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모스크바를 처음 방문했을 때 코스탸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큰 오순절 교회를 섬겼는데 내가 거기에 있는 동안 여러 번 나를 크게 도와주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목사님과 깊은 우정으로 맺어진 것을 알았지만 항상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목사님은 영어를 전혀 못하고 나는 러시아어를 거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목사님의 부인인 헬레나가 영국식 발음이기는 했지만 영어를 매우 잘했습니다.  1993년 선교여행 중에 처음으로 주일에 모스크바 방문 일정이 잡혔고 목사님은 나를 자기교회에서 설교하라고 초청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강단에 낫과 망치가 걸려 있는 큰 강단이었는데… 예배가 시작되자 목사님은 마이크로 다가가 양손을 들고 또렷한 미국 본토발음으로 “성령님 오늘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가 계속되었고 나의 벌어진 입은 닫히지 않았습니다.  소련 사람을 만나본 분은 아시겠지만 몇 년 동안 훈련과 연습을 거치지 않으면 소련인이 미국식 본토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물며 목사님은 영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배가 끝난 후 나는 헬레나에게 “저는 코스댜 목사님이 영어를 전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완벽한 영어로 기도하시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 남편은 영어를 못해요. 그것은 방언기도입니다. 뭐라고 기도했는지 목사님도 모르고 계십니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방언으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본 것이었습니다.  코스탸 목사님이 영어로 방언하는 것을 들으면서 사도행전 2장에서 군중들이 다락방에 성령이 임할 때 타국인들이 자기들 본토 방언을 하는 것을 듣고 느꼈을 감정을 조금 맛보았습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방언도 하지 못하는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었고 신학교에서는 방언의 부당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 결과 목사가 되어 사역할 때 교인들에게 방언의 부당성을 가르쳤고 처음 십 년간은 오늘날 방언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니라고 일 년에 몇 번씩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히 찾지도 않았는데 성령께서 저와 아내에게 방언을 주셨고, 문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하나님의 임재가 제 가정을 덮었습니다.  처음에 나로서는 이 경험을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반대 입장을 가르쳐왔던 내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나의 방언 체험을 사람들한테 말했는데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언하는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방언만큼 그분께 나를 더 가까이 이끌어 준 것이 없습니다.  지난 십 사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방언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에, 개인기도 시간에, 운전하면서도 방언기도를 합니다.  방언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위의 간증은 『Experiencing the Spirit』에서 나오는 것으로 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하고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활발하게 사역하면서 헝가리와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소재하는 Messianic Jewish Bible Institutes에서 초빙교수로 섬기고 있는 Robert Heidler 박사의 고백입니다.  물론 이러한 글을 접할 때마다 두 부류의 사람들로 갈라질 수 있는데, 한 부류는 마귀의 주술에 걸려 자신도 알지 못하고 옹알거리는 귀신방언을 한다고 말할 것이고 다른 한 부류는 지금도 여전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드릴 것입니다.  사실 방언기도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방언을 허락해 주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데(고전 12:11), 여기서 항상 궁금한 것은 방언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내가 과연 마귀에게 조종 받아 시간만 되면 기도실에 들어가서 옹알거리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목사는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전두엽을 손상시켜 좀비가 된다고 장황스럽게 궤변을 늘어놓는데 왜 아직까지 나는 방언기도를 많이 했어도 좀비(?)가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솔직히 방언기도를 전혀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이나 하다가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포기한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인 방언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R. T. Kendall의 말을 인용한다면 “진짜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 가짜에 관해 논할 자격이 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들의 주장은 궤변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을 통해 성령이 주신 은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솔직히 이들이 받은 은사가 정말 하나님께로 왔다면(고전 12:11), 데마가 주님을 버리고 떠난 것처럼(딤후 4:10), 그 은사를 그렇게 헌신짝처럼 내다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는 부모가 없듯이(마 7:9),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은사)들 중에 나쁜 것은 하나도 없는데(약 1:17), 안타까운 것은 그 받은 은사가 성령께로부터 온 확신이 얼마나 없었으면 쉽게 포기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마귀가 보통 영악하기 그지없다는 것이고(고후 11:3), 사실 영적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상모략에 뛰어난 마귀(욥 1:9)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 즉 하와를 충동질한 것처럼 사람 마음속에 끊임없이 의심을 심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창 3:4-5).  심각한 문제는 한 번 의심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런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개 눈에 똥만 보이는 것”처럼 계속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마다 의심이 일어나는데(눅 24:38), 이것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처럼(약 1:6), 미혹의 영 마귀에게 충동질을 받아 나타나는 증상입니다(계 12: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평강으로 지켜주시는 것이고(사 26:3),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확신한 것처럼(행 27:22-26),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그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성령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은사들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눅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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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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