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실재성

연구자료 2022. 10. 23. 13:39

예부터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내려지는 천벌이 바로 저주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성경에 언급되는 저주는 이방 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그들이 섬기는 신의 기분에 따라 내려지는 신의 진노가 아니라 분명한 언약과 규례에 따라 내려지는 것이다(신 27:15-26, 28:16-19).  이에 따라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언약을 위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졌다(창 4:11, 사 24:6, 렘 23:10, 단 9:11, 슥 5:3, 말 2: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범죄 한 백성들에게 경고하시기도 하였다(렘 24:9, 25:18, 42:18, 44:8, 49:13).  이러한 징계 조항이 있기에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남왕국의 요시야 왕은 제사장 힐기야가 낭독하는 율법을 듣고 두려워하며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비뽑기  (1) 2022.09.25
구약에 언급된 손해 배상과 벌금형  (0) 2022.08.20
유대인들의 형벌 제도  (0) 2022.07.14
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  (0) 2022.07.08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  (0) 2022.07.0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제비뽑기

연구자료 2022. 9. 25. 10:08

민수기 26장에는 ‘제비뽑기’ 기업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곳의 땅을 제비 뽑아 각 지파별로 나누어 가진 것을 의미한다(민 33:51-54, 수 14:2).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어떠한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종종 제비를 사용하여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택하곤 하였는데, 그에 대한 기록이 신구약 성경에 골고루 나타나 있다(수 18:6, 대상 26:13-15, 행 1:26).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이러한 제비뽑기를 하면서도 늘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에게 있느니라’(잠 16:33)는 의식(意識)을 잃지 아니하였다.  즉 그들은 무슨 일을 실행함에 앞서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알기 위하여 제비를 뽑았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여러 지역을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분배할 때 제비를 사용하였다(수 14:2, 18:6).  다윗이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할 사람의 직임을 결정할 때(대상 25:7-8), 그리고 성전의 각 문을 지킬 사람을 결정할 때(대상 26:13-15)에도 제비뽑기를 시행하였다.  특히 이스라엘 전체가 관계가 되거나 여러 사람이 관계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그 일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그 근원이 되는 범죄자가 누구인지를 밝혀 내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이때도 역시 제비뽑기가 시행되었다(수 7:14, 삼상 14:36-42).  이러한 일 외에도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스라엘 초대 왕을 선정하는 일에 있어서까지 제비가 사용되었다는 점이다(삼상 10:17-24).  온 이스라엘 지파가 모인 자리에서 선지자 사무엘은 그들로 하여금 제비를 뽑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되었다.

한편 신약에도 유대인들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가끔 제비를 뽑아 일을 처리하곤 하였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종 시 로마 군병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제비를 뽑아 그분의 옷을 나누어 가졌던 것이다(마 27:35).  하지만 초대 교회 시대에 사도들은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택함으로써 가룟 유다의 뒤를 이을 자를 얻기도 하였다(행 1:26).  이처럼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제비뽑기’란 일종의 요행수를 바라는 주술적 행위인 반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나타나지기를 바라는 신앙적 행위였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주의 실재성  (1) 2022.10.23
구약에 언급된 손해 배상과 벌금형  (0) 2022.08.20
유대인들의 형벌 제도  (0) 2022.07.14
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  (0) 2022.07.08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  (0) 2022.07.0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엄격한 의미에서의 벌금 제도 곧 국가나 사회에 대하여 속죄를 위한 돈을 지불하는 제도가 이스라엘에는 없었다.  어떤 범죄나 허물을 속죄하기 위해서 제사장들에게 가지고 가는 돈(왕하 12:7)은 벌금의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규례는 사형이나 기타 중형에 해당되지 않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서 자주 언급되었는데, 이것은 타인의 재산이나 권리면에서 손해를 끼쳤을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만일 훔쳐온 양을 산채로 다시 돌려주는 경우라면 그 도둑은 단지 2배의 손해 배상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만일 죽이거나 팔면 4배로 보상해야 했다(출 22:1-4).  그리고 처녀를 유혹하여 통간한 남자는 처녀의 아버지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했다(출 22:16).  또한 한 남자가 혼인 전에 아내의 부정이 있었다고 거짓으로 고소했다면, 그는 공개적으로 매를 맞는 태형에 해당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장인에게 100세겔을 벌금으로 주어야 했다(신 22:18-19).  성질이 나쁜 소가 받아서 사람을 죽인 경우에 그 소의 주인은 상황에 비추어 보아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만큼 살아 있는 남은 가족에게 돈을 지불하였다(출 21:30).  다만 주인이 사전에 소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던 경우는 예외이다.  만일 어떤 여인이 그의 남편과 싸우던 어떤 가해자로 인해서 유산하게 되었으면, 그 가해자는 남편의 청구대로 벌금을 내야 할 책임이 있으나 이 사건은 재판관의 판결에 따라야 했다(출 21:22).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주의 실재성  (1) 2022.10.23
제비뽑기  (1) 2022.09.25
유대인들의 형벌 제도  (0) 2022.07.14
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  (0) 2022.07.08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  (0) 2022.07.0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유대인들의 제반 규례와 법률 체계는 인간이 거룩한 생활로써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계도(啓導)하는 데 그 근본 목적이 있었다(출 19:5-8).  이 점은 형벌 제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본고는 유대인들이 범법자를 징계하였던 형벌 제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노력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나마 이해해 보려 한다.

 

1. 사형(死刑)

① 돌로 침 : 이 같은 형벌에 해당하는 죄로는 신성 모독죄(레 24:15-16, 행 7:57-58), 우상 숭배 죄(레 20:2-5, 신 17:2-7), 간음죄(신 22:22-23), 안식일을 범한 죄(민 15:32-36) 등이 있었다.

② 칼로 침 : 한 성읍 주민 전체가 우상을 숭배하였을 때 그들은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신 13:12-15).  예레미야는 이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 한 결과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다’(애 2:21)라고 하였다.

③ 화형(火刑) : 제사장 딸이 간음한 경우(레 21:9), 한 남자가 아내와 장모를 범한 경우, 세 사람 모두 화형 당했다(레 20:14).

④ 교수형(絞首刑) : 실제적인 사형 방법으로 사용된 경우는 없다.  다만 사람들을 경계시킬 목적으로 이미 죽은 범법자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았을 뿐이다(창 40:22, 신 21:23, 수 8:29).

 

2. 태형(笞刑)

이에 해당한 죄가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다.  재판 결과 태형이 합당한 경우 최고 40대까지의 매가 선고될 수 있었다(신 25:1-3).   

 

3. 절단(切斷)

두 사람이 싸울 때 한 사람의 아내가 상대방 남자의 음낭(陰囊)을 잡았을 경우 그녀는 손을 잘리는 형에 처해졌다(신 25:11-12).

 

4. 투옥(投獄)

투옥은 대개 재판을 기다리는 형사 피고인(被告人)을 구류에 처하는 경우에 사용되었다(렘 37:11-21).

 

5. 노예로 삼음

이것은 민사상(民事上)의 문제로서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 채주(債主)의 종살이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왕하 4:1).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비뽑기  (1) 2022.09.25
구약에 언급된 손해 배상과 벌금형  (0) 2022.08.20
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  (0) 2022.07.08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  (0) 2022.07.01
말감(Malcam)  (0) 2022.06.25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에스겔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 이는 사상적 개념 중의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예레미야서에도 나와 있으나(렘 31:29-30) 에스겔은 이것을 자신의 독특한 화술(話術)로 재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일면 당연한 것이기도 한 이러한 개념이 새삼스럽게 강조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니고 있던 ‘공동 책임’(Shared Responsibility)이라는 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즉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한 사람의 범과(犯過)에 대하여 마을 전체가 공동 책임을 느껴 왔던 것이 하나의 전통이었다(신 13:12-18, 21:1-9).  그러나 이와 같은 미덕(美德)이 결코 개인이 져야 할 고유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켜 주지는 못한다.  오직 자신의 범과 사실에 대하여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뿐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20)라고 기본 원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 뿐 아니라 그는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여호와께 범죄하므로 그분께서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겔 14:13-14)라고 까지 말하였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에 관한 개념은 예레미야가 에스겔보다 먼저 강조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가 결코 어떤 회개한 죄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 없다는 원칙을 가장 논리적으로 발전시킨 자는 바로 에스겔이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에 언급된 손해 배상과 벌금형  (0) 2022.08.20
유대인들의 형벌 제도  (0) 2022.07.14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  (0) 2022.07.01
말감(Malcam)  (0) 2022.06.25
교회를 지칭하는 여러 용어  (0) 2022.06.2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말감(Malcam)

연구자료 2022. 6. 25. 12:45

일명 밀곰(Milcom, 왕상 11:5) 또는 몰렉 (Molech, 렘 32:35)으로도 불리는 이 신은 암몸인(Ammonites)들이 섬기던 가증한 신이다.  이 신에 대한 제의(祭儀) 가운데는 어린아이를 타오르는 불속에 던지는 희생 의식이 있었는데, 예레미야 7장 31절, 19장 5절, 신명기 12장 31절, 왕하 16장 3절, 이사야 30장 33절 등에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암몸인들의 우상 숭배 행위는 일찍부터 이스라엘인들에게도 전래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에 몰렉을 위한 도벳(Tophet) 사당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자녀들을 불에 사르는 의식을 자행하였다(렘 7:31).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  (0) 2022.07.08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  (0) 2022.07.01
교회를 지칭하는 여러 용어  (0) 2022.06.21
원어로 살펴본 집사의 제 기능  (0) 2022.06.17
교회의 기능  (0) 2022.06.12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신약 성경에는 교회를 지칭하는 여러 용어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같은 용어들은 교회가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용어들을 살펴보는 것은 교회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 그리스도의 몸

이것은 교회의 통일성과 교인들 간의 상호 이존성 그리고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고전 12:27, 엡 1:22-23).

 

 2. 성령 하나님의 전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장소였다(참조, 왕상 8:10-11).  따라서 교회를 가리켜 ‘성령의 전’이라 함은 하나님의 성령이 신자 개개인과 연합체로서의 교회 가운데 내주하고 계심을 의미한다(고전 3:16).

 

 3. 새 하늘의 예루살렘

구약 시대부터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장소로 이해되어 왔다(히 12:12).

 

 4. 새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유업을 상속하지 못하고 이제는 인종에 관계없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마다 그 유업을 차지하는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 되었다(마 21ㅣ43).

 

 5. 진리의 기둥과 터

이는 교회가 진리 위에 서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지켜 보호하는 모임을 의미한다(딤전 3:15).

 

6. 하나님의 권속

성도들은 모두 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형제, 자매들이다(갈 6:10).

 

7. 그리스도의 신부

이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롭고 영원한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계 19:7).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  (0) 2022.07.01
말감(Malcam)  (0) 2022.06.25
원어로 살펴본 집사의 제 기능  (0) 2022.06.17
교회의 기능  (0) 2022.06.12
가현설(Docetism)  (0) 2022.06.09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집사’(deacon)라는 명칭은 헬라어로 <디아코노스>인데, 이의 본래 의미는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 ‘수행원’, ‘종’, ‘일군’, ‘시중군’ 등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디아코노스>는 집사 외의 다른 직임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제 이를 살펴봄으로써 간접적이나마 집사가 수행해야 할 여러 가지 기능을 이해하도록 하자.

① 청지기: <디아코노스>라는 단어가 누가복음 12장 46절, 16장 1절, 디도서  1장 7절,  베드로전서 4장 8, 10절 등에서는 ‘청지기’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집사는 하나님의 소유물인 교회의 재정을 맡아 착복하는 일이 없이 잘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하인: 요한복음 2장 5, 9절에서는 이 단어가 ‘하인’을 가리키고 있으나 집사는 언제든지 교회가 시키는 일을 기꺼이 도맡아 수행하여야 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③ 섬기는 자: 고린도전서 16장 15절에서는 이 단어가 ‘섬기는 자’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사람을 섬기러 이 세상에 오셨듯이(마 20:28), 집사는 교회를 받들며 봉사하는 자이어야 한다.

④ 일군: 로마서 16장 1절, 에베소서 3장 7절에서와 같이 이 단어는 일군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는 집사가 하나님의 신실한 일군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전력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감(Malcam)  (0) 2022.06.25
교회를 지칭하는 여러 용어  (0) 2022.06.21
교회의 기능  (0) 2022.06.12
가현설(Docetism)  (0) 2022.06.09
그리스도의 승천(昇天) 사건이 지니는 의미  (0) 2022.06.05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선지자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사실이 나온다(왕하 2:11).  그런데 엘리야의 경우와 달리 예수의 승천 사건은 그리스도 자신에게뿐 아니라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제 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예수께서 승천하신 사실은 그가 다시금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셨다는 의미가 있다.  사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고난을 당하시며 죽기까지 낮아지셨기에 그의 승천은 성육신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을 지닌다(빌 2:9).  둘째, 그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성령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제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장중(掌中)에 사로잡혀 살 수 있게 되었다(롬 8:14).  그 뿐 아니라 승천하신 예수는 지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시며(히 7:25), 장차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맞이들이기 위하여 다시금 재림하실 것(행 1:11, 요 14:3)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의 기능  (0) 2022.06.12
가현설(Docetism)  (0) 2022.06.09
계시(啓示)란 무엇인가?  (0) 2022.06.02
로마의 항소(抗訴) 제도  (0) 2022.05.29
환상 (幻像)  (0) 2022.01.14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우리는 종종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로부터 기독교와 유대교는 철저히 하나님의 계시에 입각한 종교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계시’(revelation)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자연이나 인간의 양심 또는 성경이나 그 밖의 특수한 매개체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하나님 자신 및 인간을 위하여 가지고 계신 자신의 계획을 알려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편의상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방법 또는 매개체에 의해 ‘자연계시’(natural revelation)와 ‘초자연 계시’(supernatural revelation)로 구분된다.  여기서 ‘자연 계시’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 만물이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양심(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롬 1:9-20)을 뜻한다.  그리고 ‘초자연적 계시’란 하나님께서 꿈이나 환상, 직접적인 현현(顯現) 또는 성경 등과 같은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을 뜻한다(참조, 마 1:18-24).  

둘째, 전달되는 계시 내용에 따라 ‘일반 계시’(general revelation)와 ‘특별 계시’(special revelation)로 구분될 수 있다.  여기서 ‘일반 계시’란 하나님 자신의 신성과 영원하신 능력 등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을 의미한다(롬 1:20).  그러나 ‘특별 계시’란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이와 관련된 지식을 전달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요 3:16-17).  한편 이상과 같은 구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계시’와 ‘일반 계시’란 말을 교호적(交互的)으로 쓸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서로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현설(Docetism)  (0) 2022.06.09
그리스도의 승천(昇天) 사건이 지니는 의미  (0) 2022.06.05
로마의 항소(抗訴) 제도  (0) 2022.05.29
환상 (幻像)  (0) 2022.01.14
염병 (染病)  (0) 2022.01.12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법정신이 가장 잘 실현되었다고 활 수 있는 로마법에는 시민들이 부당한 처벌을 당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제도화되어 있었다.  즉 로마법에는 항소권에 대한 법령이 발달되어 있었는데, 로마인이면 로마 시 경계 밖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일 지라도 언제나 항소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생명과 관계된 문제이거나 중요도가 높은 문제일 경우에는 로마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 재판은 황제가 직접 심리(審理) 하거나 아니면 원로원 또는 칙명 재판소가 심리하였다.  그러므로 로마인들 간에서는 ‘로마인이면 가이사에게 호소하라’는 말이 유행하여 속담으로 굳어지게 되기도 하였다.  사도행전 24장에는 바울이 총독 벨릭스의 심문을 받는 장면이 언급되어 있는데(1-23절), 바로 이 같은 것이 이에 속하는 경우이다.  한편 바울이 항소를 신청한 것은 단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행 25:10, 21).  이는 그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권리였다(행 22:28-29).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의 승천(昇天) 사건이 지니는 의미  (0) 2022.06.05
계시(啓示)란 무엇인가?  (0) 2022.06.02
환상 (幻像)  (0) 2022.01.14
염병 (染病)  (0) 2022.01.12
바울이 본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0) 2022.01.09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환상 (幻像)

연구자료 2022. 1. 14. 13:34

환상 또는 이상(異像) 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는 한 방법으로서 정상적인 시각이 아닌 다른 방편에 의해 인간으로 하여금 어떠한 광경을 목격케 하는 것을 가리킨다(겔 1:1-25).  이러한 환상은 주로 선지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겔 8:4, 11:24, 사 1:1, 단 8:1, 9:23), 아브라함(창 15:10)이나 야곱(창 28:10-16), 그리고 신약의 사도들(행 10:9-16, 고후 12:1-4, 계 1:9-20)에게도 주어졌었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에는 이와 같은 환상(vision)을 가리키는 다양한 용어들이 나온다.  우선 구약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로서 대표적인 것을 들 것 같으면 <하존>과 <로에>, <마르에>가 있다.  <하존>은 ‘꿈’, ‘이상’, ‘환상’, ‘계시’, ‘신탁’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로서 에스겔 7장 26절과 사무엘상 3장 1절, 그리고 역대상 17장 15절 등에 나온다.  그리고 <로에>는 이사야 28장 7절에 나오는데 선지자가 보는 이상을 의미한다.  <마르에>는 ‘광경’, ‘출현’, ‘모양’, ‘이상’이란 의미로서 에스겔 8장 4절, 11장 24절, 다니엘 8장 16절, 9장 23절 등에 나와 있다.  또한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헬라어에도 ‘초자연적인 광경’을 의미하는 <호라시스>와 같은 단어가 있다.  이 가운데 <호라마>는 주로 사도행전에 많이 나오며(행 9:10, 11:5, 16:9, 26:19), <옵타시아>는 누가복음 1장 22절, 24장 23절, 고린도후서 12장 1절 등에 나온다.  반면 <호라시스>는 사도행전 2장 17절과 계시록 9장 17절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상(以上)과 같은 같은 다양한 용어로 표현된 환상의 주된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을 구속(救贖)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데 있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시(啓示)란 무엇인가?  (0) 2022.06.02
로마의 항소(抗訴) 제도  (0) 2022.05.29
염병 (染病)  (0) 2022.01.12
바울이 본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0) 2022.01.09
사도행전에 나오는 각종 신 (神)  (0) 2022.01.07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염병 (染病)

연구자료 2022. 1. 12. 13:17

성경에는 염병(pestilence)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염병은 크게 자연 발생적인 것과 하나님의 형벌에 의한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레 26:25, 렘 14: 12, 21:6, 대하 7:13, 겔 28:23).  하지만 성경에는 염병의 증상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단어가 쓰이고 있는 전후 문맥을 살펴보아야 알 수 있는데, 흑사병(pest), 티푸스(typhus), 콜레라(cholera), 천연두(smallpox) 등이 성경에서 말하는 염병에 속한다.  이 같은 염병은 구약 시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던 병 중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므로 이 병에 걸리면 대개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출애굽 후 광야에서 배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 이러한 염병의 형벌을 네 차례나 받았었다(민 11:33, 14:37, 16:46, 25:9).  그뿐 아니라 에례미야와 에스겔도 백성들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써 임할 염병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렘 14:12, 21:7, 24:10, 겔 7:15, 12:6).  하지만 경건한 시편 기자는 이 같은 병으로부터 지켜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고 있기도 하다(시 91:3-6).  한편 신약 성경에서는 이 염병이 그리스도에 의한 종말론적 고난의 한 전조로 묘사되어 있다(눅 21:11).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의 항소(抗訴) 제도  (0) 2022.05.29
환상 (幻像)  (0) 2022.01.14
바울이 본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0) 2022.01.09
사도행전에 나오는 각종 신 (神)  (0) 2022.01.07
서원(誓願)의 종류  (0) 2022.01.06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바울은 자신의 서신들을 통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구체화되었다고 주장하였다(갈 4:4-5).  이런 의미에서 본고(本稿)는 단편적이나마 바울 서신서들을 중심 하여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알아보고자 한다.

 

1. 그리스도의 인격

바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단순한 예언자요, 독특한 선생에 불과했던 예수를 신인(神人)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았다고 비난받고 있다.  사실 그가 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한 훌륭한 신학자임에는 부인할 수 없으나 위와 같은 비난은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그가 사용한 예수께 대한 호칭(이 호칭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열쇠)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예수의 신인적인 속성을 그가 임의로 조작했다고 하는 견해는 인정될 수 없다.  즉 유대교에서 개종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인자’, ‘모세와 같은 선지자’, ‘주의 종’, ‘대제사장’,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천사’, ‘의인’, 목자’ 및 ‘하나님의 어린 양’ 등 다양하게 묘사했다.  심지어 바울 서신은 ‘하나님의 아들’과 ‘아들’이라는 칭호조차도 마태복음, 요한복음, 히브리서보다 그 빈도수가 헐씬 적다.  바울 서신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용어가 단 세 번(롬 1:4, 고후 1:19, 갈 2:20), ‘아들’이란 단어가 12번(롬 1:3, 9, 5:10, 8:3, 29, 32, 고전 1:9, 15:28, 갈 1:16, 4:4, 6, 살전 1:10) 언급되어 있다. 

바울 서신에서 예수께 주로 사용하고 있는 칭호는 ‘주’(Lord)이다.  이 말은 A. D. 1세기 때 단순한 존경의 대상(Sir)에서 하나님(God)을 지칭하는 것에까지 폭넓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를 향하여 그분이 곧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며 하나님이시라고 지칭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롬 10:9, 빌 2:11).  바울이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예수의 인성을 신인(神人)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았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한편 골로새서 1장 13-20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수의 상(image)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사실이다.  특별히 바울은 예수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보존자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고 밝혔다.  이처럼 바울이 이해한 예수는 분명 하나님(롬 9:5, 살후 1:12, 딛 2:13)과 구주(엡 2:23, 빌 3:20, 딤후 1:10)가 되신 하늘 인간이셨다(빌 2:5-11).

 

2. 그리스도의 사역

바울은 율법과의 관계상에 비추어 예수의 사역을 많이 취급하였다.  즉 그분은 율법 아래 나심으로써 율법의 저주와 짐을 대신 담당하셨으며, 이를 통해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고후 5:21, 갈 3:13, 골 1:22, 2:14).  그런데 바울은 예수께서 율법의 저주를 벗겨 주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무흠 하게 세우는 구원만 이루신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 가운데 명시된 조항을 그대로 수행하여 누구든지 자기 안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담대히 의롭게 설 수 있게 하셨다(롬 3:19-31, 8:1-4, 갈 2:16, 3:22, 엡 3:12, 빌 3:9).  이처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 희생과 순종으로 인해 죄 아래 있는 인간에게 구원과 의(義)와 자유를 허락하셨다고 주장했으며, 그러한 사상의 집약적 표현으로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고 고백했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상 (幻像)  (0) 2022.01.14
염병 (染病)  (0) 2022.01.12
사도행전에 나오는 각종 신 (神)  (0) 2022.01.07
서원(誓願)의 종류  (0) 2022.01.06
이스라엘의 회심(回心)  (0) 2021.12.26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본서에서는 구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신(神)인 몰록, 즉 몰렉(레 18:21, 왕하 23:20) 외에도 쏘스와 허메, 아데미, 레판과 같은 이방신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고(本稿)는 이들이 어떠한 신(god)인지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려 한다.  

 

1. 쏘스 (Zeus)

‘쏘스’는 우리가 흔히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의 최고의 신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은 이 신을 ‘주피터’(Jupiter)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 신은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주관하는 신인 동시에 날씨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러므로 호머(Homer)는 그의 서사시에서 제우스를 ‘정의의 수호자’이자 인간과 각양 신들의 아버지로 묘사하였다.  한편 본서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이적을 행하는 것을 본 루스드라인들이 바나바를 가리켜 ‘쏘스’라고 칭한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행 14:12).   

 

2. 허메 (Hermes)

‘허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로서 로마인들의 ‘머큐리’(Mercury)와 동일한 신이다.  그리스 신황에 의하면 이 신은 ‘제우스’의 아들로서 웅변이 능한 신이며 여행자들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라 한다.  따라서 루스드라인들이 바울을 가리켜 ‘허메’라고 했던 것은 바울이 훌륭한 설교가였기 때문인 듯하다(행 14:8:12). 

 

3. 아데미 (Artemis)

보통 ‘아르테미스’로 불리는 이 여신은 ‘제우스’의 딸이다.  이 여신은 처녀의 수호신이자 출산과 풍요를 주관하는 신으로서 특히 에베소인들에 의해 열렬히 숭배되었다(행 19:34).  한편 오늘날까지도 에베소에 남아 있는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신전 중의 하나로 꼽힌다.

 

4. 레판 (Rephan)

분명치 않으나 고대 애굽인들이 섬기던 ‘목성신’(木星神) ‘레파’(Repa)이거나 근동인들이 섬기던 ‘토성신’(土星神) ‘렘판’(Remphan)인 것 같다.  그런데 본서에 나오는 바울의 언급(행 7:42-43)에 의하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들도 이 신을 숭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염병 (染病)  (0) 2022.01.12
바울이 본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0) 2022.01.09
서원(誓願)의 종류  (0) 2022.01.06
이스라엘의 회심(回心)  (0) 2021.12.26
노예에 대한 성경적 입장  (0) 2021.12.19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사람이 하나님께 입으로 말하며 ‘맹세’나 ‘약속’이 되는 서원은 성경에서 그 내용이 약간씩 다르게 표현되어 있으므로 그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① 쌍무적(雙務的)인 서원 : 이는 야곱이 자기의 형 에서를 속이고 하란으로 도망갈 때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하며, 그 대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전을 세우며 십일조를 받치겠다고 한 서원과 같은 것이다(창 28:20-22).  또한 이 같은 서원은 입다(삿 11:30-31), 한나(삼상 1:11), 압살롬(삼하 15:7-12)에게서도 볼 수 있다.  ② 일방적인 헌신(獻身) : 이것은 서원자가 무조건 하나님께 자신의 정성과 사랑을 바치는 것이다(참조, 시 132:2-5).  ③ 각성(覺醒)과 절제를 위한 서원 : 이에는 아랏(Arad) 백성을 멸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서원(민 21:1-3), 자신의 군사들을 각성케 하려는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삼상 14:24) 등과 같은 실례(實例)가 있다.  ④ 일반적인 예배와 의무 : 사무엘상 1장 21절에 나타난 내용을 지닌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제사나 예배를 의미하는 것이다(참조, 잠 31:2, 나 1:15).  ⑤소망과 감사 : 시편에 나타난 서원에는 주로 이러한 의미를 지닌 것이 많다(참조, 시 56:12-13, 66:13-15).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로마서 11장 25-26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시기에 앞서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어 온 것(사 1:26-27, 겔 20:40, 쓱 10:6, 12:10, 13:1)으로서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온 이스라엘’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에 관해 계속적으로 문제시되어 왔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신학자들 간에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본고(本稿)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려고 한다. 

 

1. 온 이스라엘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신학자들간에 의견이 크게 이분되고 있는데, 하나는 온 이스라엘을 ‘모든 영적 이스라엘 자손’으로 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여자적(如字的)으로 ‘육적 이스라엘 자손’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의 견해를 취하는 대표적인 신학자는 Calvin으로서 그는 본장에서 말하고 있는 온 이스라엘을 이방인과 유대인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영적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같은 Calvin의 견해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25절)는 말과 상충되는 것으로서 수긍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25-26절의 문맥 관계상 후자의 견해를 취할 수밖에 없는데, 후자의 견해를 취하는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Matthew Henry와 한국의 박형룡 박사 등이 있다.   

 

2. 온 이스라엘의 범위

이상과 같이 ‘온 이스라엘’이 ‘육적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도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남는다.  즉 ‘육적 이스라엘 자손’이란 ‘예수 그리스도 재림 전에 생존해 있는 모든 이스라엘인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이스라엘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선택해 놓으신 참 이스라엘인들만을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그 누구도 명쾌하게 대답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성경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遺棄) 사상(롬 9장, 엡 1장) 및 아브라함 자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치 않는 자는 버림을 당하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마 8:11-12, 눅 13:6-9)에 의거해 볼 때, 우리는 본장에서 말하고 있는 ‘온 이스라엘’ 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모든 육적 이스라엘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단정 지을 수 있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에 나오는 각종 신 (神)  (0) 2022.01.07
서원(誓願)의 종류  (0) 2022.01.06
노예에 대한 성경적 입장  (0) 2021.12.19
보혜사(保惠師)의 사역  (0) 2021.12.12
음식물에 관한 기독교의 견해  (0) 2021.12.05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고대 세계에 있어서 노예의 역할은 결코 무시될 수 없었다.  그 당시의 노예는 주로 전쟁 포로들이었으며 매매가 가능했다. 그런데 17세기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연초 재배에 있어서의 경영난을 계기로, 그리고 영국에서는 18세기에 이르러 복음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노예 해방론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1861년 미국에서는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 전쟁이 일어나 1865년 결국 노예 해방은 실현되었다.  그래서 본고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아울러 성경에서는 노예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 구약 시대의 노예

구약 성경에 따르면 노예는 전쟁 포로, 매매(참조, 례 25:44-46), 채무(출 21:2-4, 신 15:12), 증여(창 29:24), 상속(참조, 레 25:46) 그리고 출생에 의하여 공급되었다.  이러한 것은 당시의 근동 지방에서 통용되었던 노예 제도를 살펴볼 때에 더욱 분명히 이해될 수 있다.  바벨론, 앗수르, 수리아와 이스라엘 이전의 불레셋의 이용 가능한 자료를 검토해 보면 노예들의 노동력이 농업과 공업 분야 및 국가의 대사역 등에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소지주의 농민들은 노예의 값이 비쌌기 때문에 노예 노동을 이용하지 않고 대가족 형태의 노동력으로만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스라엘도 다른 나라처럼 많은 노예는 아니지만 이러한 사회적 배경하에서 노예를 노동력으로 이용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히브리 사회에서의 노예는 대부분의 근동 국가에서와 같이 말이나 소처럼 취급되지는 않았고, 다만 주인 밑에서 천한 일을 담당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히브리인들이 노예를 어떻게 처우했는가를 살펴볼 때에 더욱 분명해진다.

 

2. 구약 시대에 있어서 노예의 처우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가 되는 경우로는 채무자 자신이나 그 자녀를 빚의 담보물로 잡혀 그 빚을 갚지 못해을 때가 가장 많았다(참조, 출 21:5-6, 신 15:16이하).  일반적으로 어떤 채무자가 그의 딸을 채권자에게 팔면 그녀는 성숙해질 때 주인 또는 그 아들의 처나 첩이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 집의 어떤 남자도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그녀는 속량금을 내지 않고도  해방될 수 있었다(출 21:11).  뿐만 아니라 채무 관계로 노예가 된 이스라엘 사람은 안식년, 즉 제7년 만에 해방될 수 있도록 율법에 명시되어 있다.  또한 주인에 의해서 불구자가 된 노예는 해방될 수 있었다(출 21:26-27).  그리고 노예가 주인에게 맞아 죽으면 그 주인은 형벌을 받아야 했다(출 11:20).  종교 생활면에 있어서도 노예들은 안식에 휴식할 권리가 부여되었으며, 만일 그가 할례를 받았다면 언제나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출 12:43-45).  뿐만 아니라 제사장  집의 노예는 거룩한 제물도 먹을 수 있었다(레 22:11).  이와 같이 구약의 율법은 노예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 신약 시대의 노예

이 당시의 노예 제도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A. D. 1세기경 로마인들이 노예를 취급했던 방식과 노예를 대단위로 해방시켰던 정책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로마 제국에는  자유 시민이 감소하여 군역(軍役)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노예들은 주인의 이름과 후원 아래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함으로써 노예의 굴레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로마로 끌려온 유대인 노예들도 로마에 와서 곧 해방되었는데, 그 근거로 우리는 카타콤의 묘비에서 노예에 관하여 언급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로마의 해방 노예들이 사업에 성공한 예가 많으며 심지어는 지방 행정관으로도 봉직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는 범죄 한 노예도 자유민과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A. D. 20년 로마 원로원의 포고령이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때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당시의 노예 제도에 대하여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바울과 베드로는 노예 제도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개종한 노예들에게 주인을 섬기라고 권고하고 있다(참조, 몬 1장).  이와 같이 어느 서신에서도 기독교인이 노예를 해방시켜야 한다거나 그 노예를 포기한다는 가르침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주인들에게 노예를 친절과 배려로 다루어야 한다고 권면했다(엡 6:9, 골 4:1).  이 말은 노예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격체임을 나타내 준다.  다시 말해 개종한 노예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란 의미이다(골 3:11).   

 

4. 결론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신구약 성경에는 노예 해방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언급한 귀절이 없다고 하더라도 유대인들이 노예를 율법으로 보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나 자매로 받아들이며 함께 교제했다는 사실은 근대 사회에 이르러 노예 해방 운동의 한 실천적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원(誓願)의 종류  (0) 2022.01.06
이스라엘의 회심(回心)  (0) 2021.12.26
보혜사(保惠師)의 사역  (0) 2021.12.12
음식물에 관한 기독교의 견해  (0) 2021.12.05
여호와 증인  (0) 2021.09.12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요한복음 14장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승천하신 후 보혜사를 보내 주겠다고 하신 약속이 언급되어 있다(16절).  ‘보혜사’(paraclete)에 해당되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대언자’, ‘변호인’, ‘옹호자’, ‘중재자’, ‘조력자’ 등과 같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는 성령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것 외(16, 26절, 15:26, 16:7)에 단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을 뿐이다(요일 2:1).  그러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우리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계속해서 인간을 위한 구속 사역을 수행케 하시기 위함이다.  이 일을 위하여 세상에 오신 보혜사께서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택정(擇定)해 놓으신 자(롬 8:30, 엡 1:4)의 마음속에 내주(內住) 하신다(요 14:17).  그리고서 그들에게 예수에 대하여(요 15:26),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가르침에 대하여(요 14:26), 기독교의 모든 진리에 대하여(요 16:13), 가르쳐 주시고 믿게 해 주신다.  그 결과 그들은 죄 가운데 살아온 지난날을 뉘우치며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게 된다(참조, 행 2:37-38).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이미 구원의 반열에 든 자’라고 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요 3:16).  그렇지만 인간을 위한 보혜사의 구원 사역이 이로써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분께서는 계속해서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신다(참조, 갈 5:16-23).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끝까지 인내함으로써 성도들이 온전히 구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참조, 히 6:11-12).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의 회심(回心)  (0) 2021.12.26
노예에 대한 성경적 입장  (0) 2021.12.19
음식물에 관한 기독교의 견해  (0) 2021.12.05
여호와 증인  (0) 2021.09.12
성경의 영감 (靈感)  (0) 2021.09.05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구약 성경에는 음식물과 관련된 각종 규제 사항이 언급되어 있다.  고기를 그 피와 함께 먹는 것은 모세의 율법(레 19:26, 신 12:15, 23-25, 15:23)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창 9:4)에 의해서 금지되었으며,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도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금지 사항으로 결정되었다(행 15:20, 29).  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이스라엘 족장 시대부터 나타났던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관한 규례(창 7:2, 8)는 모세 시대에 와서 아주 세세 하게 율법으로 규정되었다(레 11장, 신 14:3-20).  그러기에 이스라엘인들은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으로 인하여 양식이 필절할 때(겔 4:9-17, 호 9:3) 외에는 이 같은 규례를 철저히 준수하였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규례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규례를 지켜 부정한 짐승 및 짐승의 피를 먹어서는 안 되는가?  이제 이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구약 율법을 완전케 하려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마 5:17)께서는 친히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선언함으로써 음식물에 관한 율법적 금지 규례들을 파하셨다(막 7:19).  왜냐하면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히 9:10)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들은 더 이상 음식물을  취하는 것에 대하여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사도 베드로가 보았던 부정한 짐승의 환상(행 10:9-16)에 의해서도 간접적으로 시사되고 있는 바이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나와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서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는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3:9). 

그런데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째, 예루살렘 공의회에서조차 피를 멀리하라고 금한 근본 의미는 생명의 근원이 피에 있는 만큼 짐승이든 사람이든 간에 그 생명을 귀히 여기라는 데 있다(레 17:11).  둘째, 음식물을 먹되 부정하다고 여기면서 먹거나 자신이 음식물을 먹는 것으로 인하여 믿음이 연약한 형제가 시험에 들게 되는 일은 배제하여야 할 것이다(롬 14:13-23).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예에 대한 성경적 입장  (0) 2021.12.19
보혜사(保惠師)의 사역  (0) 2021.12.12
여호와 증인  (0) 2021.09.12
성경의 영감 (靈感)  (0) 2021.09.05
기독교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0) 2021.08.29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여호와 증인

연구자료 2021. 9. 12. 15:59

‘여호와 증인’(Jehovah’s Witnesses)의 창시자는 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이다.  그렇지만 ‘여호와 증인’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자는 그의 후계자인 Joseph Franklin Rutherford, 1869-1942)이다. 

Russell은 지옥에 관한 기성 교회들의 교리에 이의를 제기한 후 예수께서 1874년에 재림하신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874년이 지나도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이를 정정 1914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Rutherford도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하였으나 예수의 재림은 1914년에도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은 예수께서 1914년에 재림하셨는데 사람들의 눈엔 보이지 않을 따름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Rutherford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나오는 ‘십 사만 사천’을 여호와의 증인들로 해석, 자신들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940년 이후 자신들의 신도 수가 십 사만 사천을 넘어서자 Rutherford는 십 사만 사천 외에도 구원에 참여할 수 있는 또 다른 수효의 여호와 증인들이 있다고 번복 주장하였다.  한편 이상과 같은 주장 외에도 여호와 증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최초의 피조물이라는 견해를 믿는다.  그 같은 견해에 의하면 예수는 인간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능력에 의해 죽음으로부터 부활, 신적 존재가 된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사실을 살펴볼 때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이 분명한 이단 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의 재림 시기는 예수님조차도 모르는 일이며(마 24:36) 구원은 예수께서 근본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기 때문이다(참조, 요 14:9).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혜사(保惠師)의 사역  (0) 2021.12.12
음식물에 관한 기독교의 견해  (0) 2021.12.05
성경의 영감 (靈感)  (0) 2021.09.05
기독교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0) 2021.08.29
교회의 특성  (0) 2021.08.22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 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영감설(Biblical inspiration)을 뒷받침해 주는 가장 직접적인 구절이다.  그러면 성경이 영감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서 개개의 성경 기자(記者) 들의 마음을 조명(照明)하여 그들이 전혀 죄로 오염된 인간의 성품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적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특별히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이라 한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들을 완전히 주장하셨다고 해서 성경 기자 개개인의 성격과 문체, 용어, 재능 등을 배제하신 채 그들을 기계적으로 사용하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각 권마다에는 성경 기자의 특요한 문체와 용어 등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자들이 사용한 단어 하나에까지 조명하여 자신이 계시하신 말씀이 정확 무오 하게 기록되도록 하셨다.  이를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는 ‘축자적 영감’(verbal inspir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조명과 간섭이 신구약 성경 66권에 모두 미치고 있음을 믿는데, 이를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완전 영감’(plenary inspiration)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이처럼 성경은 유기적, 축자적, 완전 영감된 것이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식물에 관한 기독교의 견해  (0) 2021.12.05
여호와 증인  (0) 2021.09.12
기독교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0) 2021.08.29
교회의 특성  (0) 2021.08.22
적그리스도 (Antichrist)  (0) 2021.08.14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기독교에 있어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사건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인해 팔레스틴 땅에 떨어졌던 복음의 불씨가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로마,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찌기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승천한 후 그들에게 보혜사(保惠師)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5:26).  또한 그는 승천하시기에 앞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다.  이 같은 말씀을 좇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던 제자들에게 마침내 성령이 임하셨다(행 2:1-4).  이후 제자들은 핍박과 옥에 갇히는 것을 불사하고 각처에 돌아다니며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다(행 4:18-21).  이런 점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지자 요엘의 예언(욜 2:28-32)이 성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빌립(행 8:29-30), 베드로(행 10:19-1112), 바울(행 13:2, 16:6) 등과 같은 뭇사람들을 인도하여 복음을 들고 세계 각처로 흩어지게 하셨다.  그 같은 역사의 한 결과로서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 증인  (0) 2021.09.12
성경의 영감 (靈感)  (0) 2021.09.05
교회의 특성  (0) 2021.08.22
적그리스도 (Antichrist)  (0) 2021.08.14
에피쿠레온파 (Epicureans)  (0) 2021.08.08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교회의 특성

연구자료 2021. 8. 22. 17:26

교회란 하나님에 의해서 결성된 성도의 연합체이다.  즉 교회는 사람들의 뜻과 노력에 의해 조직된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명하여 불러내심으로 이루어진 연합체이다.  이는 ‘교회’를 가리키는 헬라어 <에클레시아>가 ‘불러내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사신 자신의 몸이다(엡 1:23).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람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구원하시려는 데 있었다(요 6:39).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게 되는데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의 연합체가 곧 교회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회는 사회의 여타 공동체와는 다른 아래와 같은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1. 교회의 일체성 (Unity)

교회가 하나인 까닭은 그 주(主)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분이시며 또한 그와 연합된 성도들이 상호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고전 12:12-27, 엡 4:4-16).  뿐만 아니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분 하나님께 대한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의 연합체라는 점에서 하나이다.  이 같은 일체성은 인종과 남녀, 빈부와 신분의 차이뿐 아니라 시대와 지역 간의 거리를 초월한다(갈 3:28).  그리고 이 같은 교회의 일체성을 계속적으로 유지시켜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엡 4:3).

 

2. 교회의 거룩성 (Holiness)

인간은 모두가 다 죄인이다.  그 같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선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셨다.  그 결과 그분의 대속 사역을 믿고 그이 공로를 덧입은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게 되었다(롬 3:21-28).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성도들의 연합체인 교회는 거룩하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내주(內住)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날마다 성화되어 가는 자이다(갈 5:22-23).  더우기 성도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레 11:44)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거룩하게 되어야 할 자들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교회의 거룩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3. 교회의 보편성 (Catholicity)

이는 교회가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연합체임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마 28: 19-20).

 

4. 교회의 사도성 (Apostolicity)

이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친히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셨을 뿐 아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일구어 놓은 복음 사역의 터전 위에 교회가 굳게 세워진 것을 의미한다(엡 2:20).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능히 교회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마 16:18).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의 영감 (靈感)  (0) 2021.09.05
기독교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0) 2021.08.29
적그리스도 (Antichrist)  (0) 2021.08.14
에피쿠레온파 (Epicureans)  (0) 2021.08.08
인간의 구성 요소  (0) 2021.08.0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1. 정의(定義)

‘적그리스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그를 대적하는 자’(살후 2:3-4) 또는 ‘자칭 그리스도로서 거짓된 그리스도의 행세를 하는 자’(마 24:23-24)를 의미한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성육신의 실제성을 부인하는 자들로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요일 2:18, 22, 4:3, 요이 1:7).  이들은 할 수 있는 한 성도들을 미혹하며(마 13:21-23) 핍박하지만(눅 2:16-17)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말미암아 끝내 정복당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계 20:10).  한편 이 같은 적그리스도는 비단 신약 시대뿐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활약했는데, 그 당시 적그리스도란 하나님의 선민(選民)을 대적하며 핍박하는 세력으로 이해되었다(겔 38-39장, 단 7:7-27, 11:36-45). 

 

2. 성경에 나오는 적그리스도

성경에 최초로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원형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게 했던 뱀이다(창 3:1-1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뱀에 대하여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 3:15)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뱀의 후손’은 사탄의 세력(계 12:9)을,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데,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승리의 부활로 성취되었다(마 27:26-28, 롬 1:4).  이외에도 구약 성경에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곧 ‘아침의 아들 계명성’(사 14:12), ‘리워야단’, ‘용’(사 27:1), ‘곡’(겔 38:1-39:16), ‘작은 뿔’(단 7:8) 등이다. 

다음으로 신약 성경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에 관하여 살펴보자.  예수께선 말세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 24:24, 막 13:21-22).  이들이 특성은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할 수만 있으면 성도들이라도 미혹하려 하는 데 있다.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를 ‘벨리알’(고후 6:15), ‘불법의 사람’ 혹은 ‘멸망의 아들’(살후 2:3) 등으로 칭하고 있다.   데살로니가후서에 의하면 예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성도들 가운데서 배도자들이 많이 생겨나며 그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하나님 행세를 하게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살후 2:1-4).  그러나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들은 죽임을 당하고 영원히 폐하여질 것이다(살후 2:8).  이외에도 적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은 계시록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계시록 13장은 적그리스도의 전형적인 화신(化身)인 두 짐승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시록 20장에는 사탄이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성도들을 대적케 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의해 멸절당하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는 에스겔 38-39장에 나오는 마곡 땅의 곡에 관한 기사와 유사하다. 

 

3. 결론

이상과 같은 성경상의 언급을 종합해 볼 때 적그리스도란 말세에 나타날 실존적인 인격체로서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며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성도들을 미혹하며 박해하는 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러한 적그리스도가 이미 세상에 와 있다고 말하였다(요일 4:3).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정신을 차려 믿음을 굳게 하며 악의 세력을 적극 대항해야 할 것이다(벧전 5:8-9).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0) 2021.08.29
교회의 특성  (0) 2021.08.22
에피쿠레온파 (Epicureans)  (0) 2021.08.08
인간의 구성 요소  (0) 2021.08.01
성경에 사용된 아람어 (Aramaic)  (1) 2021.07.25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바울 당시 헬라인들 가운데서 가장 고상한 지식(철학)으로 환영받았던 것 중의 하나는 에피쿠레온 철학이었다(행 17:18).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었을 뿐 그 외의 것은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빌 3:8).  물론 이 같은 점은 에피쿠레온파의 학설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이제 에피쿠레온파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에피쿠레온파는 B. C. 300년경 에피쿠로스 (Epicurus, B. C. 341-270)가 아테네에 세운 학파이다.  그의 주된 가르침은 인생에 있어서의 즐거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즐거움이 육체적 쾌락과 방종, 그리고 비천한 자기 탐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심적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행복은 곧 외적으로 어떠한 고통이나 빈곤, 불행, 공포가 닥쳐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평정할 수 있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이 에피쿠로스의 사상이다.  그런데 에피쿠레온파에 있어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신이 행악하는 자들에게 벌을 주신다’고 믿는 신앙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세상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배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신이 존재하기는 하되 인간 세상과는 아무런 연관을 맺지 않은 채 오직 천상 세계에서 신들끼리 유유자적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죽음에 관해서조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이 죽을 때엔 영혼마저도 육체와 함께 원자(原子)로 분해되어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에피쿠레온파의 가르침은 얼마나 허구적인가?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인간은 이 세상 종말에 선악 간 하나님 심판을 맡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간 최고의 행복임을 확신한다(전 8:12-13).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의 특성  (0) 2021.08.22
적그리스도 (Antichrist)  (0) 2021.08.14
인간의 구성 요소  (0) 2021.08.01
성경에 사용된 아람어 (Aramaic)  (1) 2021.07.25
영지주의 (Gnosticism)  (0) 2021.07.18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우리는 고린도전서 5장 5절에서 간접적이나마 인간이 육신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이 몸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를 신학적인 용어로는 ‘이분설’ (Dichotomy)이라고 한다.  이 같은 견해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의 육체를 창조하신 후 영을 불어넣으셨다는 창세기 2장 7절 말씀과 일치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 중에는 인간이 몸과 영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견해를 가리켜 ‘삼분설’ (Trichotomy)이라고 한다.  이 삼분설은 본래 고대 그리스도인들의 철학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이를 주장하는 자들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과 히브리서 4장 12절을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사실 표면적으로 그  같은 성경 구절들이 인간의 구성 요소로서 영(헬, 프뉴마), 혼(헬 프쉬케), 몸(헬, 소마) 이 세 가지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과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의 근본 의미는 우리의 전인격을 뜻하는 데 있지 인간이 영, 혼, 몸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하는 데 있지 않다.  둘째, 성경에서 영과 혼이라는 단어는 빈번하게 상호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창 35:18↔행 7:59, 전 12:7↔마 6:25).  그러므로 인간은 몸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도 되고 몸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그리스도 (Antichrist)  (0) 2021.08.14
에피쿠레온파 (Epicureans)  (0) 2021.08.08
성경에 사용된 아람어 (Aramaic)  (1) 2021.07.25
영지주의 (Gnosticism)  (0) 2021.07.18
만인 구원론(萬人救援論)  (0) 2021.07.1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근동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① 메소포타미아 서북 지방에서 쓰던 셈어(Semitic)인 아람어 ② 동방계 셈어인 아카드어 ③ 남방계 셈어인 구스어와 아람어 ④ 메소포타미아 서북 지방에서 쓰던 가나안어(이에는 히브리어, 페니기아어, 우가릿어가 속함).  이중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알파벳이 같은데 반해 어휘 및 문법에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아람어는 페르시아 제국 치세 하에 국제어로 채택되었으며 그 결과 이집트 및 인도에까지 전파되었다.  따라서 아람어는 근동 문명의 한 본질적 요소로 위치하게 되었는데 헬라인과 로마인들도 근동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람어를 숙지하여야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자연히 신구약 성경의 기록에 있어서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 직접적인 흔적은 신구약 성경에 아람어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람어 단어 및 문장은 창세기 31장 47절의 ‘여갈사하두다’(증거의 무더기), 렘 10장 11절 그리고 에스라 4-7장의 대부분 및 다니엘 2-7장이 있다.  한편 유대인들이 신약시대에 사용했던 아람어는 통상적으로 ‘히브리어’로 불리던 팔레스틴의 아람어 방언인데, 그중 직접적으로 신약 성경에 사용된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 및 마가복음 14장 36절, 로마서 8장 15절에 나오는 ‘아바’는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달리다굼’(막 5:41)과 ‘에바다’(막 7:34) 그리고 ‘엘리 엘리라마 사박다니’(마 27:46) 등도 아람어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나오는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십옵소서) 역시 아람어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아람어가 성경에 까친 영향은 쉽사리 간과할 수 없는데 A. D. 3세기 이후에는 탈무드에도 아람어가 사용될 정도였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피쿠레온파 (Epicureans)  (0) 2021.08.08
인간의 구성 요소  (0) 2021.08.01
영지주의 (Gnosticism)  (0) 2021.07.18
만인 구원론(萬人救援論)  (0) 2021.07.11
교회의 치리권(治理權)  (0) 2021.07.04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고린도후서 2장에서 바울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었음을 언급하였다(17절).  그런 자들 중 대부분은 영지주의에 물들어 있었으며 그런 이유로 해서 일찍부터 사도들의 경계를 받아왔다(딤전 6:20, 요일 4:1-3).  영지주의는 A. D. 1-3세기에 걸쳐 아시아를 중심 하여 일어난 이단 사상이지만 그 기원은 훨씬 이전으로까지(A. D. 1C) 거슬러 올라간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헬라 철학뿐 아니라 이집트, 인도, 페르시아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기독교의 진리를 합리화시킨 혼합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같은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진리와 상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을 절대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의 인성과 인간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들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물질은 악하고 영적인 것만이 선하다’는 헬라의 이원론에 근거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만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었다(창 1:31).  다만 인간의 범죄 이후 그 모든 것들이 죄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을 뿐이다(창 3:17-18).  그러나 그 모든 것들도 궁극적으로 본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롬 8:18-24).  한편 영지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Basilides와 Cerinthus가 있는데, 후자는 에베소에서 사도 요한을 대항한 자이기도 하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구성 요소  (0) 2021.08.01
성경에 사용된 아람어 (Aramaic)  (1) 2021.07.25
만인 구원론(萬人救援論)  (0) 2021.07.11
교회의 치리권(治理權)  (0) 2021.07.04
복음송 (Gospel Song)  (0) 2021.06.27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비록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을 받게 된다”  이같은 견해를 가리켜 우리는 ‘만인 구원론’(Universalism)이라고 한다.  이 견해를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Origen(A. D. 185-254)이며 알미니안주의의 영향을 받은 18세기경의 유니테리언(unitarian) 파가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그리고 현대 신학의 총아(寵兒)인 Karl Barth(1886-1968)의 신학 사상 역시 만인 구원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면 이 같은 견해가 과연 성경적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비성경적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견해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공의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인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요 3:17), 이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 곧 사탄과 뜻을 같이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만이 가해질 뿐이다(계 20:7-10, 21:8).  그러므로 우리는 ‘만인 구원론’이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그릇된 신학 사상임을 분명히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연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에 사용된 아람어 (Aramaic)  (1) 2021.07.25
영지주의 (Gnosticism)  (0) 2021.07.18
교회의 치리권(治理權)  (0) 2021.07.04
복음송 (Gospel Song)  (0) 2021.06.27
기독교의 물질관  (0) 2021.06.19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