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병자들을 치료하신 적이 있으셨는데(마 4:24), 어떨 때에는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기도 하시고(요 9:6), 때로는 안수기도(눅 13:10-13)와 믿음의 고백(막 10:46-52)을 통해서, 혹은 순종함(눅 17:11-19)과 꾸짖거나(막 1:25), 손을 잡으시므로(마 8:15), 시공간을 초월해서(마 8:5-13),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과 육체의 질병 문제를 완벽하게 고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누가복음(눅 5:17)과 사도행전(행 10:38)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치료하신 것은 사실이지만(눅 4:18-19),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육체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 질병에 대한 인식을 영구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치의 병에서 고침을 받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에서 나오는 삼십 팔년 된 병자에게 하신 말씀처럼(요 5:14), 죄 속에 계속 머물러 생활하거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계 2:21-23), 들릴라에게 머리를 밀린 삼손(삿 16:20)과 초심을 잃은 사울 왕 같이(삼상 16:17-26), 언제든지 성령의 은혜와 영광이 떠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삼상 4:21).  물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 중에 요한복음 10장28절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만약 그분께서 싫어하시는 죄 가운데 계속 머문다면(합 1:13), 성령의 임재와 능력은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시 5:4).


사실 주의 백성들이 출애굽기 20장1-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게서 떠나 그를 대신하여 다른 것들을 추구하거나 사랑할 때(민 25:1-3),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서 자비하신 임재와 은혜를 거두어 가십니다(렘 1:16).  이것은 한 개인이거나(왕상 16:30-31), 혹은 한 민족 전체가 될 수도 있는데(출 32장), 우리는 이것을 구약성경을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민 14장).  먼저 갈대아의 느부갓네살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전국토가 황폐하여짐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문인 시편 74편은 이스라엘의 역사상 배교의 시기 동안에 쓰여진 것들 중에 하나인데, 이 시편 한 구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거부하시고 그분의 능력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부의 적들에 의해서 살육당하고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애가의 성격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9-11절).  그 당시 시편기자에 따르면 기적적인 표적들과 선지자 사역의 부재는 이스라엘 안에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는데 그것은 그 땅에 대한 심각한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교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또한 그분의 기적적인 능력을 철회하도록 만들어 버렸으며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시 77:7-14).  환언하면 시편기자는 그의 시대에 기적들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태도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주의 백성들의 배교 때문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종교적인 배교의 결과에 대한 최고의 예증을 사사기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고, 사실 사사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네 구절들로 된 사시적인(cyclical)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교 기간 동안 하나님의 임재가 자신들에게서 떠나는 것을 경험하고, 둘째는 그로 인하여 이방인 압제자들에게 넘겨진 가운데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으며(삿 6:13), 셋째는 그들이 전심으로 회개하고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를 보내주셨고(삿 13-16장), 넷째는 사사들(구원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부의 적들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금 사사기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것과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가장 분명한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배교’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의 배교는 자주 우상숭배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대하 34:25), 반면에 사도 바울은 신약에 와서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경고하고 있는데(골 3:5), 사실 인간이 이러한 탐욕에 사로잡힌다는 자체가 바로 실제로 우상숭배의 한 형태이고, 만일 집착한다면 성령의 임재를 말살시킬 것이고 결국에는 교회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잃게 할 것입니다.  다시말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말로 성령을 심히 거역하는 이유도 있겠지만(마 12:32), 무엇보다도 세상 욕심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식의 배교는 가령 어떤 신자가 부도덕하거나 음란한 것에 열중한다면 그는 도덕적인 배교를 하는 것으로 성경은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요일 1:6).  한 마디로 배교는 본질적으로 순결함의 상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죄 가운데 산다면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교리적으로도 배교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사탄에게 내어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신학자/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문제들로(딤전 1:19-20), 예수님의 신성(요 1:1)과 믿음만을 통한 칭의(롬 5:1)와 대리적 속죄(벧전 1:18), 동정녀 탄생(마 1:18)과 그분의 육체적 부활(행 1:3)과 육체적으로 다시 오심(딛 2:13), 그리고 천국(눅 23:43)과 지옥(막 9:48), 성경의 권위(딤후 3:14-17)와 성령의 은사(고전 12-14장) 등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교회나 죽은 전통을 강조하는 교회들은 성령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도록 할 수 없습니다.  아마 이러한 교회들 가운데서 치유와 기적들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물론 성령의 능력은 아마도 이들이 배교하기 시작한 후 얼마동안은 개인이나 공동체 안에 머무를 수도 있겠지만 노아의 홍수 때처럼 하나님의 인내가 다하는 그때가(창 7:1-5), 그분의 임재와 능력이 떠나는 때이고 심판이 시작되는 때이기도 합니다(창 7:10-12).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면(요일 2:15),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실 것이며 성령의 임재는 떠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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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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