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받을 자
예수님은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한 자를 심판하실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요 12:48).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거부하는 것임을 아셨다. 이들은 누구인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고전 5:13), 곧 ‘불의한 자’(벧전 2:9), ‘경건하지 아니한 자’(벧후 3:7, 유 14-15), 예수를 경배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이 세상에서 속한 사람들’(NLT/계 6:10)이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이 기다릴 수 있는 유일한 미래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 즉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히 10:27) 뿐이다.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이라 할지라도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불신자들, NLT)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계 21:8).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어떠한가? 과연 그들도 심판을 받는가? 나는 이 문제를 차근차근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곧 하나님의 은혜(엡 2:8)와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완성하신 사역으로(요 19:30) 말미암아 믿음으로 이루어진 관계에 규정된다(롬 5:2). 따라서 마귀는 행위를 막으려고 애쓰지 않고 믿음을 막으려고 발악에 가까운 궤계를 쓴다(눅 8:12). 그런데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1:12), 주님과의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영생을 현재 소유함으로써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 3:18). 그들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이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이다(요 5:24).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듯이’(요일 5:12), 신자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영생을 현재 소유함으로써 얻었다.
NLT 영역본은 요한복음 5장 24절을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결코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번역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골 1:13).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그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들의 몸의 구성원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기 때문에 정죄함이 없다(고전 15:55).
그런데 주목할만한 사실은 신약성경에 ‘카리스’(은혜)라는 그리스어 단어가 155회 등장하는데, 100회가 바울 서신에서 언급된다는 것이다. 신성모독자이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바울 이 사람,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6)에게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졌다(딤전 1:14). 위협과 살기가 충만(행 9:1)하고, 악질 중의 악질(딤전 1:9)인 바울에게 어떻게 그런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바로 ‘예수’다(딤전 1:15). 은혜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통해 주어진다(딤후 2:1). 이 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은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라는 구절은 문자 그대로 ‘신실하도다 … 이 말씀이여’로 번역된다. 목회 서신 외의 다른 곳에서는 이 구절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딤전 3:1, 딤후 2:11, 딛 3:8), 이 말을 다시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도 좋은 믿을 만한 말이 있다’(현대인의 성경). 이 말은 ‘참되니 너희는 이 말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NCV). 즉 ‘너희가 마음에 새기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메시지 성경). 그러므로 ‘이 진술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또 보편적으로 받아 들어져야 한다’(J. B. Phillip’s). 한 마디로 ‘너희는 이 말을 믿어도 된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신뢰할만한 진술은 우리와 상관이 있는 것인가? 바울은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 중에 괴수’인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6)고 말한다. 바울은 과거를 회고하며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놀라운 인내하심을 깨닫는다. 바울 자신이 쓴 모든 편지를 ‘은혜’라는 말로 시작하고 끝맺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의 마지막 어구도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후 4:22)였다.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그 안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은혜다(롬 5:2).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을 의미한다(갈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