간이 모인 교회 안에는 성도의 성결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고, 만약 교회가 성결함을 훼손하는 죄악된 행위를 고린도 교회처럼 치리하지 않고 묵인한다면(고전 5:1-8), 교회는 더 이상 순결성을 유지할 수 없어 급속히 부패할 것입니다. 사실 Calvin은 권징을 중요시 했지만 『French Confession of Faith』에서는 참된 교회를 식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말씀’과 ‘성례’를 강조했고, 후에『Belgic Confession』이나 이것보다 앞서 작성된 『Scots Confession』에서는 ‘말씀’과 ‘성례’, 그리고 ‘권징’을 교회의 삼대 표지로 정의했으며 이것은 후에 루터주의와 개혁주의를 구분시키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특이한 경우로는 구세군처럼 예배 속에 성례를 시행하지 않는 교회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 안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 거짓 확신을 심어주거나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성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악용하여 엘리 제사장처럼 범죄한 사람들을 묵인하고 내버려 둔다면(삼상 3:13), 그런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교회가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인간의 비위를 맞추거나(미 3:11), 권징이 올바로 시행되지 않는다면(마 18:15-17), 그러한 교회 역시 진정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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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Küng은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말할 때, 지상의 교회는 죄인과 의인을 동시에 안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라고 말하며, George Eldon Ladd 역시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에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이지 결코 그 나라 자체일 수는 없다. 하나님 나라가 제자들에게 속한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고 교회는 사람들의 사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제자들이 전한 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설교와(막 1:15), 천국 복음이지(마 24:14), 교회가 가까이 왔다거나 교회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행 8:12, 19:8, 20:25, 28:23, 31).  사실 로마 가톨릭처럼 자신들의 교회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며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거나 세대주의 신학에서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교회 시대와는 무관한 전적으로 미래에 속한 것으로 본다면 큰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는 아니지만 그 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하고, 교회가 천국 복음을 전파함에 따라 사람들은 교회로 들어올 것이고(막 16:15-16),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사 52:7), 그의 나라의 축복을 체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포함하면서도 교회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 얻은 자들의 무리만을 가리키는(벧전 2:9), 반면 하나님 나라는 주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을 포함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주님의 구원을 입은 자들이 축복을 입으며 거하는 공간(요 18:36), 그리고 그 안에서 행사되는 하나님의 절대 통치권이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교회의 구성원은 동시에 그 나라의 구성원이므로 양자는 일치되는 면이 있으나, 하나님 나라는 그 구성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미치는 영역에 속한 일체의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롬 14:17), 그 범위와 내용에 있어서 교회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영역에 속한 일체를 가리키는(시 103:19),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가 실제 성경 가운데서 다양한 용례로 사용되었는데, 먼저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로(눅 11:20), 세례 요한이 말할 것처럼 회개함으로 그 일원이 될 수 있으며(마 3:1-2), 주의 능력으로 악한 세력인 귀신들의 영역이 점차 축소되고(마 12:28), 비록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급속히 성장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마 13:31-33), 이것은 눈으로 불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눅 17:20-21), 마치 감추어진 보화와 같아서(마 13:44), 영적으로 미련한 자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이루신 그분의 영적 왕권이 미치는 모든 영역이라 할 수 있고(마 12:28),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영적 왕권은 성도의 마음 가운데 이루어지며(눅 17:20-21), 또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마 13:31-33, 44-45).  또 다른 의미로 하나님 나라는 “앞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로(눅 22:30), 성경은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보다 장차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에 대해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마 25:31-46), 이는 사단의 세력들이 활동하는 이 세상보다(엡 6:12), 사단의 세력이 멸절될 그 날에(계 20:10),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왕권이 완전하게 행사될 것이기 때문에(고전 15:25), 성경은 장차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게 될 하나님 나라(계 21:1-8), 즉 영원무궁한 안식의 세계는 죄악이 남아 있는 이 세상과는 완전 구분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마 21:43, 눅 22:18, 행 14:22, 고전 6:9, 갈 5:21, 계 21:1-4).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눅 8:10), 부르심에 소망과(엡 1:18), 죄를 정복함(롬 6:14, 14:17), 그리고 마귀의 대적을 물리침과(눅 10:17), 질병에서의 고침 받는 것을 통해(눅 10:9),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느 정도 맛보게 될 것이며, 또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능력인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마 12:28, 롬 8:4-1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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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가 비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들 가라지 교인들은 성도가 아니면서도 진짜 성도처럼 행세를 하고 있고 또한 정통 기독교가 아닌 이단들 역시 교회 간판을 걸어 놓고 참된 교회 행세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 가짜 교회나 가짜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돈 문제나 이성 문제가 생기면 모든 그리스도인 전체가 다 그런 양 비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기독교 교회 내에 소수의 목회자가 추잡할 정도로 돈과 여자 문제로 매스컴에서 시끄럽게 다루는 것을 볼 때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방과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사실 참된 성도 때문이 아니라 가라지 교인과 삯군 목사가(요 10:12), 이단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통 기독교 교회 안에서 마치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키듯 교회의 물을 흐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사단의 자식들로서(요 8:44), 마치 주님의 제자인 것처럼 활동하면서 온갖 악행을 저질러 주님이 피 값을 주고 산 교회 전체를(행 20:28), 욕되게 하고 있는데, 사실 값진 보석일수록 가짜가 많듯이 기독교의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얼마든지 거짓된 교리를 따르는 가라지 교인과 가짜 교회는 있기 마련입니다(딤후 4:3-4).

 

사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아도 거듭나지 못한 교인들 때문에 교회가 세속화됨으로 유형교회 안에서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을 제거하고 순수한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노력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3세기에 나타났던 로마교회의 장로였던 Novatian으로 당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수치스럽게도 신앙을 버리고 이방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고 그 후 박해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러한 배교자들은 어떠한 참회와 헌신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교회에서 배척되어야 할 것을 강력하게 말했고 만일 이런 배교자들이 교회에 다시 들어오게 된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참된 교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와 정반대되는 입장을 취한 사람들로서 유형교회는 혼합된 교회이기(마 13:47-48), 때문에 교회 정화에 힘쓸 필요가 없고 되는대로 내버려 두자는 사람들인데 문제는 오늘날 노바티아누스주의자들보다 이런 방임적 태도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며 이들은 마태복음 13장24-30, 36-43절의 말씀인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들어 교회 안에서 거짓교인을 구분하려다가 참 성도가 시험에 들거나 상할 수 있으니까 예수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까지 내버려 두고(마 4:12), 우리는 이것을 구분하려고 하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유형교회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물론 극단적인 신앙을 가진 노바티아누스주의자들처럼 인간의 힘으로 구원 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를 구별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정화’와 ‘치리’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살후 3:14).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15-17절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이 누가 구원받고 못 받고는 판단할 수 없겠지만(욘 2:9), 교회의 정화운동을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딤전 1:20).  사실 유형교회에 중생하지 못한 거짓 교인이 있다는 현실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우리는 참된 신자의 구원을 의심하기 시작할 뿐 아니라 교회 안에 커다란 혼동과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Calvin은 이 문제를 놓고『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세례에 의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되며 성만찬에 참가함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직을 보존하지만 이런 교회 안에 야심과 탐욕과 시기가 가득한 사람들, 또 중상하는 사람들이 심히 많고 아주 불결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얼마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일시 허용되는 것은 자격이 있는 재판 기관에 의해 유죄 판결 받기가 불가능하거나 강력한 규율이 항상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교회 안에 권징이 시행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공공연한 죄로 인하여 권징 받지 않는 이상 사람들을 공동체의 교제로부터 제외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본질상 교회는 각 지체들이 자신들을 한 몸으로 의식케 하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주는(엡 4:15-16),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고전 12:4-5), 은혜를 누린다는 점에서 Augustine와 Luther에 의해 “보이지 않는 교회”로 종종 불리었고 이 무형교회는 Louis Berkhor이 말한 것처럼 유형교회 안에서 상대적으로 그리고 불안전한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완전히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 대하여 연합된 교회는 비록 그 구성원들이 아직 죄를 지니고 있기에 ‘말씀’이 참되게 선포되고(요 8:31-32, 47, 14:23, 요일 4:1-3, 요이 9절),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며(마 28:19, 막 16:15-16, 행2:42, 고전 11:23-30),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권징’이 신실하게 시행될 때(마 18:15-18, 롬 16:17, 고전 5:2, 9-13, 고후 2:5-10, 살후 3:6, 14-15, 딛 3: 10-11), 교회는 거룩하게 되고 이런 공동체는 주님이 세우신 참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시는 ‘교회’에는 가라지가 섞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오직 예수의 피 값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만이 있는 반면에(계 5:9-14, 7:9-17),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지역 교회 안에는 가라지 목사와 쭉정이 교인들이 얼마든지 섞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계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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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당 건축 문제를 두고 수많은 분쟁과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세상 사람들 보기에도 그렇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흔히 ‘교회’라고 할 때는 단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 즉 건물로서의 예배당을 이야기 할 때가 많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의 교회란 단순한 건물 그 자체가 될 수 없고(마 24:1-2),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마 16:16), 그분과 연합된 선택받은 자들의 모임을 ‘참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엡 4:15-16).  다시 말해 비록 외형적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띠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교회란 눈에 보이는 건물에 있지 않고(롬 12:1),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도가 서로 교통하듯’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성전이나(눅 18:10), 집에서(몬 2절), 아니면 다락방(행 1:13-14), 그 어느 장소와 상관없이 두 세 사람이 모여(마 18:19).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면(요 4:21-24), 그곳이 바로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교회에는 구성원들 모두가 죄인인(롬 3:9),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엡 2:8), 그리고 이렇게 모인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 혹은 ‘그리스도의 몸’(골 1;18), 또는 ‘그리스도의 신부’(계 22:17), 더 나아가 ‘새 예루살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계 21:2).

 

이렇게 불리어지는 교회는 눈에 보이는 “유형/가견적 교회”와(고전 1:2, 살전 1:1, 몬 1-2절),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불가견적 교회”로(엡 1:10, 골 1:18, 24), 구분될 수 있는데 이것은 구교 당시 종교 개혁을 하기 전에는 이런 구분이 없었지만 종교 개혁 때부터 구분하게 되었고 이 구분을 처음 시도한 사람이 Martin Luther였으며, John Calvin은 이 문제에 대하여 강조하기를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는 교회의 양상(樣相)이 아니라 영적 교회와 조직적 교회의 양면(兩面)을 말한 것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먼저 넓은 의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는 현재까지 구원받은 자들뿐만 아니라 아직 부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나 장차 구원받게 될 모든 피택자(被擇者)들까지 포함하고 좁은 의미에서는 현재 지상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피택자들로 구성된 교회를 가리키는데 이 무형교회는 교파와 교단과 상관없이 거듭난 참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이지만 본질상 영적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참 신앙을 소유하며 참된 영적교제를 이루고 있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하고(엡 1:22), 하나가 되어 있는(갈 3:28),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들’이지만(벧전 2:9), 오직 하나님만이 이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다(딤후 2:19).

 

이 무형교회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보편적 또는 우주적 교회는 무형적이다. 이 교회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그 아래 하나로 지금까지 모여 들었고 지금 모여 들고 있고 장차 모여 들게 되는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의 충만이다”  Louis Berkhof도 무형교회에 대해 “이 교회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영적인 본질이 육안으로 식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누가 이 교회에 속하였고 누가 이 교회에 속하지 않았는지를 결정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연합은 신비적인 연합이다. 예컨대 거듭남, 참된 회개, 참된 믿음,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 등과 같은 구원의 복들은 모두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외형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을 보고 영적 변화의 외적 증거들을 볼 뿐이지 실제로 그 사람의 마음이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가 참 신자인지 거짓 신자인지를 구분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아시며(민 16:5), 이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삶과(롬 12:1-2), 예배를 통해(요 4:23-24),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히 12:33), 즉 보이지 않는 교회에 참예하게 됩니다.

 

반면에 유형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이 지상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며 구원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 주님께서 세우신 조직을 가리키는데 Wayne Grudem은 유형교회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불신자)들이 볼 수 있는 대로의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자들 그리고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아는 사람들이 보는 대로의 교회를 가리킨다”  이 말의 의미는 무형교회는 거듭난 신자들을 포함한 교회인 반면에 유형교회는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교회로서 비록 참된 신자의 눈으로 볼 때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불신자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거듭나지 않는 자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는 두 개의 교회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이 두 교회의 구성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유형교회 구성원 가운데 장차 구원에 이르지 못할 가라지가 섞여 있을 수 있고(마 22:14, 25:32), 아직 유형교회의 구성원인 되지 않았으나 장차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무형교회의 구성원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행 13:44-48).  쉽게 말하면 무형교회에 속한 교인이 반드시 유형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유형교회에 속한 교인이 반드시 무형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형교회 안에는 예수님이 경고하신 것처럼 양의 탈을 쓴 거듭나지 못한 거짓 목사들과(마 7:15), 후메내오와 빌레도와 같은 거짓 선생들(딤후 2:16-18), 그리고 회심의 경험은 전혀 없고 육신적인 복(빵)만을 추구하는 거짓된 교인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요 6:26-27).  Calvin은 『기독교강요』에서 이 문제를 놓고 Augustine의 말을 인용하여 “밖에도 양이 많고 안에도 이리가 많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 이름과 외형만 있고 그리스도는 전혀 없는 위선자들이 많이 섞여 있다”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알곡에 가라지가 섞일 수 있다는 것인데(마 13:24-30), 사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LutherCalvin이 교회의 무형적인 면을 많이(물론 사도로부터 끊임없이 계승되어온 유형적인 거대한 조직이라는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에 반대해서) 강조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 것은 주께서 자신의 백성, 즉 누가 참 신자인지 거짓 신자인지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딤후 2:19).  그러나 우리가 이 두 가지 형태의 교회를 간과해서는 안 될 이유는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유기체로서의 교회와(롬 12:15, 엡 3:6), 조직체로서의 교회를(마 18:15-17, 행 6:1-6), 무시하는 ‘무교회주의’가 되기 쉽고, 반대로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외형적 제도만을 강조하는 가톨릭교회와 같은 ‘교회 지상주의’로 빠지기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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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논쟁거리/교회 2014. 5. 17. 11:57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교회는 다양한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져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이 많고 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교회가 하나일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이유는 교회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주님의 몸 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엡 4:16).  따라서 교회란 단순한 사교 모임이나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히 소집된 모임이 아니고 또한 한 개인의 영예나 물질적 만족을 위해 구성된 모임도 아니기에 사회적으로 많은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선 교회의 바른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명력을 상실한 소아시아의 사데 교회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계 3:1). Calvin은 교회를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라고 표현하면서『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습니다.  “이 어머니가 그의 태속에서 우리를 잉태하고 우리를 낳으시며 젖을 먹여 양육하고 우리가 이 육신을 벗고 천사처럼 될 때까지(마 22:30), 돌보시고 인도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생명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일평생 교회에서 배우는 자로 지내는 동안 이 품에서 떠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죄의 용서와 구원이 불가능할 것이다. …교회를 떠나는 것은 언제든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사실 개혁교회의 신조들을 통해 거듭 천명된 바가 있듯이 교회는 단순한 성도들의 공동체, 곧 예수님을 믿고 주안에서 성화 되어 가는 자들로 구성된 모임일 뿐 아니라 『스위스 일치신조』에서 고백한 것처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모인 신실한 자들의 모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하여 성령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이 지속적인 모임을 가짐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지만(행 2:43-47), 실상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기 이전 구약시대에서 부터 이미 있어 왔습니다.  그 예를 찾아보면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에서 그가 독자들을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성도들’인데(고전 1:2, 엡 1:1, 빌 1:1, 골 1:1), 이 용어는 바울 자신의 유대적 배경에서 가져온 특정 도시나 지역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거룩한 백성’(출 19:6, 신 7:6), 즉,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택함을 받고 구속된 자들로 시내산에서 하나님 앞에 모인 백성을 가리킬 때 사용될 뿐 아니라(출 19:5-6), 종말에 대한 이상을 기록한 다니엘서 7장18절에서 사용되기도 했기에 바울이 새로 구성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데(갈 6:16), 사용된 모든 용어는 구약 성경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구약성경 70인역에서 교회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카할’(모으다, 소집하다/신 4:10, 왕상 8:1)의 파생어인 “이스라엘 회중”(출 16:3), 혹은 “백성들의 모임/집회”를 (시 26:5), 뜻하는 ‘에클레시아’ 헬라어 단어인데 이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지교회와(행 5:11, 11:25-26, 고전 11:18, 14:19, 28, 35), 개인의 집에서 모인 가정교회(롬 16:23, 고전 16:19, 골 4:15, 몬 1:2), 또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보편적인 유형교회와(고전 10:32, 11:22, 12:28, 엡 4:11-16),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된 무형교회를(엡 1:22, 3:10, 21, 5:23-25, 27, 30, 골 1:18, 24), 지칭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구약성경의 용어인 ‘백성’을(출 19:6), 자주 사용한 것은 교회를 하나님의 옛 언약 백성과(출 15:5-6), 연속성을 가질 뿐 아니라 그 백성의 참된 계승자로 보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데(렘 31:31-34), 이런 연속성의 본질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공동체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히 8:5-8).  다시 말해서 성경에서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나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섬기게 하기 위해 백성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볼 때(출 12:31), 교회는 신약시대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로 구성된 그분의 소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시 24:1, 135:4, 겔 18:4).

 

이렇게 신구약 시대를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아 소집된 주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를 머리로(엡 1:22), 한 몸으로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성령을 공통적으로 풍성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겔 36:26-28).  따라서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교회에서 연합되어(고전 12:13), 모두 하나님의 가족에 포함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하나 됨은(롬 12:5),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뜨리고(엡 2:14), 그 둘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었으며(갈 3:28), 예수의 피로 ‘한 새사람’이 되었고(엡 2:15), 외국인이 아닌 ‘동일한 시민’이요(엡 2:19), 이스라엘 나라 밖에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엡 2:19).  Richard Gaffin의 말을 인용하면 신약 성경은 성령이 개개인에게 역사하는 것을 다룰 때 더 광범위하게 교회론적 차원을 강조하고 나서 그 결과로 개인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다룬다고 주장한 것처럼 바울의 시각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개개인이 아니라 그분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백성으로 택하신 한 사람이 교회 공동체의 지체가 되는 것을 의미하며(엡 4:16), 이렇게 모인 각 지체들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골 1:18), 성령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고전 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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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성인이면서 초대 교회의 교부이자 카르타고의 주교인 Cyprianus하나님께서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잡다한 개개인의 신자들 무리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위한 한 백성을 구원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교회가 구원받은 개개인으로 구성되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목적은 전체로서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개개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는 하지만( 10:9-10), 구원을 단순히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를 넘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고전 12:13), 교회 공동체인 하나님의 백성에게 참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15-16).  예를 들면 고린도교회에 몇몇 개개인들이 저지른 심각한 음행 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범죄한 개인뿐 아니라 그 죄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교회를 향해 책망을 하고(고전 5:1-13),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고 그것을 제대로 처리 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도 교회를 꾸짖기도 하였는데(고전 6:7-11), 여기서 바울이 문제를 삼은 것은 구원받은 개개인을 넘어 하나님의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할에 대해 책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역 교회 지체들과 아무런 교제 없이 혼자 집에서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영상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5:6).  가령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집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독교 방송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설교자가 구원의 초청을 할 때 TV 앞에서 그 설교자를 따라 앵무새처럼 신앙고백을 할지라도 사실 그가 출석하는 교회가 텔레비전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뿐 구속받은 신자들의 지역 모임과 아무런 교제가 없다면( 4:11-15), 과연 이러한 사람을 두고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아시겠지만( 2:9), 문제는 그런 식의 구원이 신약 성경이 정해놓은 틀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요일 2:19).  그런데도 사람들은 로마서 109절 말씀을 인용하여 교회에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이 본문은 적어도 물세례를 받을 때 그러한 고백을 하는 장소가 기독교 공동체라는 전제를 두고 있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을 하나 되게 하는 세례를 통하지 않으면( 2:37-42, 16:31-33), 신자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도 쉽게 무시하거나 놓치는 것이 있다면 바울 서신서에서 나오는 ‘서로’(알렐론)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지체들이며( 12:5, 4:25), 서로를 세워주어야 하고(고전 12:25), 서로 사랑해야 하며(살전 3:12, 4:9, 살후 1:3), 서로 유익을 위해 추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살전 5:15),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해야 하며( 4:2), 서로의 짐을 져야 합니다( 6:2).  나아가서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 인자하게 불쌍히 여겨야 하며( 4:32), 서로 복종하고( 5:21), 자신보다는 서로를 더 낫게 여겨야 하며( 2:3), 사랑으로 서로에게 헌신해야 하고( 12:10), 서로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12:16).  이러한 것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단지 개인을 구원하여(물론 구원하시지만) 세운 것이 아니라 전체의 백성들을 세우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9:6-7), 이것은 바울 서신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으로( 6:16),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언약을 맺은 대상은 이스라엘 개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한 공동체인 것처럼( 19:5-6), 하나님은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5:3), 백성들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속성을 드러냅니다.

 

Hans Küng은 이러한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교회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교회 온 하나님 백성이요 온 ‘에클레시아’이며 온 신앙인의 공동체이다. 모두가 선택된 민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다. 이 하나님 백성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화(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의롭게) 되었으며 성령에 의하여 성화된 사람들이다”  이 말을 쉽게 요약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고전 1:1-2).  따라서 교회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새로운 백성의 무리들( 1:13), 즉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에(벧전 2:9), 세상의 어떤 모임과도 구별된 “택함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교회가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종교 개혁자들로부터 물려받은 교회론의 값진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이며 선택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산 교회( 20:28), 안에는오직 구원받은 참된 주의 백성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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