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성령'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9.02.22 소멸
  2. 2018.09.30 교제
  3. 2018.07.18 기름부으심
  4. 2018.05.11 안수
  5. 2018.02.09 구원
  6. 2017.12.29 능력
  7. 2017.11.03 무장
  8. 2017.08.24 말씀
  9. 2017.06.15 결단
  10. 2017.03.30 회개
  11. 2017.01.05 변화
  12. 2016.09.29 은사
  13. 2016.07.28 열매
  14. 2016.05.05
  15. 2016.03.08 내주
  16. 2015.12.23 두 가지
  17. 2015.10.28 다양성
  18. 2015.08.05 경험
  19. 2015.05.27 아는 것
  20. 2015.04.22 인격체

소멸

진리의 성령 2019. 2. 22. 17:44

달라스 신학교 구약학 교수이자(1948-1967) Unger's Bible Dictionary을 펴낸 Merill Unger는 치유에 관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교회사 전반에 걸쳐 나타났으며 오늘날도 당연히 역사해야 하는 것이다. 신유의 은사가 올바로 사용될 때 그것은 삶의 축복이 된다. 예수님은 구속함을 받은 자의 연약한 육체를 만져주시기 위해 기다리시며 이 땅에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몸을 고쳐주신다.” 또한 위대한 설교가인 Charles H. Spurgeon은 금세기 말에 예언적인 은사가 풀어놓아질 것을 간절히 기대하며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성령의 또 하나의 큰 역사는 나중 영광이 임하는 것이다. 몇 년 안에 그것이 언제 어떻게 올지는 모르지만 성령께서 현재와는 매우 다르게 임하실 것이다. 그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내가 살아서 볼 수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면 내 눈은 반짝인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언을 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이들은 은사주의나 오순절파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은 성령을 경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교회가 복음주의든 오순절주의이든 성령의 사역을 새롭게 보고, 다 함께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받도록 힘써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Lloyd Jones는 『부흥』에서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죽은 정통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부흥을 맞지 않을 때에 성가대에 중점을 둔다. 또 성가대와 성가대의 독창가들을 돈을 주고 사오기도 한다. 그리고 회중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고 성가대는 그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교회생활이 모두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고, 모든 항목이 미리 정해져 있으며 시간이 주어져 있다. 어느 시점에 시작하여 어느 시점에 마쳐야 하는지가 다 정해져 있다. 순서지에 정해진 대로 11시에 시작해서 모든 것이 다 진행되면 12시가 된다. 그럼 다음 축도가 이어진다. 이것은 제가 볼 때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 문제는 우리가 성령께 기회를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프로그램에 너무 매여 있어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틈을 전혀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를 소멸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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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진리의 성령 2018. 9. 30. 14:27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자 한다면 기름부음을 회복하여 유지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능력사역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유지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지의 비결은 끊임없이 기름부음의 공급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을 더 받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은 매우 바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로 시작하셔서 베드로의 집에 들려 그 장모의 병을 고쳐주시고, 저녁에 마을 사람 전부가 몰려올 때에 저녁 내내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이 일이 다 끝날 때쯤에는 기진맥진하여 영육간의 온 힘이 다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이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1:35).  우리가 만약 이렇게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면 다음날 일찍 일어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시기 위해 이처럼 바쁜 사역 일정 후에도 예수님은 보통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 34-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큰 무리를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신 후 오천 명을 먹이심으로 하루를 마감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치르신 후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뱃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 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6:45-4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고 밤의 대부분을 기도로 보내십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무리에게 다 주어버렸을 때, 예수님은 영적 공급원이신 아버지께로 돌아가 친밀한 교제를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원리의 근간이 되는영적능력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흘러나온다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았다고 해서 그 능력이 영구적인 것은 아닙니다.  항상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 재충전을 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18절의끊임없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헬라어 원어)는 말씀처럼 충만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충만 받았던 제자들이 4장에서 재충전 받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들도 재충전 받았다면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분과 교제하며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매일 하나님과 홀로 보내는 시간을 갖고, 성령을 초청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긴장을 풀고 성령 하나님께서 그분의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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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부으심

진리의 성령 2018. 7. 18. 13:16

예수님의 사역의 원천은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1:1).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임하시기 전까지는 아무 역사도 행하지 않으셨고, 그 전에 사역을 하셨다는 기록이 하나도 없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 없이는 사역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24:49).  사역하는데 한 가지 필수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입니다.  기름부음이 없는 사역은 없고, 사역을 하고자 한다면 기름부음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흔히 우리는 기름부음이란 단어를 들으면 사람의 머리에 감람유를 붓는 성경적인 장면을 생각하곤 합니다( 8:12).  하지만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이 아닌 더 깊은 실제의 세계를 풀어놓아주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믿음으로 상대방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어주셔서 아픈 곳이 치유되거나 사역을 위해 준비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름부음의 진정한 결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0:38).  예수님은메시야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4:27).  우리는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붓지만(삼상 16:13), 성령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을 수 있습니다( 3:22, 4:18).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입게 되는데, 이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은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실체입니다. 믿음으로 얻어지는 영적인 것일 뿐 아니라 우리의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가 그녀를 치료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흘러나가 역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름부음은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전달되는데 물처럼, 전기처럼 몸의 접촉을 통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흘러갑니다( 14:35-36, 5:27-31).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6:19).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은 생명이 없는 물체에도 한시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데, 죽은 시체가 기름부음을 받았던 엘리사의 뼈에 닿자 희생한 일도 있었고(왕하 13:21), 바울의 옷자락만 만져도 사람들의 병이 나아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바울의 옷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12).  이런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능력을 안 사람들이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림자라도 덮이길 바랬던 것입니다( 5:15).  만약 이런 성령의 능력전이가 이상스럽게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교회의 죽은 정통에 매여 있었거나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적이 없는 목사와 신학자들의 반쪽짜리 가르침을 통해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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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진리의 성령 2018. 5. 11. 14:28

성령의 내주사역은 자동적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살기를 간구할 필요가 없고, 그분의 내주 임재를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에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처를 정하시고 내주하십니다(고전 3:16).  이와는 달리 성령의 능력은 자동적일 때가 거의 없고, 보통 기도의 응답과 안수를 통해 임하는데 그 예를 신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실 때( 20:19-23), 이것은 이미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주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물론 여기서성령을 받으라는 말씀만큼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된 구절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제자들이 성령을 두 번에 걸쳐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한번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찾아오셔서 성령을 주시고, 오순절 날에 다시 한번 성령충만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 대해 칼빈은 성령의 뿌림과 오순절의 흠뻑 적심으로 구분하고, 웨스트코트는 요한복음에서는 새 생명이 주어졌고, 사도행전에서는 사역을 위한 권능이 주어졌다고 해석합니다.  반면에 F. F 부르스는 웨스트코트와는 정반대로 해석하는데, 사실 이런 신학적 논쟁은 신앙생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튼 성령은 제자들에게 이미 내주하셨고( 16:16, 고전 12:3),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조금 지난 후 오순절 날에 성령의 강한 능력이 입혀지는데( 2:1-4), 열흘 간 걸친 기도의 준비로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24:49).  다른 하나는 사도행전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8:12-13).  그리고 며칠이 지나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믿는 자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입게 됩니다(8:14-17).  사도행전 19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나오는데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제자들을 만나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습니다(1-6).  마지막으로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나 믿었을 때 성령은 이미 내주를 하셨으나 그로부터 삼 일이 지나 아나니아란 사람이 바울에게 와서 안수할 때 성령의 능력을 받습니다( 9). 이처럼 초대교인들에게 있어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성령의 능력 입힘은 구원받은 때가 아니고, 구원받은 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특별한 기도 응답으로 임할 때가 많습니다.  어거스틴이 살던 4세기 당시에는 새 신자가 교회에 나오면 장로들이 안수하고 성령받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은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받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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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진리의 성령 2018. 2. 9. 13:31

성령의 내주사역과 달리 능력사역은 신약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오늘날과 동일하게 성령이 사람에게 임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3:9-11, 삼상 10:1-11, 11:16-17, 24-29).  특히 민수기 11장에 나오는 말씀은 사도행전에 기술된 내용과 매우 흡사합니다.  성령이 개인에게 임하여 능력으로 무장시키고 그 증거로 초자연적인 예언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능력사역은 내주사역과 전혀 다른 것으로 신구약에서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이 사역을 했으면 하는 소원을 표출했지만 구약시대에는 이 사역에 제한이 있었고 선택된 소수만 이 사역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 사역이 가능한 때가 온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요엘서에 잘 나와 있는데,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2:28-29).  오순절 날 베드로가 이 말씀이 성취됐음을 선포합니다( 2:16-18).  이제 성령의 능력이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병 고치는 것과 귀신 쫓는 것 그리고 예언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과 환상과 꿈은 주님의 자녀로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성령의 능력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으나 불행하게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같은 예수님을 믿는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똑같이 주님을 믿는데 한사람은 영혼만 구원받고 육체는 질병으로 시달리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건강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처럼 신앙생활을 하길 원하시는지요?  온 몸에 온갖 질병을 다 가지고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 우울증, 디스크, 신경통, 당뇨병, 위장병, 중풍병, 심장병, 갑상선 암, 등등 여러 가지 질병들이 우리 것이라면 주님이 채찍에 맞을 필요은 없을 것입니다( 53:5).  어떤 사람은 이사야서 535절 말씀을 오직 영혼구원으로만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약성경에 기록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8:17)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삭제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2:24).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통해 구원이란 개념이 사람이 죽어 천국에 가는 영혼구원에 머물러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소조)이란 영혼구원 뿐만 아니라 육체의 질병에서의 고침과 귀신에게서 자유함을 얻는 구원을 말합니다(9:21, 8:36, 2:8).  즉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 23:25, 7:15)와 감정( 147:3, 61:1-3)과 영( 3:22, 14:4)이 새롭게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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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진리의 성령 2017. 12. 29. 13:28

교회 성장학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 박사의 『능력으로 기도하라』란 책에 보면 중국의 한 마을 전체가 주님께로 돌아오게 된 능력 사역의 본보기가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 양 형제가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지역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 그 지역 불량배들이 집회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본 양 형제는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능력을 나타내주시길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의 능력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 양 형제가 말했습니다.  ”여기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무슨 말을 했는지 못 알아듣는 귀머거리 여인 한 사람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양 형제는 낫기를 기도했고 즉석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귀먹은 사람들을 다 나오라고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온 사람 모두가 회중이 보는 앞에서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날 밤이 지나기 전에 여섯 명의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불량배들도 이것을 보고 놀라 자기들 집으로 가서 아픈 가족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날 밤의 기적은 불량배들을 포함한 마을 전체가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선교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형적인 간증입니다.  지금은 중국의 5천만 내지 7 5백만 신자들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신약시대 사역의 형태였습니다.  로마서 1519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사 일어난 표적과 기사를 통해 전도했음을 전합니다.  바울은 그의 지성을 사용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고전 2:4-5).  바울의 사역에 능력을 주셨던 동일한 성령님이 오늘날에도 우리를 돕기 위해 옆에 와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입기 전에는 사역을 시작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24:49).  비록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지만(고전 12:3),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만 합니다(행 1:4, 8).  그러면 능력사역이란 무엇입니까?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가 초자연적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무장시키는 사역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초자연적인 자원으로 우리를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당신은 요한복음 1412절 말씀을 의심없이 믿는지요?  정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확실하게 거짓 없이 믿는다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히 4:12).  만약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박스 안에 갇힌 하나님, 즉 메마른 말씀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요한복음 1412절의 말씀처럼 우리도 그분의 능력으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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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진리의 성령 2017. 11. 3. 11:52

리처드와 그렉은 경건한 젊은 선교사로 예수님을 진실로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과 그것을 사람들의 실생활의 필요에 적용시키는 것을 배웠습니다.  둘 다 뚜렷한 선교의 소명을 받았으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의 빛이 아직 들어가지 못한 아프리카의 한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이들의 사역은 전망이 밝아 보였습니다. 성경공부 반을 세우자 원주민들은 진지하게 열심을 보였습니다.  추장과 많은 부족 어른들을 비롯하여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첫 학기 말이 다가올 때 쯤, 이들의 사역은 서서히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공부 참석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많은 원주민들이 이들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원주민의 기분을 상하게 했거나 무슨 문화적인 금기를 범했는지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두 선교사는 추장을 설득하여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추장은 입을 열어 말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화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공부를 재미나게 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가 당신을 가르치는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그 말을 들은 추장은우리는 당신들이 가르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다녀온 밤에 우리를 고문하듯 괴롭히는 귀신을 처리하는 법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추장과 대화를 끝난 후 얼마가 되지 않아 두 선교사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패배한 선교지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두 선교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훈련은 배웠지만 그 마을에서 만난 어둠의 세력들과 싸우는 영적전쟁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두 선교사가 겪은 것이 오늘날 현대교회가 겪고 있는 좌절감입니다.  교육과 열심히 사역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귀신에게 너무 시달려서 자살하고 싶다든지, 방금 암 진단을 받은 사람, 혹은 감정에 너무 큰 상처를 입어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 이런 문제에 봉착하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신약에 보면 이런 문제의 답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행 10:38).  사도들의 사역은 어두움의 세력 때문에 막히지 않았습니다.  마귀의 힘이나 역경이 다가오면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갇힌 자를 자유케 했습니다( 3:2-10, 16:16-18, 23-28).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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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진리의 성령 2017. 8. 24. 11:11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하시려면 우리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마 4:4).  바울은 고린고 교인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자신이 주었음을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 3:2).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안에서 어린 아이었을 때에는 그들이 받아 먹어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영적 음식만을 주었습니다.  영육 간에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성숙하려면 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영적성장을 위해 필요한 음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보통 책이 아닌 영적인 책이고,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딤후 3:16).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말씀 속에 있는 생명을 우리 속사람에게 풀어 놓으십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영적 자양분을 얻게 됩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물론 성경을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해서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흠뻑 적셔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씀에 복종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회개하는 심령으로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말씀을 우리에게 조명하실 때 다루어야 할 부분들을 보여주십니다.  회개할 죄들을 기억나게 해주십니다.  그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회개하면 성령의 능력이 우리 삶에 임하여 죄의 지배력은 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점차 성장하면서 예수님의 성품도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영적성숙의 공식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회개=성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사모하고 성령님께 순종할 때( 5:16), 우리는 성장하여 영적 성숙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회개하는 심령에 말씀의 씨를 심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5:22-24).  이것이 성령의 내주사역입니다.  끝으로 성령님의 내주사역과 능력사역은 완전히 다른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초자연적인 강력한 능력사역을 하면서도 영적성숙을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께 저항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초자연적으로 나타났지만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 전체가 시끄럽고 분쟁이 심했던 곳입니다.  문제는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데 큰 중점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성숙의 필요성을 반드시 강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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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

진리의 성령 2017. 6. 15. 14:26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에서 뜨는 별이며 명문가의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가브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고, 그 당시에는 누구보다도 구약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종교지도자로서 인정받고 존경받아 장래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그는 주님을 만나자마자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바울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발견했던 것을 찾았습니다.  이 발견은 다른 모든 것에서 돌이켜 예수님께로 붙는 것이며, 그분만큼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으로 그분과 교제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주저 없이 십자가 아래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잠시 모든 것을 중단하시고, 이 중요한 단계를 거쳤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취미, 관심사, 사람, 여가활동, 일, 재능 등등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던 것들을 적어 목록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내가 이것들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그곳에 계속 두었는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의지하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내가 추구하는 것들 중 또 하나의 추구 목록인지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이런 것들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예수님, 지금 이 순간 주님의 발 앞에 다음 것들을 결단하고 내놓습니다(목록표를 읽으세요). 나는 주님만을 의지하고 내 삶의 만족을 주님에게서만 찾기를 원합니다. 내가 나의 의지를 드려 결단 하고 내 몸을 주님께 산 제물로 드립니다. 내 삶을 주님의 선하고 온전하신 계획으로 인도하시도록 내 권리를 주님께 드립니다. 나를 취하시고 인도하시고 사용하시어 이 땅에서 온전히 주님의 뜻을 이루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진심어린 이 기도가 끝났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첫 걸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회개하는 마음을 유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항상 따라만 가시면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분의 역사를 여러분 속에서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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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진리의 성령 2017. 3. 30. 12:15

신앙생활에는 ‘자연인’과 ‘강퍅한 육적인 신자’ 그리고 ‘영적인 성도’가 있습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 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고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먼저 내주하시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회개하는 심령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의 말씀을 계속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성령께서 자유롭게 빚어 성숙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경건한 품성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영적 성장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회개’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은 더 이상 회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Bob Mumford는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고 마귀는 나쁜 것이다.”라고만 외친다고 합니다.  수많은 복음주의 전도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한 결 같이 같은 것들이 많습니다.  “주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만사가 형통합니다. 그분만 받아들이면 당신은 건강하고 부자도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무슨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하십니다. 교회생활 충실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 있는데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신자가 회개하는 심령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면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은혜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이 첫 번째 단계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수많은 신자들이 성령의 자원을 놓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발점은 항상 회개입니다.  세례요한이 처음 와서 무엇을 외쳤습니까?(마 3:2).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하시면 외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마 4:17).  베드로가 오순절날 한 첫 설교가 무엇입니까?(행 2:38).  사도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외친 복음의 설교가 무엇입니까?(행 17:30).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첫 번째 필요 사항은 회개라고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회개입니다.  하지만 회개에는 더 많은 뜻이 있습니다.  정의를 내린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란 우리가 옛 생활에서 추구하던 모든 것에서부터 돌이키고 예수님을 삶의 모든 근원으로 삼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 외에 우리 삶에서 근원으로 붙잡았던 그 어떤 것이든 회개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죄, 우상숭배, 물질, 전통, 자기선행, 자녀, 학력, 경력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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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진리의 성령 2017. 1. 5. 10:32

성령님께서 믿는 모든 자안에 내주하셔서 경건한 성품을 지어내신다면 왜 수많은 신자들이 이런 경건한 성품을 드러내지 못할까요?  많은 신자들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비교해 볼 때 그 행동이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성령에 의해 온전한 변화를 받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거룩하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왜 내주하시는 성령이 그런 부분을 변화시켜 주시지 않으실까요?  성령의 전(고전 6:19)인 우리가 아직도 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내주사역이 어떻게 행해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신자에게 첫 편지를 보낼 때 육적인 신자들을 누르는 문제를 언급함과 동시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어떻게 운행하기를 원하시는가에 관해 상세히 설명을 해줍니다.  고린도 교회의 근본 문제는 신자들의 삶속에 성령께서 이루시길 원하시는 것을 이루도록 성령께 자유를 주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이 이들 속에 내주하셨으나 예수님의 품성을 그들 안에 이룰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3장을 통해 세 부류의 사람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자연인’입니다(고전 2:14).  자연인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없는 사람이기에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말씀은 그저 글로만 보일 뿐 영적인 진리에 대해 이해할 수 없고, 그 삶은 어둠에 싸여 육적인 통제를 철저히 받기 때문에 이런 사람에게 육체의 일들이 현저하게 나타납니다(갈 5:19-20).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러한 상태로 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다음 두 번째 부류는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고전 2:15-16).  이러한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께 그 삶을 순종하여 삶의 모든 부분을 주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삶속에는 성령의 열매가 현저히 나타나며 이 사람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을 잘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표가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영적인 사람에게도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죄가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령께 민감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행하므로 예수님의 의가 삶속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적이고 강팍한 기독교인입니다(고전 3:1-3).  이런 사람 안에도 성장할 만큼 오랫동안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지만 성령을 거스리고 순복하지 못함으로 그 삶에 변화가 없이 거의 불신자처럼 살아갑니다.  한 마디로 성령께서 그 삶에 변화를 주지 못하도록 고집을 부리는 사람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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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진리의 성령 2016. 9. 29. 15:00

성령의 내주사역의 또 다른 한 가지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의 인격을 통해 표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죄 자체와 죄가 끼치는 영향력 때문에 매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분은 죄를 보셨을 때 하나님의 열심에 감동되어 죄를 바로 잡으셨습니다(요 2:14-12-17).  사람들이 배고파하는 것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사 그들을 먹이셨습니다(마 15:32).  아픔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고쳐주셨습니다(마 14:14).  목자 없는 양같이 헤매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막 6:34).  성령께서 우리를 예수님처럼 닮아가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일에 우리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해 주는 것들을 종종 ‘동기부여 은사’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12장3-8절에 동기부여 은사가 나옵니다.  다른 것은 다 생략하고 ‘예언’에 대해 간략하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예언 그러나 오늘날에도 예언은 반드시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배를 드릴 때 예언이 있었고(고전 14:26),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형제들에게 예언하기를 사모할 것을 말했으며(고전 14:1, 39),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자녀들이 예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욜 2:28).  그리고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설교할 때 요엘서 2장을 인용하면서 말세에는 자녀들이 예언할 것을 설교했고(행 2:14-18), 또한 성경은 예언을 멸시치 말 것을 명령합니다(살전 5:20).  여기서 하나 중요한 것은 모든 예언은 반드시 시험을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말인지 혹은 거짓된 귀신의 속삭임인지 말씀을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고전 14:29, 요한일서 4:1).  오늘날에 예언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은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외에 ‘섬김’, ‘가르침’, ‘권면’, ‘구제’, ‘다스림’, ‘긍휼’의 은사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 모든 것에 부름을 받았지만 성령께서 이 중 하나를 기본은사로 주십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성장하고 섬기는 가운데 자신이 주는 자, 섬기는 자, 인도하는 자, 가르치는 자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를 위해 하는 모든 일들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주시고, 만져 가시는 이 은사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은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사모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사 중에 잘못되거나 나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약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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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진리의 성령 2016. 7. 28. 14:30

내주하시는 성령의 두 번째 일은 예수님의 의(義)를 우리 안에 심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이 일을 행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22-23절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말하며 이것은 예수님의 인격을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노라면 예수님의 삶이 사랑, 기쁨, 화평, 인내 등으로 온전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열매의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이 열매들은 예수님의 의가 삶에 실제적으로 드러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덕적인 기준을 절대 거스리지 않는 완벽한 삶을 살려면 이 아홉 가지 열매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40).  성령이 일상생활에서 이 열매들을 나타나게 할 때 예수님의 의가 삶에 드러나게 됩니다.  G. I. Scofield는 “기독교인의 인격은 단순히 도덕적, 법적으로 바른 것이 아니라 이 아홉 가지 은혜를 소유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들이 합해지면 예수님의 모습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22절에서 이 아홉 가지 특성들을 ‘열매’라고 부른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열매는 강압적으로 힘을 쓴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일나무에 붙어만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도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 저가 내 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과실을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거한다’는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40번 정도 사용되고 요한서신에서 27번 더 사용된 단어입니다.  헬라어로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계속적인 강조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향한 끊임없는 믿음과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도 이와 동일합니다.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서 자기 훈련과 노력, 그리고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성령께 순종하고 그 안에서 성장하면 열매는 자연적으로 생산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나 읽을 때, 혹은 묵상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지적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요 14:26).  그때 성령님께 순종하면 열매는 자동적으로 맺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두 번째로 하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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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성령 2016. 5. 5. 14:24

왜 성령은 저와 여러분 안에 살기를 원하실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갈 능력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구원받는 순간에 성령의 내주하심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첫째로, 성령의 내주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도록 기도할 필요가 없으며 성령의 내주 임재를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기도나 금식으로 매달릴 필요가 없이 구원의 한 부분으로 자동적으로 받게 되는 축복입니다(고전 12:3, 6:19).  성령의 내주사역이 구원의 순간에 시작이 된다면 내주는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내 안에 거처를 삼는 것으로서 보통 느낌으로 감지하는 것과 관계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해서 우리의 모습이나 목소리, 그리고 느낌이 꼭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처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을 때 말씀 안에서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성령의 능력사역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경험하는 것은 우리 삶에 드러난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의 열매입니다.  몇 날 몇 주가 지나면 성령의 임재 결과로 삶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자신이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말씀의 조명, 성령의 열매, 동기부여의 은사, 이렇게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성령께서 새 신자 안에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은 성경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조명하십니다.  ‘조명’한다는 말은 밝은 빛을 비추어 있는 것을 잘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늘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성경을 늘 읽지만 성경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뜻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독려해 가면서 읽지만 말 그대로 글자를 읽고 있을 뿐 도저히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수양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삶의 구주로 영접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게 되자 성경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성경책을 읽을 때마다 말씀이 책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까?  성령께서 초자연적으로 말씀의 진리를 그의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령의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요 14:26, 15:26, 16:13-14).  이것이 내주하시는 성령사역의 첫 번째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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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

진리의 성령 2016. 3. 8. 15:35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소망이 없던 사람, 반항적이고 비도덕적인 삶을 산 사람,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 낙태를 경한 사람, 포르노에 빠진 사람, 도박으로 가정을 풍비박산으로 만든 사람, 점치는 사술에 빠진 사람,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 사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어느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인생을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은 성령의 내주하시는 사역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롬 8:9), 새 소망, 새 사랑, 새 평화, 새 기쁨, 새 방향을 주십니다.  이 사역은 성도들의 삶에서 다른 모든 것에 기본이 됩니다.  성령의 내주하시는 사역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 치심을 얻고 그에게 속해 내적인 확신을 얻게 됩니다(고후 1:22).  성령의 내주사역은 속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옛 습관을 버리게 되고 옛 속박을 끊어집니다.  다시 말해 새사람이 되어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고후 5:17).  한마디로 성령의 내주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사역이란 믿는 자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성품을 빚어내기 위해 성령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것이다.”  구약시대엔 성령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셨고 그분의 임재를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특정인에게 임하시고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셨지만 내주하시면서 계속적으로 사시지는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된 직후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대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겔 36:27).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위해 성령을 그 마음속에 내주하시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예수님은 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이루실 일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8-39).  39절 하반 절에 보면 성령의 내주사역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시작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변화가 가져올 열매도 설명하셨는데,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로 인도되고 예수님의 관한 일이 계시된다고 말씀하십니다(요 15:2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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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진리의 성령 2015. 12. 23. 14:55

성경에서는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임하시고(행 2:1-4), 내려오시고(행 10:44), 부어진다는(욜 2:28-29), 말씀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무장시키는 능력사역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능력사역은 성령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성령께서 그의 백성에게 임할 때, 그들은 기적을 맛보게 되고 영적은사를 받게 됩니다(민 24:2-3, 삼상 10:10, 19:20-23, 요엘 2:28, 행 19:6).  성령의 내주사역과 능력사역은 전혀 다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며 역사하는 방법도 아주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삶속에서 이 두 가지 사역을 다 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역을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우리를 성숙시키고 주 안에서 성장시키며 죄를 이겨 거룩하게 만들지만,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사역은 우리를 무장시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며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잠재적 가능성을 다 표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두 가지 사역이 필수적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령의 한부분만 바라보고 얻은 지식을 가지고 성령을 안다고 속단해 버립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성령은 “이러한 분이시고 이런 분은 아니다.”  아니면  “성령은 이런 일을 하시지만 저런 일은 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의 내주하시는 사역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를 성숙하게 세워 가시는데 있어 그 방법이 감정적이지도 않고 경험적이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복음주의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또 다른 사역이 나타나면 무조건 의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반면 은사주의 운동을 접한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사역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치유와 예언의 말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오직 성령의 능력사역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운동에 젖어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다른 신자들 속에 “과연 성령이 있을까?”하고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교회가 두 가지 반대파로 나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인도의 우화에 나오는 소경들처럼 자신들만이 체험한 것이 성령의 참모습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사역이 다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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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진리의 성령 2015. 10. 28. 14:33

『네 명의 소경과 코끼리』라는 인도의 우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네 명의 소경들이 동물원으로 코끼리를 구경하러 갔는데 한 소경이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끼리는 벽과 같이 생겼네.”  그러자 두 번째 소경이 코를 잡아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코끼리란 놈은 뱀과 같이 생겼거든.”  이번에는 또 다른 소경이 다리를 만지고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코끼리란 놈은 기둥같이 생겼어.”  그러자 마지막으로 옆에 듣고 있던 소경이 꼬리를 잡으며 말하기를 “무식한 놈들 같으니! 다들 틀렸어, 코끼리란 놈은 빗자루같이 생겼단 말이야.”  이렇게 네 명의 소경들은 서로 상대방은 틀리고 자신의 생각만이 맞다고 우겨대면서 상대방을 비판하며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네 명의 소경들은 자기가 만져본 부분만을 이해했을 뿐 전체를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사역을 기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 새롭게 하는 것, 위에서 임하시는 것, 인 치시는 것, 채우시는 것, 은사를 주시는 것, 세례를 주시는 것, 말씀하시는 것, 인도하시는 것, 내주하시는 것, 가르치는 것 등등 매우 다양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다양한 역사는 인격적인 성령의 측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는 면만 알고 있다면(요 16:9), 병을 고치시는 성령(행 10:38)과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성령(고전 12:10-11), 동시에 거룩하게도 하시고(살후 2:13), 능력도 주시며(눅 24:49), 거듭나게 하시고(요 3:3-5),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도 해주십니다(롬 8:16).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만 성령의 다양한 사역을 다 알기 전에 성령에 대해 정말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령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입니다(고전 8:2).  이런 사람이 인도의 우화에 나오는 네 명의 소경 중에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과 그 사역을 잘 알기 위해서 크게 두 범주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내주사역’과 ‘능력사역’인데, Lloyd Jones는 이것을 ‘일반사역’과 ‘특수사역’, 혹은 ‘간접사역’과 ‘직접사역’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많은 구절들에서 성령은 마음속에 거하심을 알 수 있는데, 에스겔서 36장27절과 로마서 8장9-13절, 그리고 고린도전서 6장19-20절의 말씀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성도들이 더욱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화사역의 근본주체로 역사하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초자연적인 역사들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예언의 말씀이나 기적적인 능력을 말하지 않고 성령의 조용한 사역인 순종의 중요성과 회개, 그리고 영적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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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진리의 성령 2015. 8. 5. 14:36

성경은 우리 삶의 지침서로서(딤후 3:16-17),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본보기로 성경에 등장한 인물들은 실재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관해서만 알았던 게 아니고 그분과 상호교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나타나심을 감지하였고(고전 5:4), 병 고치는 것(행 3:6)과 기적을 행하시는 손길을 알았고(행 5:12),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자신 있게 묻고 답을 얻었으며(창 25:2-23, 단 2:16-19),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방향을 정하는(행 8:26) 등 끊임없이 예수의 영(행 16:7)과 상호 교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대해 성경이 보여주는 유일한 모델은 바로 경험입니다.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결정 중 하나인 이방인을 교회로 수용하는 문제는 성령이 임한 이방인들이 방언을 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입니다(행 10:44-11:1).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에서 영적경험을 배척하는 경향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입니다.  19세기 말, D. L. Moody는 그 당시 널리 알려진 복음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역이 많은 열매를 거둔 것은 그가 체험한 극적인 성령의 강한 역사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Moody는 『The Life of D.L. Moody』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 놀라운 그날이여! 이 경험은 어떻게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거의 언급한 적도 없습니다. 너무 거룩한 체험이어서 이름을 붙일 수도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저는 하나님께 멈추어 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 다시 설교를 하러 나갔습니다. 다른 진리를 제시한 것도 아닌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회심하였습니다. 누군가가 제게 전 세계를 준다고 하여도 그 복된 경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아니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955년 위대한 침례교 설교가인 Charies Spurgeon도 금세기 말에 오순절 은혜와 예언적인 은사가 풀어놓아 질것을『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라』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교회가 잘 다듬어진 교리적 입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성경의 순전한 진리로 우리를 회복시키시도록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순종할 뿐 아니라 성령을 경험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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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

진리의 성령 2015. 5. 27. 13:19

어떤 사람들은 성령께 기도를 드리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지만, 성경에서 이것을 금지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을 경배하는 것은 마땅하고, 경배가 하나님께 가치와 존경을 돌려드리는 것일진대 성령도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하게 경배를 받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도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한 신성을 가지신 삼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인격체라면 볼 수 없는 그분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먼저 두 인격의 관계는 상호 교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상호 의사소통이 있어야 하고 서로를 경험해야 합니다.  저는 아내와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우린 서로 말하며 마음을 나누고 손도 잡고 아내가 옆에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며, 또한 서로를 사랑하고 기쁘게 할 일을 합니다.  이런 상호작용이 관계성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빌 게이츠와 관계를 맺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는 그가 어떠했는지 게이츠의 일생을 공부할 것이고, 그의 글들과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이룬 업적과 사람 됨됨이에 깊은 감동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읽고 공부를 한다고 해서 게이츠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관계는 상호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게이츠가 나를 알아보고 말을 하거나 악수를 하거나 내 등을 두드려 줄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게이츠를 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없으므로 그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알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경험하는 문제를 놓고 오늘날 교회는 커다란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1세기 말까지 이미 하실 말씀을 다 해놓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단절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의 삶은 비경험적인 것으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것을 배우고 그분이 기뻐할만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로 하나님께 말할 수 있지만 우리들 자신이 직접 하나님을 경험할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아주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빌 게이츠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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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체

진리의 성령 2015. 4. 22. 09:56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한 인격체로 보면서 그의 관심사, 원하는 것, 이해관계, 필요 등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보혜사(요 14:16)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분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고, 사람들은 성령을 ‘스타워즈’에 나오는 하나의 신비하고 비인격적인 큰 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령을 축복과 능력의 근원으로만 여겨 그 힘에 연결되어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힘이나 영향력, 그리고 능력의 공급원과는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설사 힘의 근원과 연결되어 능력을 조종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는 오직 인격체하고만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인격체이시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Don Stewart는 『95 Question People Ask About the Holy Spirit』에서 성령의 인격성을 네 가지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① 성령은 인격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 분은 생각하시는 존재로서 지성을 가지고 계시고(고전 1:10-11), 감정이 풍부하시고(롬 15:30, 히 10:29), 결정하시고 선택하는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고전 12:11). ② 성령은 사람처럼 행동하시면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시는데, 가르치시고(요 14:26), 말씀하시고(갈 4:6), 위로하시고(요 16:7), 기도하신다(롬 8:26).  ③ 성령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을 겪으시는데 거짓말을 당하시고(행 5:3), 근심하시고(엡 4:30), 불순종을 겪는다(행 7:51).  ④ 성령은 성삼위의 한 위로서 다른 두 위와 동일하신 분으로(마 29:19, 고후 13:14), 하나님 안에 영원히 존재하는 신비한 관계를 하나님과 예수님과 나누고 계신다.  이 삼위일체 속에 존재하는 관계성을 예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누구든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저버리는 것이라’(눅 10:16).  이러한 일체감이 예수님과 성령님 사이에도 존재합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골 1:15),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잘 보여주셨듯이(요 14:9),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 삶에 보내시고 자신의 임재를 온전히 드러내고 계십니다(요 15:26).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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