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더러 ‘상한 갈대’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농부의 고대하던 쌀은 자라나지 않고 논에 갈대만 무성히 핀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 갈대가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부산 ‘을숙도’인가 하는 데를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놀러가서

거기에 핀 갈대를 보는 것은 멋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쌀이 자라야 할 그 자리에 무성하게 피어난 갈대는

농부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갈대 같은 사람이라면 벌써 다른 사람에게 거치는 사람이 되고 있고,

볼 상 사나운 사람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우리더러 ‘꺼져 가는 등불’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꺼져 가는 등불은 주위를 제대로 밝히지 못합니다.

제 구실을 못하므로 심지가 타면서 연기가 잔뜩 피어 나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눈물 나게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눈물짓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칙이 무서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구든지 죽기 전에 꼭 심은 만치 거두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정말 사람을 환장(?)하게 만듭니다.

바로 우리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고 아픔을 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우리 더러 하나님께서는 엄청나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기는 커녕 “저 놈 누가 안 잡아가나!”하고

이를 갈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 하나도 제대로 사랑 못해서

때마다 그들 마음을 박박 긁어 놓는 나에게 그분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도저히 연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와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과 도대체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뭐, 좀 그럴 가능성이 있으면 시도라도 해보겠는데,

이것은 완전히 ‘맹탕’입니다.

 

나는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등불인데,

그런 나에게 성경은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두 극단에 대한 갈등!

바로 이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만

원수만 보면 혈압이 오르고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위장도 튼튼한데 울화통이 치밀어 오릅니다.

나는 도저히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그러기에 성령의 도와주심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마음,

이 마음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이 갈등을 붙드시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아무리 세게 기도해도 하나님은 어지럽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그분은 반드시 주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사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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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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