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정이 생긴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체험이 신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영적으로 건전한 상태에 있다고 크게 확신한다는 사실은

그 감정이 바른 것인지 또는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표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성도들 또는 성경에서 특별하게 취급되는 성도들에게 확신이 있었다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가장 명백하고 확실한 방식으로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니엘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특별한 은혜를 계시하신다고 증거 하셨다.  욥은 자신의 신실함과 정직함을 최고로 확신하고 그것을 자신 있게 말했으며(욥 19:25-27), 다윗은 시편 전체에 걸쳐 주저 없이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그분을 자신의 분깃, 유업, 반석, 방패, 구원이며 높은 망대와 같으신 분으로 묘사한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진실과 진심으로 행하였음을 하나님께서 아시지 않느냐고 호소한다(왕하 20:3).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서신에서 주님이시자 왕이시며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와 특별한 관계라는 것을 언제나 확실하게 말하고 자신이 장차 받을 보상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자신 있게 말한다(갈 2:20, 빌 1:21, 딤후 1:12, 딤후 4:7-8).

 

그리고 그리스도가 신자 안에 계신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 것은 신자에게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일이며 그들이 비난 받을 이유가 된다고 성경을 말씀한다(고후 13:5).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위해 준비하신 상급을 확신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크게 책망 받아야 할 만큼 나태하다는 증거라고 성경은 암시한다.  왜냐하면 사도는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라고(고전 9:26),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신앙의 구원이 주는 은혜가 유익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분명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알게 되는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2:12, 요일 2:3, 5, 3:14, 19, 24, 4:13, 5:2, 19).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감정이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이 위선자이며 그들의 감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있는 감정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영적으로 좋은 상태에 있으며 자신들의 감정은 신령한 것이라고 넘치게 확신한다는 사실은 그 사람들이 성도이며 그들의 감정은 은혜로운 것이라고 판단내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이 보여준 태도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성도라는 사실 그것도 가장 탁월한 성도라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갔으며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서 그들의 눈을 높이 올려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다른 사람들을 구별해 주신 것을 감사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소경이며 은총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암시했을 때 그런 암시를 경멸했다.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요 9:40).  만일 그들이 세리의 심령과 비슷하게 확신했다면 그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을 버리고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소망하는 사람이 확신하는 것과 더 닮았을 것이다.

 

자기의 업적과 대단한 체험,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체험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며

신앙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부도덕함보다 하나님의 눈에 더 혐오스러운 것이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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