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교회 내에서 은사의 다양성에 대해 육체의 비유를 통해 말하고 있다(고전 12:12-31).  그의 요점은 한 육체의 모든 지체들이 몸의 건강을 위해 모두 필요한 것처럼 모든 은사들은 교회의 건강을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고전 12:7).  그러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 말한다(고전 1:7).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성령의 은사들을 주님의 다시 오심과 연결시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고린도교회 신자들과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은사들이 교회를 성숙하게 세워 나아가는 데 있어 귀중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엡 4:11-13).  

바울은 단순한 암시를 넘어 성령의 은사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철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더 나아가 현재 예언(고전 12:10)과 방언(고전 12:10), 그리고 지식(고전 12:8)은 부분적이고 불안전하지만(고전 13:8-9), 온전한 것이 와서 그것들을 대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고전 13:10).   바울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생각과 말을 버려야 한다는 비유를 든다(고전 13:11).  

그러면서 현재 우리의 지식과 이해는 직접적이지 못하고 불완전하지만 언젠가는 완전해지고 직접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고전 13:12).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령의 은사들은 교회를 충분하고 완전한 완성으로 이끌기 위하여 주어졌고, 이것이 완성되었을 때 은사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여기서 논쟁이 되는 구절은 ‘온전한 것이 올 때’란 언제냐는 것이다(고전 13:10).  이것에 대해 Robert L. Reymond는 성령의 은사계속설은 계시 은사들의 중지라는 장로교 교리와 배치된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후『What about Continuing Revelations and Miracles in the Presbyterian Church Today』에서 ‘온전한 것’은 계시과정의 결과인 신약정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만들어 내는 ‘완성된 계시의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온전한 것이 올 때’란 성경의 정경이 완성될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미성숙하고 불안전의 단계에서 사용했던 계시의 수단들인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중지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Richard Gaffin은 계시 은사의 종결을 주장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 8-13절에 대한 해석에서는 Reymond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Perspective on Pentecost』에서 ‘온전한 것’과 ‘그때’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주님의 재림을 가리킨다고 말하면서 온전한 것을 신약정경의 완성을 가리킨다는 입장은 성경 주해상 신비성이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예언과 방언의 중지 시기는 이 본문에 관한 한 “하나의 열린 문제”라고 말한다.  

만약 Gaffin 말처럼 ‘온전한 것이 올 때’가 주님의 재림을 가리킨다면 예언이나 방언의 은사들은 그때에야 중단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는 성령의 은사들이 교회 시대를 통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D. A. Carson는 ‘온전한 것’을 재림과 직결하면서 이것을 정경완성과 연관시키는 해석에 대해 『Showing the Spirit: A Theological Exposition of 1 Corinthians, 12-14』에서 다음과 같이 정당한 비판을 가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이 온전한 것을 성경기록의 종료와 관련하여 생각할 것을 기대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구절이다. 바울은 ‘그때’에 전지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의 지식은 하나님이 현재 자기를 아는 지식을 닮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의 것이 될 때에는 예언, 지식, 방언 등 은사들은 사라질 것이다. 거울로 보는 것과 대면하여 보는 것은 70 인경에서는 거의 ‘신현’에 대한 공식이므로(창 32:30, 삿 6:22), 그것은 거의 확실하게 재림으로 도래될 새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정경 이전의 교회의 미숙과 정경 이후 교회의 성숙을 1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유아와 성인으로 대비하는 것은 역사적인 난센스다”  

Gordon Fee 역시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ICNT』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가 오실 때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최종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 시점에는 현시대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은사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예언과 방언과 지식의 은사가 정경 종료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 때 현시대적 본질을 가진 은사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을 신약성경 정경의 완성으로 보는 입장을 고집한다면 그 문맥에서 바울의 의도와 상충된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주님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그분을 완전히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지금 완성된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누가 진정으로 주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바울의 지식과 경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그분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마음은 거짓되고 부패해 있다(렘 17:9).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그는 우리의 마음에서 모든 죄의 흔적과 사망과 아픈 것을 제거하실 것이다(계 21:4).  그리고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며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된다(고전 13:12).  

여기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여러 번 사용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말로(창 32:30, 출 33:11, 신 5:4, 34:10, 삿 6:22, 겔 20:35), 예수를 대면하여 보게 될 때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요일 3:2).   ‘그때에는’이란 10절에서 말한 ‘온전한 것이 올 때’를 가리킨다.  이 말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신자들은 예수처럼 전지 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보나 오해 없이 주님을 정확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 영적인 은사들이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지속되고 활용되며 교회의 유익(고전 12:7)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엡 4:12),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주신 것이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 그리고 14장에 나오는 모든 은사들이 그리스도의 재림까지만 필요하고(고전 13:10), 그 이후에는 쓸모없다고 말한다. 

간추려 요약하면 사도시대가 끝났고 신약정경이 완성됐다고 해서 성령의 은사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마 26:64), 온전치 못한 것들인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전혀 필요 없게 될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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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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