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형교회 담임목사이며 영향력이 있다는 한 목회자가 부활주일 설교 도중에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혹은 성령의 인도하심인지 모르겠지만, 부활절 설교와는 조금 벗어난 누가복음 13장에 나오는 ‘실로암 망대 사건’에 대해 메시지를 전했다. 문제는 그것을 듣는 교인들이 적지 않는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전 국민을 슬픔과 분노의 도가니로 빠뜨리는 대형사건이 터진 후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인터넷 신문을 통해 그의 메시지를 접할 때, 비록 적절한 시기는 아니지만 한국교회가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목회자가 바른말을 하거나 성경말씀을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탄과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설교가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기독교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문제를 삼자 5일이 지난 후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부연설명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문득 사무엘상 15장 24절의 말씀이 생각이 나면서 쓸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자신이 전한메시지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는 확신이 없었으면 목사가 설교를 하고 나서 그것에 대한 부연 설명을 일일이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추면서 전하는 설교를 좋아하는 타락한 시대다(딤후 4:3-4).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오늘날 현대 교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이 말을 어렵게 해석할 필요가 없고 듣기 쉽게 말하면 이렇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잘 보이거나 환심을 사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분께만 인정받기를 원하는 주의 종입니다. 사람들의 눈치와 여론을 두려워하며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 세상 사람들의 지탄과 비판의 목소리, 설사 교회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누군가가 과감 없이 성경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사도 바울처럼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행 26:24). 윤리적인 설교나 도덕적인 설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지적하고(요 8:11), 회개를 외치고(행 3:19), 다가올 심판을 증거 하며(히 9:27), 천국보다는 지옥의 비참함(막 9:43-49)을 증거 하는 것 말이다. 이런 사람은 본인 자신도 예수께 미친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후 5:13). 이것을 우리 속담으로 말하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고, 성경적으로 말하면 ‘강하고 담대한 것’이다(수 1:6).
앞서 말했듯이 이 시대는 목회자가 교회에서 주는 어떤 혜택 때문인지는 몰라도 교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믿음이 없는 패역한 시대다.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아니야!”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목사가 있을지 모르겠다.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교회 사이즈가 어느 정도만 되어도 혜택이 있다. 2-3천 명만 넘으면 전담 비서실이 있는 대기업 수준이다. 만약, 예수를 우리의 목회의 본으로 삼는다면(벧전 2:21), 그분과 비교해서 오늘날 목사들은 너무나 많은 혜택을 받는 것 같다. 내 말이 진실이 아닌 것처럼 게거품을 물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목사가 자신이 수많은 혜택으로 ‘도살의 날에 마음을 살지게’(약 5:5)하며 길들여져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예수께서도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눅 18:8). 믿음 생활이 너무 게을러져서 끈기 있게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말씀을 과감 없이 바르게 전하는 목사가 지금의 현실에 있을까? 교회에서 주는 혜택이 너무나 좋은데 말이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눈치보다는 백성들의 눈치를 보고(삼상 13-15장) 그들의 비위를 맞추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삼상 31장).
그러나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성령께서 목회자의 입을 당나귀처럼 사용하여 말씀을 전할 때(민 22:28), 그 메시지를 전하는 목사가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그 설교에 대해 일일이 해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민 22:38). 왜냐하면 성경 전체를 찾아보아도 선지자나 사도, 그리고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 중에 심지어 예수조차도 말씀을 증거하고 나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부연설명을 하거나 해명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 가치관과 전통에 매여 살 수밖에 없는 죄악 된 본성을 지닌 연약한 피조물이다(롬 3: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한 것처럼 해야 한다. ‘오늘 너희에게 증거 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 20:26-27). 이 말은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에 빠지거나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면, 바울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그는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르쳤고, 누구에게도 욕먹을 짓을 하지 않았다.
비록 주변 사람들과 쓰레기 같은 언론을 통해 무수한 비판의 돌을 맞거나(행 7:58, 14:19), 아니면 세례요한처럼 생명을 잃는다 할지라도(마 14:8-12), 만약 성령이 그 시간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막 13:11), 그것이 사람들의 죄악을 지적하거나 회개를 외치며 살벌한 지옥의 메시지라도 반드시 선포되어야 한다(마 3: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