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1장 24-25절에서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가 풍족하게 되며 부하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구제는 부하게 되는 지름길이지만 그보다는 먼저 성도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인 것이다.  따라서 본고(本稿)는 구제의 의미와 대상, 범위와 축복 등에 관한 사항들을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할 구제 의무에 대하여 논하려 한다. 

 

1. 구약에서의 구제

구약에서는 가난한 자와 과부, 고아를 돌보는 자선적인 성격의 구제가 요구되었다.  율법에서는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추수하지 말고 남겨 놓으며,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감람나무나 포도나무도 한 번 떤 후에 남은 열매를 줍지 말고 그대로 두어 가난한 자나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취할 수 있게 하라고 명하였다(19:9-10, 23:22, 24:19-22).  또한 가난한 사람이나 배고픈 사람이 길을 가다가 밭이나 포도원에서 배를 채우는 것도 허락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3년마다 소득의 10분의 1을 바쳐 레위인이나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돕는 일에 사용하였다(14:28-29).  그리고 밭은 7년마다 갈지 않고 남겨 두어 백성 가운데 가난한 자들이 소산물을 먹을 수 있게 하였다(23:11).  이와 같이 가난한 자와 배고픈 자, 또한 사회적으로 나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노릇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들을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의 자비를 상기하는 의미가 있었다(24:22).

 

2. 신약에서의 구제

신약 시대에 와서도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는 여전히 강조되었다(13:29).  그러나 그 의미는 보다 확장되고 영적인 것이 되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구제의 행위 자체보다는 그 동기의 순수성과 영적인 의미를 강조하셨던 것이다(11:41).  그리스도의 구제관은 구제 행위는 그리스도 자신을 돕는 일이며(25:42-46), 하늘에 각자의 보물을 쌓는 것(12:33)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구제는 은밀하게 또 자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6:3).  또한 초대 교회에서도 자발적인 구제는 강조되었으며(4:32-35, 12:13), 사도 바울도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4:28)고 말하여 구제와 그리스도인의 선한 노동 사이에 관계를 밝혔다.  교회의 첫 직분자가 임명된 것도 구제 사업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었다(6:1-6).  이와 같은 구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13:16)이었으며, 자신의 신앙이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믿음의 표현이었다(2:14-17, 요일 3:16-18).

 

3. 구제와 전도

구제는 영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11:41, 12:33).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구제에 힘쓸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결국 구제와 전도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 둘은 사랑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 지는 것이다(고전 13:4).  복음의 전파가 주의 명령이듯이 구제도 주께서 명하신 일이므로 성도들은 구제를 통한 은혜의 실천에 힘써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구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의 의()가 되기도 하며(10:4, 31), 보상이 약속된(참조, 58:7-8) 행위이기도 하다.  결국 구제는 전도와 병행되거나 혹은 선행되어야 할 성도의 귀중한 덕목 가운데 한 가지이다. 

 

4. 구제의 내용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은혜의 실천적 행위라면 구제의 내용은 당연히 삶의 전영역을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 사업이나 의료 사업 등도 모두 구제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또한 부당하게 억압받거나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자들을 위하여 변호하는 일도(31:8-9), 구제에 포함된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외치는 모든 것이 구제가 될 수 있으며, 이때에 성도들의 자기 희생적인 봉사는 곧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5:13-16).

 

5. 결론

구제는 사랑에 근거한 행위이다.  따라서 사랑이 없이는 참된 구제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논리에서 볼 때 현대 교회에 구제가 차츰 무시되는 것은 사랑과 신앙의 적극성이 메말라 가는 현상을 반증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각성해야 한다.  교회의 헌금은 보다 사회적인 자선 사업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물론 예배당을 훌륭하게 짓고 교인들 사이의 사랑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병든 자들을 돌보고 자라나는 세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며 고아원과 양로원을 세우고 재난을 당한 자들에게 신속하고도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일도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교회는 세상을 선과 사랑으로 정복할 의무가 있다(12:21).  교회와 세상은 결코 이원적(二元的) 인 것이 아니다.  세상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으며,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을 선포하고 증거할 사명이 있는데, 이 사명은 선교와 구제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참조, 딤후 4:7, 벧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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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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