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05.31 이단과 정통의 차이
  2. 2014.03.08 성경에서 벗어난 이단들
  3. 2013.12.21 이단의 특징
  4. 2013.11.02 이단이란? 1

정통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단 문제에 대해 신약 성경에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라는 구절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케 할 거짓 선생들을 언급한 베드로후서 2장1절에 나타나지만, 사도 바울과 요한의 편지들 속에서는 외부로부터 박해 뿐 아니라 내부의 잘못된 교리를 물리치라는 권고가 나오는데(골 2:8-23, 요일 2:22, 4:1-3, 요일 7절), 성경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웹스터 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원리에 대항하고 분리와 이견(異見)을 조성시키고자 하는 어떠한 의견”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기독교는 항상 거기에 대응하는 반대 세력들이 같이 하고 있었는데(마 13:24-30), 기독교의 진리에 대항하는 다른 의견을 갖게 되는 외부의 적보다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적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행 20:29-30).  수세기 지나는 동안 많은 이단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자 인간이라는 것을 부인해 왔는데,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실제로는 영이시며 육체를 가진 듯이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가현설’, 그리고 모든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며 지적으로 교화된 자들만이 신앙의 유익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2세기의 ‘영지주의’를 비롯해서 현대의 ‘사신론’(死神論)에 이르기까지 정통 기독교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 대해 항상 도전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단은 엄격한 교리 차원에서의 교회의 해악을 끼치는 “비정통적인 신앙”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리교 신학자 John Miley는 『Systematic Theology』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 “예수님은 인간의 본질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 교리 안에 기독교 구원론의 모든 위대한 사실들: 대속, 믿음으로 의롭게 됨, 성령에 의한 거듭남, 새롭고 은혜가 넘치는 영적인 삶에 대한 확실하고 충분한 근거가 존재 한다”라고 말하며, 침례교 조직신학자 Millard J. Erickson은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Christian Theology』에서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죄를 대응하거나 하나님 수준까지 자신을 끌어 올릴 수는 없다. 만약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지려면 어떤 다른 방식으로 연합해야만 한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이해되었던 것으로서 신성과 인성이 한 사람 안에서 연합되었던 성육신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지 아니하여 참으로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말을 쉽게 요약하면 예수님의 신인(神人) 양성은 기독교의 중추적인 문제로서(요 1:1, 눅 2:21), 만일 그분의 신성이나 인성 중 어느 것이든지 부인한 것은(요일 4:1-6), 예수님의 참 인격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분을 구주이신 그리스도가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단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그 어느 이단/사이비와 종교들 중에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과(빌 2:5-8),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벧전 2:24),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것(엡 1:7), 그리고 그분이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음을 정복하시고 몸으로 부활하신 것과(행 4:10),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벧후 1:21), 권위 있는 말씀으로 믿는 집단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경에 벗어난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고 바른 교훈에서 벗어나(딤전 6:3-5),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며(딤후 2:16-18), 논쟁하기를 좋아하고(딛 3:9), 예수님의 신성(요 1:18)과 인성(롬 9:5)을 부인하거나(요일 4:1-6), 돈(유 11절)과 호색에 놀아난다면(벧후 2:2), 분명 그들은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들의 가르침을 좇는(딤전 4:1-3), 이단/사이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확실한 것이 아닌 것들을 가지고 서로 간에 쓸데없이 개인적인 주장과 이념들 속에서 신자들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부차적인 신학적 이슈들, 예를 들어 ‘은사들’, ‘예정’, ‘성령세례’, ‘견인’ 등에 관한 다른 의견에 대해 시간을 낭비한다면, 이것은 은혜의 참 복음과는 상반되기 때문에 유익을 끼치기보다는 무익하고 헛된 것입니다(딛 3:8-9).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지 않는 이상 확실히 드러난 이단들 외에 우리는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고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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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렘 31:33), 행복과 미래를 보장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특권과 권리만을 자랑하고 주장하며(마 3:9, 요 8:33),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언약적 의무 조항들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았습니다(렘 22:9).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언약 백성으로서 자격 기준이 있는지를 알려 주고자 건물의 견실성을 측정하는 도구인 다림줄을 아모스에게 보여주시는데 이 환상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은 말씀의 잣대인 다림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이 있으면 전부 부수어 버린다는 무서운 심판을 보여줍니다(암 7:7-9).  여기서 나오는 다림줄이 오늘날에 석공들이 담을 곧게 수직으로 쌓아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것처럼 기독교와 다른 신앙, 즉 이단/사이비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재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는데 그 많은 성경 구절 가운데 바른 기독교 핵심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을 찾으라면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것과(고전 15: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요일 4:2).

 

사실 성령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는 것이고(요 15:26), 그분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요 16:13-14), 예수님의 인격이 곧 진리와 거짓을 구분 짓는 시금석이 되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진리와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고전 12:3), 사도 요한 역시 동일한 주장을 강조하면서 특별히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던 이유는 그 당시 그것이 영지주의 이단의 대표적인 교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요일 4:1-6).  그러나 이단/사이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속하셨다는 사실, 즉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벧후 1:17), 육체를 입고 오신 인간이시고(요일 4:3), 자기 백성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요 2:22), 하늘에 올라가셨다가(행 1:11), 다시 오실 것을 철저히 부정하는데(마 26:64), 이들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즉 그분이 완전한 하나님이자(요 1:1),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눅 2:21), 부인하는 것을 보면 멸망의 길을 서슴없이 선택하는 자들이라고 알 수 있습니다(갈 1:8, 벧후 2:3. 3:16).  따라서 이단들이 기독교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성경 말씀에 있는 하나님 계시의 진실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사도 요한의 말처럼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요일 4:6).

 

예를 들어 “여호와 증인”들은 골로새서 1장15절의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는 말씀을 가지고 자신들의 책 『You Can Live Forever in Paradise on Earth』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첫 번째 피조물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적 자녀보다 먼저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유일한 자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은 『아다나시우스 신조』에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도 하나님이시고 아들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분의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라는(신 6:4), 성부와(시 90:2), 성자의(요 1:2), 동일한 본질에 대해 철저히 부정합니다.  또한 일부다처주의를 옹호하는 “몰몬교” 역시 한 선지자(조셉 스미스 2세)가 새로운 성서 『몰몬경』을 썼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은 이것 외에 『교리와 성약』, 『값비싼 진주』와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을 포함해서 이 네 권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권위가 있고 영감을 일으키는 “교회의 표준적인 경전”이라고 주장하지만(몰몬교 신조 8장),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성경 외에 그 어떤 것도 포함시킬 수가 없고(계 22:18-19), 오직 신구약 성경 66권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단적 주장을 단호히 배격합니다(요일 1:10-11).  그 외 '통일교', '뉴에이지', '유일신교', '크리스천 사이언스' 등등 수없이 많은 외국산 이단들이 오늘날 기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단들 못지않게 한국에도 수많은 이단/사이비들이 기생충같이 퍼져 나가는데 대표적인 것들만 찾아본다면 먼저 애천교회의 창시자이며 통일교 신도였던 정명석(JMS)은 통일교 원리강론을 표절하여 『30개론』이란 유사교리를 만들어 그것이 진리라고 말하지만 바른 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가 말하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가족 관계를 대입시켜 아버지가 성부, 어머니가 성신, 아들이 성자로서 성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적 수수관계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 자신도 색욕을 일삼아 여성문제가 복잡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더 황당한 집단은 '한농북구회'의 박명호로 그는 월간지 『새벽이슬』에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이천년 전 예수를 낳았다고 주장할 정도로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인데 해괴망측한 것은 '창기십자가' 라는 교리를 만들어서 자신이 색욕의 함정에 대신 들어가 창녀를 취하고 죄인이 됨으로 인류를 구원한다는 이단적 사상을 가르치며 『십계천국』4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술집 창녀를 끼고 술을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믿으라… 그러면 하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의롭다고 하실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불행한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진짜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신천지', '영생교', '구원파', '베뢰아 귀신론', '하나님의 교회'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한국산 이단들이 기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많은 이단들에게 있어 그 핵심적인 문제는 '인간을 신격화' 하는 것인데, 이들은 교주를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적인 존재로 믿으면서 교주가 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믿고 또한 그것을 통해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특히 이들은 지구 종말을 강조하면서 얼마 남지 않는 날을 준비하기 위해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처럼 광신적인 종교적 의식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단/사이비들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현실에 비추어 이런 이단들이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바른 신앙과 신학이 절실히 필요하고 위에 열거한 이단들처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확실히 부정하거나 반윤리적인 행위를 일삼는다면 분명 그들을 이단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아닌 정통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 즉 눈에 거슬리게 보이는 어떤 사역을 통해 이것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선언하기 전에 “그것이 정말로 성경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인가?”라는 것에 대해 독단적인 주장이 아닌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D.A 카슨의 말을 인용한다면 어떠한 현상을 분별하거나 본문의 뜻을 해석할 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집어넣어서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신학과 신앙만이 가장 성경적인 것처럼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는 신실한 다른 형제의 신앙을 이단시하거나 비성경적인 인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롬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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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적으로 ‘이단’이라고 말할 때 어떤 쟁점에 대해 사소한 견해차이나 역사적 상황 속에서의 어떤 특수한 입장의 차이로 인해 기독교 내에서 분파를 달리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기독교 전통을 거부하거나 왜곡시키든지 아니면 성경의 명백 자명한 가르침을 교리적으로나 행위로 부정하든지 혹은 성경의 내용을 감하거나 더하는 경우에 이단으로 규정했지 단지 무지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 자들에게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붙이지 않았고 오직 그릇된 주장에 대하여 재삼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아서지 않고 고집하는 자들만을(딛 3:10), 가리켜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관련된 이단들, 즉 예수님이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요 10:30-31), 부인하거나 예수님이 육신의 몸으로(빌 2:7-8),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많았는데(요일 4:2-3), 전자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함으로써 그분의 지위를 하락시켰고(요 17:5), 후자는 인간으로 오사(마 2:1),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롬 5:8),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골 1:21-22), 육체의 부활을 부인함으로서 그분의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롬 1:4).  또한 어떤 이단에 속한 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그대로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재림주로, 혹은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이단적인 가르침이 퍼져 나가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고 이들에 특성에 알아야만 이들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는데, 먼저 이단들의 공통된 특성 몇 가지를 살펴본다면 이들은 처음의 주장과 나중의 주장을 서로 달리하고 처음에는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가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다른 말을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한문으로 이단(異端)은 “끝이 다르다”는 뜻으로 이들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딤전 4:1-3).  또한 성령의 내주하심과 조명하심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교주의 주장이나 인간의 사상을 기준으로 해석하고 교주의 말은 성경보다 더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헤롯처럼 인간 교주를 절대적 권위를 갖는 카리스마적 존재로 신격화하기도 하고(행 12:22), 절대 성경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후메네오와 빌레도 같이 일부를 왜곡 해석하거나 다른 무엇을 성경에 첨가하여 해석하는데(딤후 2:17-18),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그리고 “삼위일체론”과 “이신득의 교리” 등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신들이 만든 교리들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더러운 행위들을 일삼으면서(벧후 2:2), 그것을 교리적으로 합리화시키고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워 신자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떠나게 만들거나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구원론, 즉 기존 교회를 떠나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에서 서머나 교회는 발람의 가르침을 통해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의 가르침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처럼(계 2:14, 20), 이단에 대해 올바로 분별하여 잘 대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딛 3:10-11, 요이 1:10-11),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신앙의 노선을 가진 사람들처럼 신앙과 신학에 있어 교조주의적이거나 배타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단을 분별하는 기준이 인간들이 만들어낸 신학이 아니라(고전 1:10-13),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들의 열매이고(마 7:15-20),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믿는바가 무엇이냐는 통해 결정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예수님의 신성(요 10:30-31)과 인성(마 2:1), 중 어느 것이든지 부인한다면 이단일 것이고(요일 4:1-6), 가령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신자들을 이익의 대상으로 삼거나(벧후 2:3), 형제간의 분쟁과 분열을 일으키고(딤전 6:3-5),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만든다면(유 4절), 그는 발람의 길을 가는(벧후 2:15), 거짓 선생으로(벧후 2:1), 분명 육에 속한 자이며 성령이 없는(유 19절), 흉악한 이리일 것입니다(행 20:29).  다시 말해 이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함부로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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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이란?

논쟁거리/이단 2013. 11. 2. 08:06

오늘날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다른 여러 교파의 사람들에 대해 '비성경적이다', '거짓교사다' 혹은 '종교다윈주의자다' 더 심하면 '이단이다' 라고 까지 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신앙과 신학이 성경과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YWAM의 창설자인 로렌 커닝햄에 대해서 말할 때에 성경이 완성된 이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이단적인 가르침이라고 말하며, 존 파이퍼와 인터뷰한 새들백 교회의 릭 웨렌에 대해서는 종교다윈주의자이며, 제임스 패커는 유진 피터슨의 성경번역본 『The Message』를 극찬했다는 이유로 에큐메니칼 사상을 지닌 자로, 존 스토트는 “영혼 멸절설”을 말했다고 해서 비성경적인 인물로, 그 외 A.W. 토저, 빌 브라이트, 등등 여기서 다 열거할 수는 없을 정도의 복음주의자들을 경계의 대상이나 요주의 인물 아니면 거짓 선생으로 단정해 버립니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핵심 인물인 칼빈이 제네바를 개혁하기 위해 세르베투스를 화형 시킨 사건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어떤 칼빈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칼빈에게 영향을 받아서인지 교회를 개혁한다는 이유 아래 돈키호테처럼 쓸데없는 논쟁의 칼을 휘둘러 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기도 받고 쓰러지면 '이단!', 예언과 방언을 하면 '사이비!', 환상을 보고 꿈을 꾸면 '신비주의자!', 육체의 질병을 고치면 용한 무당으로 보는 것이 현실이기에 자살한 목사의 입에서 '양복 입은 무당'이라는 균형 잡히지 않은 반쪽짜리 설교가 나왔는지 모릅니다.  분명 성경은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고(요일 4:1), 분별하여(고전 14:29),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했는데(살전 5:21), 무조건 칼빈주의 신앙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바리새인처럼 다른 신앙을 적대시 하는 것은 그다지 옳은 행동은 아니라고 봅니다(막 9: 38-40).  누가복음에 보면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바리새인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상대방 세리에 대해서 멸시를 하는데 이 바리새인이 착각한 것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것으로 생각했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으로 세리를 보니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눅 18:11).  그러나 결과는 자신의 신앙과 신학에 자부심을 가졌던 바리새인은 예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했고 신학과 관계없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 세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입니다(눅 18:14).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진 신앙만이 가장 성경적이고 다른 형제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잘못되었다고 논쟁의 칼을 휘둘러 댄다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그분께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롬 2:1-3).

 

사실 교회를 분열시켰던 사람들도 자신들의 거짓된 가르침과(딤후 2:17-18), 이단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성령의 증거에 열렬히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신앙과 신학을 제시할 경우 우리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영들을 시험하는 것”입니다(요일 4:1).  왜냐하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종교들과 이단/사이비들이 범람해 왔으며 늘 거짓 선생들이 하나님의 계시인 진리를 모방해 왔기 때문입니다(갈 1:6-8, 벧후 2:1).  최근에 우리 주위에서 이단적인 행태와 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 세대에도 그런 시대적인 흐름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고, 이런 문제를 놓고 H. Wayne House는 이단에 대해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역사적 기독교에 모순되는 중심 교의를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임이다”라고 정의를 내렸는데, 사실 초대교회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이단들이 없었던 때는 없었으며 이단들은 때로 교회 안에서 생겨 누룩처럼 퍼져 나가기도 하고(행 20:30), 어떤 경우에는 밖에 있는 이교적인 사상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벧후 2:1), 진리의 일부를 왜곡시키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예수님은 이러한 이단들이 말세에는 더욱 횡행하여 신자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24:5, 요일 2:18).

 

그러나 이러한 것을 빌미로 해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에서 유익한(고전 12:7), ‘예언’과 ‘방언’(고전 13:8-13), 성령의 놀라운 영광에 압도되어 쓰러지는 것을 가지고(겔 1:18, 단 10:8-9, 마 17:6, 행 9:4), 비성경적이거나 신비주의, 더 심하면 이단이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기도 받고 쓰러지는 경우 타락한 인간 조건에서 항상 찾아볼 수 있는 복합적인 심리적 현상을 수반하기 때문에 눈에 거슬리게 보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조나단 에드워즈는 부인 사라가 일주일 이상 천국의 영광(황홀경)을 체험한 것에 대해 간증을 하면서『균형 잡힌 부흥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일들이 광신주의적인 것이며 정신이 돌아서 생긴 일이라면 내 머리가 더욱 이런 정신병에 걸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것이 미친 것이라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온유하고 아름다고 영광스럽게 미치기를 기도합니다.”  에드워즈는 사라가 체험한 황홀경에 대해 비성경적이지 않고 이단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역시 에드워즈에 대해 그는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지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에 대해 히스테리에 기만당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 있게 말했는데, 그렇다면 오늘날 이러한 에드워즈를 보고 이단이거나 비성경적, 혹은 성경에서 벗어난 요주의 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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