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해줄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 받지 않고 예수 믿는 제자들이 나오기 때문이다(행 19장).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는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롬 8:9, 16, 고전 12:3, 13, 엡 1:13).
사실 에베소 사람들의 보여 준 반응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2절). 그런데 세례요한은 성령의 오심에 대해 분명하게 전했기 때문이다(마 3:11, 막 1:8, 눅 3:16, 요 1:32-33).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지만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교회 탄생과 존속을 위한 성령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것은 요한의 물세례였다(행 19:1-4절). 어쩌면 이들이 바로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행 18:25).
그러면 요한의 세례는 무엇인가? 이것은 죄로부터 회개한 징표(마 3:2, 6, 8, 11, 막 1:4-5, 눅 3:8) 였을 뿐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생명의 징표는 아니었다. 즉, 요한의 사역은 어디까지나 예비적인 사역이었다. 반면에 예수의 세례는 베드로의 선포에서 강조한 것처럼 성령의 세례(행 2:38), 즉 성령과 연결되어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되돌아보는 것이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에베소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안수받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다(행 19:4-7). 그렇다면 성령 받은 증거를 알 수 있는가?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요 14:16).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이 오시면(요 15:26),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요 16:8). 따라서 성령 받은 첫 번째 증거는 먼저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어두움 속에서는 바른 사물을 볼 수 없듯이,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인인 줄을 전혀 모르고 방탕하며 살아간다(롬 3:11-12).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끌림을 받고(요 6:44), 빛 되신 그분의 부르심을 통해(롬 8:30), 예수를 믿고 자신이 그분 앞에 죄인인 것을 깨닫고 애통해한다면(마 5:4), 그는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갈 1:14),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그분 앞에 죄인인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딤전 1:13). 그러나 다메섹에서 빛 되신 주님을 만난 후(행 9:3, 22:11, 26:13),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처럼(딤전 1:15), 성령은 죄로 병든 인간을 그리스도 앞에 세울 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간(엡 2:1)이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사실을 깨닫게 된다(출 3:1-5, 사 6:1-5, 눅 5:8).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세리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Martin Luther가 말한 것처럼 날마다(마 6:12), 용서받은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눅 8:18:13). 하지만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롬 3:9-18).
성령 받은 두 번째 증거는 ‘의에 대하여 아는 것’이다(요 16:8).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예수에 대해 지식적으로는 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적으로는 모를 수밖에 없다(요 5:39).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마 11:27)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구원의 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요 1:29), 그분에 대해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성령 받은 후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설교한 내용을 보면 예수의 탄생(마 1:21), 대속의 죽음(히 9:12), 부활(막 16:6), 승천(행 1:11), 재림(마 25:31)과 심판(계 21:11-15)에 대해 확실히 알고 증거 했다(행 2:14-36). 사실 베드로는 세상적으로 배운 것은 없지만(행 4:13), 예수에 대해서만큼은 ‘명약관화’하게 된 것처럼 성령을 받으면 세상지식에는 무지할지라도 그분에 대해 아는 지식이 생긴다(빌 3:8). 다시 말해 성령을 받지 못하면 니고데모처럼 세상 교육은 많이 받아 해박할지라도 예수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이다(요 3:10).
더 나아가 성령을 받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사죄의 확신을 갖게 된다. 바울은 성령 받고 나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도 했지만 (딤전 1:15), 다른 한편으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는 확신을 가지기도 했다(롬 8:31-39). 따라서 성령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고(고후 13:5), 성령을 받지 못하면 구원의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은 내 죄에 대해 ‘검사’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변호인’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롬 8:14-16).
성령 받은 마지막 증거는 ‘심판에 대하여 아는 것’이다(요 16:8). 요한복음에 보면 사탄을 세상 임금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14:30), 여기서 사탄의 역사는 두 가지로 외부적인 역사와 내부적인 역사로 나타난다.
먼저 성령이 오시면 사탄은 외부적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주님은 성령의 사역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과의 치열한 논쟁에서 사탄을 집주인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마 12:24_29). 다시 말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고(막 2:17), 그 죄인이 사탄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인간을 구원하려면 먼저 집주인이 되는 사탄을 결박해야 한다(요일 3:8). 이러한 외부적인 사탄의. 역사를 성령이 오심으로 심판을 받게 하신 것이다(눅 10:17-20).
내부적인 심판은 성령 받기 전의 내 마음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엡 2:2), 언제나 두려움과 공포 속에 떨면서 일평생 종노릇하는 가운데 살아간다(히 2:14-15). 하지만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행 2:38), 사탄이 쫓겨가고 두려움과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며, 평안(요 14:27)과 기쁨이 넘쳐나게 된다(요 16:22).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갈 5:22-23)와 성령의 은사(고전 12장)와 상관없이 성령을 받으면 가장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진심으로 고백하고(눅 18:13-14),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며(행 4:12), 내 마음을 다스리는 분이 사탄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의심 없이 믿는다면, 이미 그는 성령을 받은 것이다(갈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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