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결혼의 정의에 어긋나는 결혼증명서가 내 이름으로 발급되는 것은 내 양심에 어긋나기 때문에 따를 수 없다.”  이 고백은 동성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법정 구속된 켄터키 주 로완 카운티의 법원 서기인 Kim Davis가 한 말인데, 사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자 사람들은 두 부류로 갈라지면서 한편에서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환영을 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이 타락의 길을 간다고 탄식하면서 모든 교회가 힘을 합쳐 대응할 것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을 통해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말에 의하면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위대한 자유와 사상 속에서 피어난 큰 열매라고 추켜세우며 성경말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성경의 한 구절을 가지고 이천년 동안 벗어나지 못하는 유치한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남성과 여성의 결혼이라는 정의는 좀 구태의연한 표현이기 때문에 가정을 꾸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고 동성애 문제를 종교가 아닌 인권적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들은 “동성애는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죄”(레 18:22)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들의 입장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 주님 앞에서 겁없이 아주 담대(?)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조심해야 하는데(민 14:27), 사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겠지만(약 3:2), 함부로 급한 마음에서 말을 한다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 조급한 생각으로 무엇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고(전 5:2), 입에서 내 뱉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잠언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말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12:36).  다시 말해 입으로 내뱉는 말이 심판의 근거가 되고 그 말을 통해 의롭다함을 받기도 하고 또한 정죄함을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마 12:37).  더 두려운 것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3)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을 쉽게 해석한다면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가 안 되는 것처럼(고후 6:15), 하나님의 자녀는 소속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죄라고 말하는 것을 죄가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모호하게 말하는 것은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고(왕하 5:18), 예수님께서도 동성 간의 결혼을 한 번도 인정하신 적이 없기 때문에(마 19:4-6),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위배가 되는 것입니다(레 20:13, 롬 1:26-27).

 

사실 불신자는 그리스도인과 다르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탓하거나 논할 필요는 없지만 문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생각이나 내뱉는 말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거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회색지대’란 없는데(막 9:40), 목사/신학자 중에 동성애에 대해 중간지대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동성애자를 두 부류로 나누어서 한 부류는 ‘타락한 동성애자들’, 다른 한 부류는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라고 부르면서 타락한 동성애자들은 마땅히 정죄 받아야 마땅하고 타고난 동성애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정을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고 강변하면서도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최종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 권위라고 아이러니한 이상한 논리를 폅니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 권위라는 것을 인정한다면(계 22:18-19), 범죄한 자들을 사람 앞에서 꾸짖듯(딤전 5:20), 동성애가 죄가 된다는 사실을 왜 정확하게 말해주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암 5:13).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지도 않는 타고난 동성애자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을까요?(마 19:4).  분명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창 1:28),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살도록 내버려 두심으로 생겼다고 증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롬 1:24-27).

 

사실 오늘날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짧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인기성 발언하는 사람들이 탁월한 신학자/거룩한 목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만큼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죄라고 말씀하신 것을 정확하게 죄라고 말하지 못하고(겔 33:7-9),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처럼 말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이라는 것입니다(갈 1:10).  즉 세상에 편승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기보다는 인간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느 목사는 자기 아들을 예로 들면서 동성애에 대해 아주 모호한 태도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사실 말장난을 좋아하거나 인기에 편승해서 떠드는 사람치고 회색지대에 서있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분명 성경은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죄라고 말하는데(고전 6:9), 왜 수다한 사람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드느냐는 것입니다(고후 2:17).  다시 말해 돈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을 팔고 다니는 거짓선생처럼(고후 11:13-15), 성경말씀에 인간적인 쓸데없는 생각을 가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처럼(사 30:9-10), 귀에 솔깃한 말이나 거짓된 것을 좋아하는(딤후 4:3), 영적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기독교 안에서 인기 있는 이름난 목사의 잘못된 가르침을 선호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입니다(렘 5:31).

 

무엇보다도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문화축제나 퍼레이드를 하는 목적이 자신들도 인권이 있고 이렇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즉 인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뿐 아니라 잘못된 사랑의 성행위 그 자체도 인정해 달라는 것 아닐까요?  솔직히 그리스도인 중에 동성애자들을 향해 돌 던질만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은 없을뿐더러(요 8:7), 각자의 삶에 자유와 권리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비판하거나 정죄할 수는 없지만(눅 6:37), 그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죄라고 확실히 말해주어야 할 것입니다(유 7절).  이것은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요삼 1:11), 그리스도인으로서, 진리와 비진리 사이에서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할(왕상 18:21), 주님의 자녀로서, 바른 말을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고 결코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딛 2:8).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기 때문에(레 20:7, 13), 주님께서 심판하실 이들을 우리가 판단할 이유가 없고(고전 5:13), 성경에 나오는 동성애 구절들을 언약백성(렘 31:31-34)이 아닌 자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만약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고전 5:12).  다시 말해 언약백성이 아닌 불신 동성애자들은 하나님께 맡기지만 교회 안에 더러운 음행 죄들(고전 6:9)을 짓는 사람인 경우에는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판단 받기를 싫어하거나 더러운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행할 경우 교회는 그러한 사람을 출교하는 것이 성경말씀에 따르는 것입니다(마 18:15-17, 고전 5:13).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정말 동성애자들에게는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놀라운 것은 동성애자로서 오랫동안 죄악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동성애에 강력한 유혹에서 벗어나 결혼해서 정상적이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친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은 그렇게 타고난 것이 때문에 변화될 수 없다고 주장을 하겠지만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에(롬 1:16), 얼마든지 동성애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새롭게 변화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6:11).  솔직히 동성애 세계 속에서 벗어나 하루아침에 새사람이 되어 새롭게 적응하며 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고 무엇보다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좌절감과 사람들로부터 소외된다는 생각, 그리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유혹과 견디기 어려운 자신과의 싸움이 있겠지만, 만약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막 7:24-30), 그리스도 안에서는 얼마든지 희망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번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편에서, 혹은 바알 편에 설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될 것이고(왕상 18:21),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마 6:24),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본색이 진리의 말씀 앞에 들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인해 알곡과 쭉정이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마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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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를 놓고 사람들의 의견이 갈라지는데 주로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이성애자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동성애자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은 존귀하며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모두 주 안에서 하나이고 교회를 포함한 사회 전체는 동성애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심지어 목회자들 중에 동성애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동성애자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더 나아가 동성애는 기도로 변화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치유기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주장들이 동성애자들에게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는 말일지는 모르지만 안타까운 것은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할 목사조차 동성애에 대해 죄가 아닌 것처럼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성경해석을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인 말씀보다 더 높이는 것인데 이것은 목사의 양심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자신의 현재의 위치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어느 목사는 동성애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성경에 치유기도를 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고, 정말 일개 신학자나 목사의 말이 성경의 권위보다 높을 수 있을까요?

 

구약성경에 보면 인간의 결혼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두 사람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간의 사랑과 헌신 속에서 하나의 육체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이고 이 결혼은 인간 사회의 근본요소이며 주된 목적은 아니지만 생물학적인 출산을 결혼 안에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해 부부간의 성적 친밀감을 통해 한 몸을 이루고 사랑하는 가운데 자녀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동성애자를 만드셨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주장인데 사실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이 친히 동성애자(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를 만드셨다는 기록이 없을 뿐더러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만약 남자와 남자끼리 혹은 여자와 여자끼리 만나 결혼해서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일 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한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이들이 결혼해서 살면서 남자나 여자아이를 자녀로 입양을 할 때에 이렇게 입양된 아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이들과 함께 살면서 심한 혼란을 겪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커서 또 다시 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동성애자들의 세계를 알아야 하는데 치유와 축귀사역 그리고 동성애자를 놓고 수십 년간 사역을 하면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Francis MacNutt 박사에 의하면 동성애자 인구의 40%는 콘돔이 쾌감을 반감시킨다고 해서 콘돔 사용을 거부하는 가운데 성행위를 하기 때문에 각종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손상된 부위(직장의 대변이 찢어져 상처로 오염된 곳)를 고칠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있어 항문교접이 매우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행위로 오천 명의 동성애 남자들에 대해 정밀하게 연구한 결과 대다수가 이러한 성행위를 선호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런 항문교접이라는 말이 우리가 듣기에는 역겹고 불쾌하겠지만 이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이야기이며 무엇보다도 이런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수명이 정상적인 사람에 비해 20-30년 정도가 짧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일부일처의 관계를 옹호하는데 R. A Kaslow 박사와 동성애 세계에서 오랫동안 빠져 있다가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목회자의 길을 가는 몇몇 사람들의 또 다른 간증과 글에 의하면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가정보다는 공공장소(극장, 터미널 화장실, 옥상, 후미진 골목, 자동차, 등등)에서 성행위가 일반화 되었으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적개는 50명 많게는 수백 명의 섹스 파트너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편견과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한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자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있고 이들이 하루 속히 구원을 받고 정상적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만큼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동성애자의 인권은 존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행하는 가증스러운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거나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John Stott의 말을 인용하면 ‘인격’과 ‘행위’를 구별하는 것으로 인권에 있어 이들을 무시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저지르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혐오스러운 행위에 대해서까지 묵인하거나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동성애에 대해 옹호하거나 지지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신학교수/목사)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동성애자를 만드셨기 때문에 이들도 한 형제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사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에게 예정론이나 성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격이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에게 한 가지 꼭 묻고 싶은 것은 정말 하나님이 동성애자들을 만드셨다면 그분이 이러한 가증스럽고 변태적인 행위를 조장하시거나 즐기시는 분이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는 패역하고 타락한 시대에 한 가지만큼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동성애 행위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사랑을 빌미로 무조건 품어주고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님이 싫어하시는 죄까지 사랑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비정상적인 행위 뒤에는 반드시 귀신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들이 유일하게 치료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스스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창녀가 어떤 계기가 되어 주님을 만났으면 그 곳에서 빠져 나와야 하고 만약 그곳에 머물면서 그 일을 계속한다면 그는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동성끼리 성행위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 이상 그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문둥병자처럼 간절히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상 예수님이 하실 일이 없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무서운 질병에서 놓여남 받고자 하는 애절함이 있어야 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 세상보다 큰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든지 부부 간의 정상적인 성행위를 떠나 동성끼리 비정상적인 더러운 행위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행하고 죽는다면 이들이 과연 예수님이 계신 그곳에 그분과 함께 머무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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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 있어 사람들에게 말하기조차 꺼릴 수치스러운 것이 있다면 성중독자들이 짓는 ‘은밀한 죄’로 이 죄는 우리의 문화와 사회를 위협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법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이 질병(동성애, 외설물, 자위행위, 관음증, 성희롱, 강간, 간음, 노출증, 전화/인터넷을 통한 매춘, 등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인 중에 10퍼센트 정도는 성에 중독되어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중독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상투적인 모습인 알몸상태에서 트렌치코트만 입고 다니는 노출증 환자와 같이 행동할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 볼 때 지극히 신사적이고 친절한 사람이며 이웃에게 너무나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비추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악하고 더럽고 음란하고 역겨울 정도의(막 7:21-23), 더러운 일을 은밀한 가운데 서슴없이 행하는데 만약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마침내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겔 18:31).  이 문제를 놓고 Merville Vincent 박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인간은 성적 이상자이며 성에 대한 그분의 완전한 이상에서 벗어나는 음탕한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이 세상에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성적인 문제에 대한 정통 유대주의자들의 견해를 들어보면 모든 문제를 인간의 타락과 연관 지을 때 사람의 죄와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구별이 있어야 하며 특히 동성애자들도 우리만큼 귀한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이들의 행위에 있어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이들 역시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John Stott도 동성애에 대해 논의할 때 ‘존재’‘행위’ 즉, 그 사람의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성행위(항문교접)에 대해서는 비난할지라도 그 사람의 생김새나 인격에 대해서는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즉,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과 다를 바 없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며(창 1:27), 그분 앞에 죄인이고(롬 3:9), 성적인 존재라(창 2:24),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죄에 대한 유혹을 받으며(마 6:13), 공중 권세를 잡은 악의 영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엡 6:10-12).  문제는 우리가 짓는 죄는 동성애자의 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칠 때가 많은데 가령 동성애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심각하고 더러운 죄이고(레 20:13), 우리가 짓는 또 다른 성적인 죄는 그다지 심각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요일 1:8-10).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동성애가 죄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동성애만 죄로 여기지 않고 이성애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더러운 성적인 죄(히 13:4),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6장9-10절에 나열된 모든 죄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반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떠나 이루어지는 모든 성적인 행위가 불법인 것처럼(고전 7:1-3), 우리는 동성애를 죄와 질병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악의 세력, 즉 마귀가 그 배후에 역사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고(요 10:10), 무엇보다도 마귀는 질병으로서의(눅 13:10, 16), 동성애를 유발하기 위해 건강하지 못한 가정과 성적인 학대와 수치의 감정과 같은 여러 역학관계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동성애가 선천적이며 유전적이거나 아니면 후천적인 요인으로 인해 형성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귀신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 만큼 확실한 것은 하나님보시기에 비정상적인 성적인 행위 배후에는 귀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고전 7:5).  따라서 성경은 모든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며(창 2:16-17), 특히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체질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 앞에 면제받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애자인 신자가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마 19:6), 배우자이외에 다른 어떤 성적유혹으로부터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고전 7:3), 부단히 싸워 나아가는 것처럼(히 13:4), 동성애자 역시 도덕적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살전 4:3), 본인 스스로가 의지적으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히 12:4).

 

그렇다면 과연 동성애자도 치유를 받아 정상인으로 회복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질병 이전에 반드시 버려야 할 죄의 성향으로 언급하지만(레 18:22), 많은 의사들이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고 있고 반면에 동성애자들 스스로는 선천적이며 유전적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동성애는 타고나서 자신들의 성향을 바꿀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심지어 어느 목사는 동성애자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고 회복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한 마디로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래 전에 Columbia University 교수를 지낸 Robert L. Spitzer 박사는 동성애가 불변하는 특성은 아니기 때문에 성적지향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소위 ‘전환치료’를 통해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다고 처음에는 발표했지만 후에 그는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면서 동성애 단체에게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이 동성애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단체인 Exodus Global Alliance에 의하면 자신의 성적욕망이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바뀐다고 말하면서 동성애 생활방식을 버리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과 성적취향까지 달라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은 이러한 증언들을 일축해 버리고 그들은 원래 진짜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이며 유전적으로 타고난 동성애자에게는 그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만나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요 4장), 동성애자들에게도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미 다섯 번을 결혼했지만 늘 성적인 갈급함을 채울 수 없는 그녀에게 구원의 생수를 주셨을 때 그녀는 결국 성적인 죄에서 놓여남을 받았습니다.  이 문제는 놓고 동성애적 성향은 일시적인 것이지 영구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Francis MacNutt 박사는『Can Homosexuality be Healed?』에서 치유기도가 신실하게 시간을 가지고 이루어졌을 때 매우 높은 확률의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말하면서 악한 영은 실제 존재하며(엡 6:10-13), 사람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문란한 성행위로 끌어들이는 영으로부터 축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John Stott도『True Freedom Trust』에서 발간된 소책자『증언들』에 나오는 사례들에서 “손을 얹고 기도를 받자 성도착의 영이 나를 떠났다. 그날 오후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3년이 넘게 동성애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나는 증언할 수 있다”라는 간증을 소개하면서 Elizabeth R. Moberly 박사의 글을 인용합니다.  “기도에서나 관계에서나 사랑이 가장 기본적인 치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치유하고 구속하는 사랑을 구하고 중재하기를 기꺼이 원한다면 동성애자들의 치유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실재가 될 것이다”  이렇게 이들도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의 놀라운 능력,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할 때 치유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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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남자와 여자의 몸을(창 1:26), 다음 세대를 출산하기 위해 서로에게 잘 맞도록 창조하셨는데(창 9:1), 만약 남자와 남자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성 관계를 갖는다거나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성적행위를 일삼는다면(롬 1:26-27),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창 1:27).  사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논쟁적인 이슈 가운데 하나인 “동성 간의 결혼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Mark Christopher 목사는 『Same-Sex Marriage: Is It Really the Same?』에서 “동성 간의 결혼은 결혼이 아니며 전통적인 기독교적 결혼관과 가족관을 파괴할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W. Norman Pittenger 박사는『Time for Concent』에서 “이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 이성애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기본적으로 타고난 동성애 욕망과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반박합니다.  다시 말해 동성애를 반대하는 Christopher 목사는 한 공동체 사회 안에 두 가지 결혼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Pittenger 박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서로 간에 결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동성애 옹호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지하는 이유는 동성결혼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언약의 보호 아래 성 경험을 누리기를 원하셨는데(창 2:18), 이것은 인간의 성욕은 창조에 뿌리를 둔 것으로(창 1:27), ‘성’(性)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하나 됨과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로(창 2:24),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문제에 대해 John Stott는 『동성 간의 결혼도 가능한가?』에서 창세기 2장18절‘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는 말씀에서 ‘돕는 배필’(동반자)은 그의 ‘성적’(性的) 파트너가 되어 그와 한 몸을 이루어 이를 통해 사랑을 완성하고 자녀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그 결과 생겨난 것이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창 2:24)을 이루는 ‘결혼제도’라고 말하며 이 결혼이라고 하는 성적 만남을 통해 하나가 된 두 사람간의 결합을 ‘신비’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결론짓기를 “이성애 성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이성애 결혼은 그분이 만드신 제도이고 이성간 정절은 하나님의 의도이다”라고 말하면서 오늘날 동성결혼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이 세 가지 목적 모두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같은 문제를 놓고 신학자 Walter Brueggemenn은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그것만이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이룬다고 주장을 했는데 여기서 ‘하나’(창 2:24)라는 단어, 즉 ‘결혼’은 지구상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신비한 결합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고, Tim Alan Gardner 박사 역시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은 최초의 커플에게 서로를 즐기며 그들의 하나 됨을 축하하도록 특별한 선물인 성행위를 주셨다”라고 말했는데 이들의 말을 요약하면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두 개의 성을 창조하셨고 이 남자와 여자 사이를 잇는 것이 그분이 제정하신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유대인들은 부부간의 성관계가 ‘거룩한 행위’ 즉, 혼례 첫 날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말로 표현했으며, Erwin W. Lutzer도 결혼은 두 가지 결속을 만드는데 남녀 간의 헌신과 조건 없는 사랑의 언약이 가져다 준 보호 아래서 성적 친밀감을 통해 둘이 하나의 육체가 된다고 말하면서 『동성애에 대해 교회가 입을 열다』에서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은 다양성과 통일성을 반영하는 성에 대한 하나님의 복된 의도에서 성을 더 멀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으로 결합하고 그 결과로 자녀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남녀 모두 헌신의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여하튼 이성애적(일부일처제) 결혼은 남침례교 Albert Mohler 박사가 말한 것처럼 사회화의 결과물이나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 아니며 성적표현은 오직 이성 간의 결혼 언약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결혼관계에서 벗어난 모든 종류의 성적관계나 행위들, 즉 동성애(레 18:22), 혼전동거(고전 7:1-2), 일부다처제(왕상 11:1-4), 간음(고전 6:9), 강간(신 22:25), 포르노(갈 5:19, 잠 6:25), 수간(신 27:21), 근친상간(레 20:11-17), 매춘(신 23:17), 같은 것들은 성경이 분명히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모든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불법이고 부도덕한 것으로 무서운 심판 아래 놓이게 됩니다(계 21:8).  따라서 성경은 모든 인간은 처음부터 이성애자로 태어났다는 것 이외에 그 어떠한 논리나 이해도 허락하지 않을뿐더러 어느 누구도 동성애는 선천적이며 유전적이라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한 개인에 의한 민권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동성애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죄악시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고(요 3:16-17), 혐오의 대상이 아닌 복음전도의 대상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막 16:16).  그러나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Archbishop of Canterbury George Garey가 말한 것처럼 성경이든, 기독교 전통이든, 결혼관계 밖에서의 성행위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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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Newsweek의 커버스토리는 동성결혼의 성경적 근거를 다루면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동성애가 가증스러운 죄라는 많은 성경구절들을 인용하지만 이들은 이웃사랑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무시하기 때문에 동성애자를 거부하고 증오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기사화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몇 개의 구절에서 남성 간의 성관계를 정죄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고대 유대사회의 규범에 다룬 특정 본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특히 레위기 20장13절에서 레즈비언의 행위에 대한 말씀이 없기 때문에 동성애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없고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은 구약시대에 얽매여 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동성애자들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W. Norman Pittenger 박사는 “기독교의 복음의 요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주신다는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는데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것은 사실이지만(마 11:28), 주님의 사랑이란 삭개오처럼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지(눅 19:1-10), 죄인지를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묵인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Erwin W. Lutzer의 말을 인용한다면 사랑은 모든 악행을 정당화 해주는 면허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의 사건 속에서 오늘날 ‘동성간의 연애’(동성애)를 뜻하는 ‘소도미’(sodomy)라는 단어를 창세기 13장13절과 18장20절 그리고 19장25절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이 성경 기사의 배경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겠지만 문제는 확실하게 소돔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전통적인 기독교 입장은 동성애는 성경적 규범에 반하는 것으로 소돔 사람들이 젊은이와 노인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성연애의 죄악에 깊이 빠져 있어 롯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 두 천사에게까지 그 혐오스러운 행위를 하려다가 심판을 받았다고 해석합니다(창 19:1-5).  물론 이런 해석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상관하리라’(5절)는 말은 “성관계를 가진다”(창 4:1)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두 명의 방문객이 누구인지 “알기 원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구약성경에 히브리어 ‘야다’는 943회가 나오지만 육체적인 관계, 즉 성적인 교접을 의미하는 말은 10회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구절은 “우리가 그들을 그냥 알기 원한다”는 뜻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소돔의 심판은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겔 16:49-50)과 교만과 위선(사 1:10), 그리고 간음과 거짓 때문이라고(렘 23:14), 말하면서 사회적인 무책임과 외지인에 대한 불친절 때문에 멸망당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해석들은 개연성은 있으나 이 일로 인해 소돔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사야 3장9절예레미야 23장14절 그리고 에스겔 16장46-59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더러운 음행을 소돔 지역의 퇴폐적인 성도덕과 관련시키고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사사기 19장22절에 나오는 기브아의 사건을 통해 그 어휘의 용례와 정황을 살펴볼 때에 당시 가나안 지방에서의 동성연애는 널리 퍼져있는 악습일 뿐 아니라 동성애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행위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레 18:12, 20:13),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요구하는 것이 분명 동성 강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창 19:5).  더 확실하게 성경의 글자와 문맥 그대로 소돔이 가증스러운 죄악, 즉 동성애를 통해 심판받은 것을 명백하게 증거 하는 구절을 찾아본다면 아마 유다서 7절‘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동성애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적은 없지만 이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창세기 2장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 이룰 것을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와 계획은 동성간의 결혼이 아닌 이성간의 결혼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조금 더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레위기에서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위협적인 선언들, 즉 ‘너는 여자와 동침함과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것이니’(레 18:22), 그리고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레 20:13)라고 경고합니다.  물론 이 구절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 특히 Peter E. Coleman 같은 사람은 ‘가증스럽다’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도덕보다는 종교적 금기인 ‘우상숭배’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다른 신학자는 레위기에 나오는 율법들은 오늘날 폐지된 구약의 ‘의식법’(히 8:13)에 속하는 부분이거나(갈 4:9-10),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관습이기 때문에(골 2:16-17), 현대의 동성애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구절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해석은 모든 종류의 동성애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신 23:17, 딤전 1:10).  사실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죄의 대가로 당장 돌에 맞아 죽지는 않겠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나와 있고(고전 6:9), 특히 큰 논쟁을 일으키는 구절인 동성애에 관한 로마서 1장26-27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 구절들을 구약성경 레위기에 나오는 구절들과 (레 18:22, 20:13), 직접 연결시키고 있는 것을 볼 때 레위기의 가르침은 신약교회에서도 규범적으로 받아들인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동성애에 대한 욕망 자체를 하나님께 맞서는 개인의 정욕에 의한 반란으로 보았는데(딤전 1:9-10), 그 이유는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질서를 반하는 역겹고 가증스러운 행동일 뿐 아니라(롬 1:24),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창 2:24), 철저히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로마서 1장26-27절의 말씀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논쟁에서 매우 중요한 본문이기 때문에 동성애 옹호자들에게는 큰 걸림돌이 되겠지만 사도 바울은 결코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닌 “부자연스러운 행동” 즉, ‘순리대로 쓸 것을 역리대로 쓰기’ 때문에 상당한 형벌을 받았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이 구절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 중 하나인 John Boswell 박사 역시 바울이 정죄하고 있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아니라 이성애자들이 범하는 변태적인 동성애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현대어/현대인 성경에서 번역했듯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연스러운 법(정상적인 성생활)을 어기고 변태적인 짓(성적범죄)을 저지른” 인간의 부끄러운 행위 자체를 바울이 비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구약 성경은 모든 종류의 동성애적 행위는 하나님의 정하신 성적 질서를 파괴하는 죄로, 인간 스스로가 무절제한 성적인 욕망에 이끌려 살아갈 때 하나님이 내버려둠으로써 생긴(롬 1:24, 26, 28), 무서운 심판의 결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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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coming out)이란 은밀한 성적 취향이나 사상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나와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2000년 가을, 한국에서 커밍아웃한 유일한 방송인/연예인이며 동성애(동성 지향적인/Same Sex Attraction)자인 홍석천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었고, 이미 외국에는 수많은 연예인들(Elton John, George Michael, Ian McKellen, Freddie Mercury, 등등)이 자신을 동성애자인 것을 스스로 밝히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미국교회에서 많이 불리워지는 찬양 중에 하나인 “Glory to God Forever”를 부른 영국출신 찬양 사역자인 VIcky Beeching 역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혔는데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과 그에 따른 고민과 인생 이야기, 그리고 처음 여성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12살 때라고 말하면서 남학생과 사귀고 싶었고 그들을 좋아하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적 성향을 그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후에 오순절 교회를 다녔고 현재 성공회에 다니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그것으로 인한 외로움과 고독감을 극복하기 위해 오직 일에만 매진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동성애적 성향을 갖는 원인에 대해 하나는 ‘선척적인’ 요인에 의해 유전적으로 타고 난다는 견해와 다른 하나는 ‘후천적인’ 요인으로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는 견해인데 먼저 동성애를 유전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나의 성향을 바꿀 수 없을뿐더러 나는 나의 본성적인 것을 이대로 인정해야만 한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다시 말해 동성애 성향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성적 친밀함을 누릴 권리와 동성애적 생활방식을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선택에 따른 생활방식이 아니라 유전적 원인으로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낸다면 틀림없이 동성애 사회에 커다란 유익과 동성애의 부도덕한 오명을 벗을 수 있기 때문에 소위 ‘게이 유전자’를 찾으려고 열심히 연구를 하지만 지금까지 유전적 이론을 입증할만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춘기에 이른 아동이 환경적 요인에 따라 ‘동성애자’나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예를 들어 어릴 적 성장과정에 있어 부모로부터 사랑과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같은 또래의 집단적인 영향을 받아 동성애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지만 이것 역시 개연성이 있는 하나의 심리적인 이론일 뿐 ‘정설’(定說)은 없다는 것입니다.

 

Jeffrey Satinover 박사는 이 문제를 가지고 『Homosexuality and the Politics of Truth』에서 “동성애가 유전적인가 아닌가, 타고난 것인가 심리적인 것인가 택한 것인가 혹은 사회 때문에 인가를 단순히 단정 지으려는 것은 미성숙한 것이고 대부분의 증명들은 부정확한 것들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동성애가 유전적 요인이거나 후천적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연구 결과는 명백한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거나 신뢰할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군가 말했듯이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짐승이 되는 경우는 자신의 절대적이고 숭고한 가치 기준을 망각하거나 또는 그것에 대한 복종 의지가 상실되는 경우라고 했는데 C. S. Lewis는『인간 폐지』에서 탁월한 논리로 이렇게 적어 내립니다.  “그 어떤 재간을 부려도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심리학적 진술에서 ‘나는 이 충동에 따라야만 해’라는 실천적 원리를 도출해 낼 수는 없다. 본능에 순종하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순종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본능 역시 그렇다. 우리의 본능은 전쟁 중에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자신은 성적 친밀함이나 자기표현으로 동성애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권리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본인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지(롬 1:26, 약 1:15),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살전 4:3).

 

분명 성경은 결혼하지 않은 미혼 남녀에 대해 성적순결을 지켜야 하고(딤후 2:22), 결혼한 사람은 성적정절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데(히 13:4), 예를 들어 우리가 특정한 성적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롬 6:12), 자신의 생활방식과 행동에 대해서는(고후 5:10), 본인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갈 6:7).  사실 아담의 타락을 통해 모든 인간은 죄를 사랑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고(롬 5:12), 이 타락한 욕망을 풀기 위해 여자들은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롬 1:27), 일어나 부끄럽고 가증스러운 일을 행한다면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롬 1:32).  따라서 성욕이 유전적이든 후천적이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창 6:2), 창조된 피조물이며(창 1:27), 하나님은 그 선택에 대해 우리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 것이고(롬 14:12), 만약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교회나 신자들이 있다면 이 문제를 Christianity Today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한 뮌헨대학 신학 교수인 Wolfhart Pannenberg 박사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동성애 행위를 명백하게 거부해야 할 것을 평가하고 있다. 동성애 결합을 결혼과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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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연방대법원에서 벌어졌던 “Lawrence v Texas”사건에서 6대3으로 텍사스 주의 ‘소도미법’(Sodomy law), 즉 동성 간의 성적 행위를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는데 당시 대법원은 결혼에 관계된 개인적인 결정과 개인적 취향에 따른 성행위는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고 같은 해 11월 매사추세츠 주 최고법원 판사 네 명이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막는 일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판결 이후 나머지 주들도 속속 ‘소도미법’을 폐지시켰는데 오늘날 미국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주는 하와이를 비롯해 뉴욕, 워싱턴,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델라웨어, 아이오와, 메인, 뉴햄프셔, 뉴저지,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미네소타, 등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을 대표하는 장로교단 중에 하나가 2014년 6월19일 221차 총회에서 목회자가 동성결혼을 주례할 수 있으며(동성애자의 결혼을 법이 허용하는 주 교회 내에서 집례 할 수 있다는 안을 통과시켰고), 결혼의 주체를 “남자와 여자 사이”(between a woman and a man)가 아닌 “두 사람 사이”(between two people), 즉 ‘사람’과 ‘사람’으로 바꾸는 안을 통과시켰고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낙태 도중에 살아서 태어난 아이를 처분(살해)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결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런 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들이 교단을 떠나지 못하고 총회 결정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사실 이들이 교단을 떠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만약 교단을 떠나기 위해서는 교회가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는데 문제는 재산과 건물을 포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교단 법에 따르면 소속 교회의 건물은 원칙적으로 교단에 속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교단을 탈퇴하려면 노회와 재산 분배에 대한 논의를 거치거나 재산 일부(건물 반납)를 포기 혹은 부과된 부담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 일례로 미네소타 주 미네아 폴리스에 있는 Hope Presbyterian Church는 교단을 떠나는 조건으로 120만 불 상당의 지교회 건물을 포기했고 같은 교단에서 9번째로 큰 대형교회 중의 하나인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Menlo Park Presbyterian Church는 2012년에 설립된 신생 보수 교단인 Evangelical Covenant Order of Presbyterians로 옮기면서 노회에 약 900만 불이란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는 대가로 교회 재산 전체를 유지한 채 교단을 탈퇴했습니다.  한마디로 건물과 돈에 대한 욕심을 과감하게 포기한 교회만이 이 교단을 떠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교회는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편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동성애를 죄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는 “동성결혼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 논쟁에 대해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있는 각 교단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나누어지는데 남침례교(SBC), 연합감리교(UMC), 미국침례교회(ABCUSA), 전미복음주의협회(NAE), 하나님의 성회(AG), 미국개혁장로교(RCA), 등은 반대 입장을 확고히 했고 반면에 미국루터교(ELCA), 미국장로교(PCUSA), 성공회(Episcopal Church)의 경우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같이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성결혼을 찬성하고 지지했습니다.  John Stott는 이런 문제를 놓고 오늘날 현대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윤리적 도전 가운데서 동성애 논쟁만큼 급진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타종교 가톨릭 그룹인 “Call to Action”에 의하면 동성애는 죄라고 전통적인 자신들의 입장을 강하게 고수해 왔던 로마 가톨릭 교회조차도 미국에 있는 사제 중 약 40퍼센트가 성향에 있어 동성애자라는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에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2003년 미국천주교(Catholicism) 주교 의회에서 발표한 “동성간 결합(Homosexual unions)은 결혼이라고 불릴 수 없고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동안 신뢰하는 가운데 맺는 관계”라는 성명을 뒤집어 엎은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동성애에 대한 문제는 과거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았던 현상이었지만 이것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두 부류로 갈라지는데 한 부류는 동성애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Homophobia’, 즉 ‘동성애 공포증’ 혹은 ‘동성애 혐오’를 갖는 사람들과 다른 한 부류는 ‘Homophilia’, 즉 동성 간에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면 결혼을 해도 무방하다고 보는 ‘동성애 옹호’자들로 나누어집니다.  여기서 동성애 공포/혐오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동성애자들이 비도덕적인 행동(항문교접)과 무서운 전염병(에이즈)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심한 거부감을 갖는 것이고 반면에 동성애를 애호하는 자는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는 것 같이 서로 사랑하고 헌신하는 관계라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없으며 누구와의 성관계를 갖는 일에 있어 정부와 사회는 개인의 성적취향을 막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문제는 선과 악에 속하지 않는 제3의 영역 ‘아디아포라’(adiaphora), 즉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립적인 문제가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레 20:13, 롬 1:27), 물론 동성애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아니지만(요일 1:9), 만약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짓임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레 18:22).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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