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10.12 주님께서 하신 일을 나도
  2. 2013.08.11 묵사발 당하지 않으려면

성경은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패배시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2:15).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에 대해 영적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만약 그들이 이미 패배했다면 십자가상에서 하신 주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요?  물론 어떤 일도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에(13:12), 가감할 수는 없고 그분의 희생은 단번에 드려진 것으로( 10:10), 사탄이 패배를 당했다는( 10:18),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스스로를 씻어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즉, 하나님 나라는 이곳에 있고 우리가 그 일부분이며( 17:21),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그 나라가 완전히 성취된 것이 아니기에 피 흘리기까지 영적전쟁을 치룰 수밖에 없습니다( 12:4). 다시 말해서 복음이 세상 가운데 퍼져감에 따라 계속 악의 세력이 축소되고 또 사탄은 이미 패배한 자에 불과하지만( 4:1-11),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어찌 되었든지 그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인 것만은 사실이기에( 6:10-13), 영적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사탄과의 영적전쟁에서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역을 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고후 13:5),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합니다(벧전 2:9).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6:5), 왕 되신 그분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며( 4:16),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8:15).  또한 우리는 우리가 성취한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때문에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요일 3:1),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이고( 2:8), 우리가 능력을 받는 것 역시 그분의 은총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8:32).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시면서 우리를 성령의 수중에 맡겨 주셨고( 14:16), 제자들과 우리들을 너무 신뢰하신 나머지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부르셨으며 요한복음 1515절에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우리에게 맡겨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좇아 주님을 닮아가야만 하고(벧전 2:21), 그분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하여야 하며 그 이상의 것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4:12).

 

이 문제를 놓고 무디의 동역자이며 성서학자인 R.A 토레이는 『What the Bible Teaches』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는 타고난 신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한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써 거룩한 사역을 위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분은 능력이라는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조건 아래 있었다”  사실 성령의 은사인 ‘지식의 말씀’을(고전 12:8), 알기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생각을 아시고 사역을 행하셨던 것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설명밖에 할 수가 없었는데( 9:4, 12:25, 4:17-18), 그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일을 행하실 수 있고 그 행하신 기적들을 주님의 “신성”의 증거로 설명했지만 예수님께서 어떤 것을 모르고 계신 것처럼 보이는 경우들에( 9:16, 21, 8:45), 대하여는 적당한 설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식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가르쳐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2:8), 아무 것도 이야기를 해 준적이 없는 것들을( 1:48, 19:5, 4:18), 알고 계셨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역시 예수님처럼 성령과 능력을 받으면( 10:38),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리라고 약속하신 그 어떤 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4:13).

 

그러나 신자들 가운데 이러한 주장을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며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지니고 계셨지만 우리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위해 신적인 특권들을 제한적으로 사용하셨다고 말하며( 2:6-11), 물론 어떤 신비스러운 방식을 통해 자신의 신적인 속성을 완전히 유지하신 것만은 사실이지만 주님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자신의 사역을 본받기를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기 전까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셨고( 6:3), 세례를 받으신 후에도( 3:16), 스스로는 아무 것도 행할 수 없었으며( 5:30), 오직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따름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5:19), 다만 그분의 인성이 죄가 전혀 없으시다는 점에서( 4:15), 원래부터 우리와 다르기는 하지만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에 대해(벧전 2:21), 좌절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놀라운 특권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고( 1:12), 성령충만한 가운데 자신을 본받으라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그분께서 행하신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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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고 개혁주의 교단에 소속되어 목회를 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말씀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처럼 그 말씀에 따르는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교인들에게 말씀만을 강조해오던 터라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은사를 접목시킨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회고해 보았을 때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이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라는 갈등과 고민을 몇 년을 거쳐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목회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면서 금식기도에 들어갔는데 첫날에는 주님은 말씀을 통해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뜨거운 체험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이번에 은혜를 받지 않으면 목회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원에 들어온지 23일째 되는 날 주님은 나에게 성령의 강한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 집에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놓고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날 그 자매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이 아무런 영적싸움에 경험이 없는 나에게 이러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아직 내 적수가 되지 못해”  그날 나는 식음 땀을 흘리며 그 영적싸움에서 완전히 묵사발 당함을 경험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전쟁을 치루고 있는데 성경은 온 세상은 악한 자안에 처해 있으며(요일5:19),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로서(딤후 2:3), 적진 안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기에(딤전 6:12), 군사인 우리는 지휘관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하며 절제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지만(딤후 2:4),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우리는 항상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수 24:15, 마 7:13-14), 싸움의 결과와는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적이 승리하리라고 판단한 나머지 전투를 하지 않고 도망감으로써 지휘관 대신 예수님께 불복종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전투에 임하여 행동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데 예를 든다면 아기 예수를 죽으려했던 사탄의 시도로부터(마 2:13), 광야에서의 유혹에 이르기까지(눅 4:1-2), 그리고 결국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이끌어 갔던 사탄의 공격에 관한 기록을 통해(마 27장, 막 15장, 눅 23장, 요 19장), 복음서는 우리가 반드시 대적해야만할 적이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사도들 역시 그러한 체험과 기록을 사도행전에서 남기고 있으며(행 13:4-12, 16:16-34), 특히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전투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에베소서 6장은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는 그러한 전투가 적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단을 ‘이 세상 임금’이라고 부르셨으며(요 14:30), 사도 요한은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고 말하고 있고(요일 5:19), 에덴동산에서 이 세상에 대한 권세를 일시적으로 아담으로부터 사탄에게로 넘어가게 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눅 4:5-8),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은 결코 우리가 섬기고 있는 주님께 대하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당연히 그분의 군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제복을 입혀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엡 6:10-13), 우리는 민간인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하며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할 것처럼 군인들에게 요구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딤후 2:3-4).  그런데 만약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인처럼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주님께 대하여 충성스럽지 못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바울이 우리를 경기에 있어 운동선수에 비유한 것처럼(딤후 2:5), 우리로 하여금 적의 움직임에 대하여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과(벧전 5:8), 동시에 적이 사용하는 속임수가 어떤 것이며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The Agape Road』의 저자 Bob Mumford가 말했듯이 “우리는 이미 성경의 결론을 통해 누가 승리하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롬 8:37), 우리는 이런 영적전투에 대해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확신을 가지고 전투에 임할 수 있어야 하며(약 4:7), 만일 어떤 사람이 회심하거나 치유되거나 아니면 육체적, 정서적, 영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마귀의 지배로부터 풀려난다면 사탄의 세력들은 격퇴당하고 그의 영토가 주님의 수중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눅 13:10-17).  오늘날 사탄은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맹수와 같기에(계 12:12), 돈에 약한 가룟유다나(요 13:2, 26-30), 발람같이(벧후 2:15-16), 아니면 세상을 사랑한 데마처럼(딤후 2:10, 몬 24절), 취약한 상태로 내버려 두는 사람을 사탄은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비록 두려움 없이 자신감에 차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높은데 마음을 두거나(롬 12:16), 대단한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하며(잠 16:18), 늘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해야 하고(엡 6:18), 항상 성령충만한 준비된 상태를 갖추고 있어야만 영적전투에서 패배를 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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