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독교 10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인구의 4분의1에 해당되는 큰 교세를 자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서울 시내를 돌아보거나 밤에 남산에 올라가보면 불과 몇 미터 사이를 두고 크고 작은 교회들이 같은 상가 안에 혹은 길 하나를 두고 들어서 있는 것을 볼 때 한국 교회는 다른 나라와는 분명 다른 것을 알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나라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교회들 중에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의문시 되는데 오늘날 건물은 화려하고 웅장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실상은 사데 교회처럼 죽은 교회들이 적지 않은 상태이고(계 3:1),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기보다는 지탄을 받는 일이 허다하며 신자조차 자신의 삶 가운데 불신자와 구분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고 성경적으로 말하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빌 3:18).  성경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고전 13:1-2), 요즘 현대교회는 이 사랑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에 분열과 분쟁이 그치지 않아 교파 간에 교리만 조금 달라도 서로 적대적인 관계 속에 경쟁 상대로 여겨 대화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고 과연 이런 교회들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고 뜨고 서로 싸우다 멸망당할 교회들(갈 5:15)에 대해 Hans Küng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죄 많은 동시에 거룩하고 거룩한 동시에 죄 많은 공동체이다”  그러면서 교부시대 이래로 자주 일컬어지고 있는 비유를 들어 교회는 하나의 ‘순결한 창녀’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교회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공동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세상으로부터의 죄의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일수록 유사품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 땅에 세워진 유일한 제도로서(행 20:28),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사 43:7, 21), 그 구성원을 영생으로 이끄는 교회들 중에는 ‘사단의 회’(계 2:9), 즉 거짓된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사단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고후 11:14),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인데(요 10:10), 만약 이것을 깨닫는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참된 교회에 속하였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이방신전들에 관해 논한 적이 있는데(고전 10:19-22, 12:2), 여기서 ‘이방신전’이란 거짓된 종교 모임을 말하고 계시록에 나오는 ‘사단의 회’ 역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참된 유대인이 아닌 자칭 유대인의 모임을 가리키는데(계 3:9), 바로 이런 것이 거짓된 교회의 모습이며 이들은 사단의 왕국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된 교회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교회를 참된 교회로 인식하게 해주는 독특한 특징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 LutherCalvin은 견해를 같이 하는데 Calvin『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반복적으로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며 또 듣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를 지킬 때에 거기 주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만일 말씀과 성례에서 주께서 인정하신 규칙을 지니고 있다면 그 집단은 거짓이 아니다. 이 원칙에 의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는데 말씀과 성례를 보존하고 있는 한 다른 결점이 많더라도 우리는 그 공동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역으로 말하면 진리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고 성례를 행하지 않는 교회, 인간적인 교훈이나 듣기 좋은 허탄한 이야기(딤후 4:3-4), 즉 망령되고 거짓된 교리가(딤전 6:20), 선포되는 곳에 참된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믿음을 통한(엡 2:8), 구원의 복음 소식을 감추거나(롬 1:15-17), 성경 말씀에 있는 하나님 계시의 진실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위격을 부정한다면 그 어떤 모임도 예수님의 피로 세운 교회라고 말할 수 없고(행 20:28),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요일 4:6).

 

이렇게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요 8:31-32, 47, 14:23, 요일 4:1-3,),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지키도록 명령하신 ‘세례’와(마 3:13, 28:19), ‘성찬’을(마 26:26-30),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시행하는데(행 2:38, 고전 11:23-26, 갈 3:26-27), 여기서 세례는 사람들을 교회로 받아들이는 수단이고, 성찬은 교회의 지속적인 회원임을 표시하는 수단이긴 하지만 가룟 유다를 생각해 볼 때(마 26:25-28), 교회가 세례와 성찬을 행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행 1:16-18).  따라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에서 “성례는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은혜 계약의 거룩한 표요 인치심”이라고 했고, Calvin 역시 “성례를 올바로 거행하게 될 때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확증해 주며 또한 견고케 해주는 방식”이라고 강조했지만, 만약 이 성례를 집행함에 있어 성경에 가르치는 바에 따라 죄의 용서와(행 2:38), 주님과의 연합(갈 3:26-27), 그리고 새 생명으로의 부활과(롬 6:3-5),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을(고전 12:13), 확신하지 못하거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마 28:19), 집행되지 않는다면 성례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세례와 성찬을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고 그분과의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구원의 소망을 선포하는 성례의 근본 뜻과 의미를 상실하고 시행한다면 그 교회는 참된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말씀과 성례의 시행이 있을 뿐 아니라 ‘권징’의(마 8:15, 살후 3:6-16, 딤전 1:20, 딛 1:13, 계 2:14-20), 신실한 시행도 뒤따르는데 그 이유는 유한한 인간이 모인 교회 안에는 성도의 성결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고, 만약 교회가 성결함을 훼손하는 죄악된 행위를 고린도 교회처럼 치리하지 않고 묵인한다면(고전 5:1-8), 교회는 더 이상 순결성을 유지할 수 없어 급속히 부패할 것입니다. 사실 Calvin은 권징을 중요시 했지만 『French Confession of Faith』에서는 참된 교회를 식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말씀’과 ‘성례’를 강조했고, 후에『Belgic Confession』이나 이것보다 앞서 작성된 『Scots Confession』에서는 ‘말씀’과 ‘성례’, 그리고 ‘권징’을 교회의 삼대 표지로 정의했으며 이것은 후에 루터주의와 개혁주의를 구분시키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특이한 경우로는 구세군처럼 예배 속에 성례를 시행하지 않는 교회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 안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 거짓 확신을 심어주거나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성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악용하여 엘리 제사장처럼 범죄한 사람들을 묵인하고 내버려 둔다면(삼상 3:13), 그런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교회가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인간의 비위를 맞추거나(미 3:11), 권징이 올바로 시행되지 않는다면(마 18:15-17), 그러한 교회 역시 진정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논쟁거리 >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와 하나님 나라  (0) 2015.01.10
눈에 보이는 교회의 약점  (0) 2014.10.11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0) 2014.08.02
교회란?  (0) 2014.05.17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  (0) 2014.02.22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