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어 해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주요 술어로서 가난한 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에는 서너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빈번하게 쓰이고 있는 단어는 <아니>이다. 이 단어는 주로 가난하고 궁핍하여 다른 사람의 밭이나 포도원에 가서 이삭을 주우며 포도를 따먹는 자들을 의미한다(레 19:9-10). 또 다른 단어로는 <에비욘>이 있는데 재물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자를 가리킨다(참조, 신 15:11). 그리고 <딸>과 <딸라>라는 말은 ‘고달픈 생활을 하다’는 뜻인 <따랄>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중 <딸>은 학대를 받아 핍절케 된 자(잠 22:16, 욥 20:19)를 가리키며, <딸라>는 바벨론 포로 시대 동안에 팔레스틴에 남아 있던 가장 가난한 계층의 이스라엘인들을 가리킨다(왕하 25:12).
그리고 <미스켄>이라는 단어는 전도서에만 나오는데 ‘거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전도서의 기자는 거지와 같이 가난한 자가 뭇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전 9:15-16). 이외에도 <로오스>는 궁핍하여 가난한 자들의 부류에 속한 자(삼하 3:39, 욥 30:3)를 가리킨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헬라어로서 ‘가난’이나 ‘가난한 자’를 의미하는 단어는 몇 개 안 되는데, 그중 <프토코스>는 가장 일반적으로 쓰인 단어이다. 이 단어는 거지를 뜻하기도 하였고(눅 16:20), 물질적으로 부유치 못한 자들을 가리키기도 하였다(마 19:21, 요 13:29). 그러나 때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 자라’(마 5:3)고 하여 비유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밖에도 <페네스>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고후 9:9)를 의미하며, <엔데에스>는 초대 교회 안의 가난한 자들, 즉 다른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 나누어 준 덕택에 생활해 나가는 자들을 의미한다(행 4:34).
2. 가난한 이유
사람들이 가난하게 되는 몇 가지 이유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의 행동에 따른 결과이다. 게으름(잠 6:6-11), 향락 추구(잠 21:17), 술 취하고 탐식하는 것(잠 23:21), 다른 사람의 훈계를 저버리는 것(잠 13:18) 등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든다고 성경은 기록하였다. 둘째, 타인의 부당 행위 때문이기도 하다. 압제(출 1:13), 사기(암 5:11), 고리 대금(잠 28:8), 탐욕(삼하 12:1-2), 부정과 부패(사 10:2, 렘 5:28, 22:13) 등의 행위는 이웃을 가난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세째, 가뭄, 홍수, 질병과 같은 천재지변(출 10:5, 렘 50:38)과 전쟁은 수입 요인을 상실케 만들기 때문에 가난의 원인이 되었다. 네째, 특별한 경우로서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하신 때도 있다(삼상 2:7, 욥 1:21, 학 2:6-19).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난을 허용하시는 것은 성도들의 신앙을 연단 시키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다섯째, 스스로가 자원하여 가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시기 위하여 스스로가 가난하게 되셨다(고후 8:9, 빌 2:5-7). 초대 교회의 사도들도 이런 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였다(고후 6:10).
3. 가난한자에 대한 성경적 이해
모세도(신 15:11),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어느 사회든 간에 땅에는 항상 가난한 자가 있게 마련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6:11). 그러면서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만 한다는 의무를 강조하셨다. 물론 부(富)는 덕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며, 가난은 그 반대의 형벌일 수도 있다(잠 10:15-16, 15:6, 시 1:1-3, 112:1-3).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욥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다(요 1:6-22).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기에 부자가 가난한 자보다 더 우월 할 수는 없다(잠 22:2). 성경은 언제나 사람들이 자기 이웃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 주라고 명한다. 심지어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 가운데서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곳에 거할까보냐’(요일 3:17)라고 반문하였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한 규례가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즉 가난한 자에게서 이식(利息)을 취하지 못하였으며(출 22:25, 레 25:36), 안식년에는 가난한 자들에게 빛 독촉을 할 수도 없었다(신 15:1-4). 뿐만 아니라 노예로 팔려간 자는 6년 후에는 자유로운 몸이 되도록 규정되었다(신 15:12-18).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규정들은 법적 강제성을 지니지 못했으므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가난한 자들과 경제적으로 나약한 자들을 곤경에 빠트린 사회적 악덕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던 것이다(사 10:1-2, 암 5:12).
신약 시대에 와서도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돈궤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요 13:29). 사도 바울도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여 염려하였고(갈 2:10),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을 권장하였다(롬 15:26). 결론적으로 우리는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치 아니하겠는 고로’라는 말을 잊지 말고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핌한 자에게 네 손을 펄지니라’(신 15:11)는 권고의 말씀을 직접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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