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내주사역은 자동적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살기를 간구할 필요가 없고, 그분의 내주 임재를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에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처를 정하시고 내주하십니다(고전 3:16). 이와는 달리 성령의 능력은 자동적일 때가 거의 없고, 보통 기도의 응답과 안수를 통해 임하는데 그 예를 신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실 때(요 20:19-23), 이것은 이미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주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물론 여기서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만큼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된 구절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제자들이 성령을 두 번에 걸쳐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한번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찾아오셔서 성령을 주시고, 오순절 날에 다시 한번 성령충만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 대해 칼빈은 성령의 ‘뿌림’과 오순절의 ‘흠뻑 적심’으로 구분하고, 웨스트코트는 요한복음에서는 새 생명이 주어졌고, 사도행전에서는 사역을 위한 권능이 주어졌다고 해석합니다. 반면에 F. F 부르스는 웨스트코트와는 정반대로 해석하는데, 사실 이런 신학적 논쟁은 신앙생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튼 성령은 제자들에게 이미 내주하셨고(마 16:16, 고전 12:3),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조금 지난 후 오순절 날에 성령의 강한 능력이 입혀지는데(행 2:1-4), 열흘 간 걸친 기도의 준비로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눅 24:49). 다른 하나는 사도행전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12-13). 그리고 며칠이 지나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믿는 자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입게 됩니다(행 8:14-17). 사도행전 19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나오는데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제자들을 만나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습니다(1-6절). 마지막으로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나 믿었을 때 성령은 이미 내주를 하셨으나 그로부터 삼 일이 지나 아나니아란 사람이 바울에게 와서 안수할 때 성령의 능력을 받습니다(행 9장). 이처럼 초대교인들에게 있어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성령의 능력 입힘은 구원받은 때가 아니고, 구원받은 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특별한 기도 응답으로 임할 때가 많습니다. 어거스틴이 살던 4세기 당시에는 새 신자가 교회에 나오면 장로들이 안수하고 성령받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은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받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행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