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왼쪽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면서 손으로 만져보면 무슨 딱딱한 것이 있다고 해서 아내와 같이 만져보니 탁구공보다 약간 작은 종양(tumor)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프면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저희 가족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기에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와 함께 딸에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이 종양을 제거해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요 14:12), 그분이 하셨던 것처럼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깨끗하게 고침 받을 것을 명령했습니다(눅 4:39).  물론 기도를 해도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눅 5:17, 고전 12:11), 금방 나을 것 같았는데도 무려 2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여전히 종양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 하던 대로 기도만 하고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하루는 큰 딸이 “아빠, 종양이 없어졌네!” 그러기에 손으로 만져보니까 깨끗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종양을 제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데 이 일을 통해 한 가지 느낀 것은 내 자녀가 종양 때문에 신경을 쓰고 손으로 누를 때마다 아프다고 할 때 사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 질병(종양)으로 인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사 53:5), 신약에 와서 마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주님이 우리의 연약한 육체의 질병을 다 짊어지셨다고 기록했으며(마 8:17), 베드로 역시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고 증거합니다(벧전 2:24).  실제로 예수님 자신도 공생애 사역기간 동안 삼분의 일은 병자와 축귀사역에 시간을 보내셨는데(마 4:23), 만약 병자를 고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이 아니라면 승천하실 때 마지막 지상명령에 치유와 축귀사역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하고(막 16:15-18), 무엇보다도 병든 자들을 위해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약 5:14-16).  그리고 요엘서에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욜 2:28-29)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오순절 날 베드로는 이 말씀이 성취됐음을 선포했습니다(행 2:16-18).  이렇듯 구약시대와 달리 이제는 성령의 능력이 주의 백성 모두에게 임하게 되어 병 고치는 것과 귀신 쫓는 것, 그리고 예언과 주님의 음성 듣는 것과 환상과 꿈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막 16:17-18, 행 2:17-19).  만약 이러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비틀어진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아직도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고전 2:14).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성령의 능력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칼과 방패는 들었지만(엡 6:16-18), 전혀 사용할 줄을 모르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더라도 마음에 기쁨이 없이 무엇인가 눌려(행 10:38),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평강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하는데(벧전 2:9), 왜 같은 예수를 믿으면서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데 한사람은 영혼만 구원받고 육체는 질병으로 고생하며 생활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건강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어느 사람이 영육이 강건한 사람입니까?  만약, 온 몸에 각종 질병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님이 채찍을 맞으실 필요가 없을 것이고 성경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하신 것을 고치시고…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마 4:23-24), 이렇듯 예수님은 다양한 종류의 병과 여러 가지 유형의 질병들을 이미 고치셨기 때문에(마 9:35, 10:1, 막 1:34),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목회자들 중에 이사야 53장5절 말씀을 오직 영혼구원으로만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치유란 육체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원어에는 온전함으로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치유란 하나님의 창조목적으로 삶의 모든 분야가 회복되는 것을 말하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육체와(출 23:25, 신 7:15), 감정과(시 147:3, 사 61:1-3), 영이(렘 3:22, 호 14:4), 모두 회복하기를 바라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즉 헬라어 ‘소조’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110번 이상 나오는 단어로 ‘영혼구원’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2장8절에 나오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소조’로 사용하고 있고, 의사를 잘못 만나 돈을 탕진하고 몸을 망친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온갖 고통을 당한 여자가 예수님께 고침 받을 때 사용된 단어도 ‘소조’이고(마 9:21), 거라사 지방에서 평생을 귀신들려 벌거벗은 몸으로 집에 거하지 않고 무덤 사이에 살면서 고통을 당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귀신에게 완전히 놓여남을 받을 때 사용된 단어 역시 ‘소조’입니다(눅 8:36).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소조)은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육체의 질병에서의 고침과 귀신에게서의 자유함을 얻는 “전인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환언하면 신약성경 요한삼서2절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영혼구원뿐만 아니라 육신의 형통함과 육체의 건강까지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 중에 자녀가 질병으로 고생하며 사는 것을 원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아마 모든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사회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가 자녀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한 마음도 똑같으실 것입니다(마 7:9-11).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요한삼서 2절).  만약 자신이 낳은 자녀가 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데 그것을 마음 아파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아마도 그 자녀를 사랑하지 않거나 아니면 자신이 낳지 않은 자녀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육신의 아버지 이상으로 우리가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삶을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병들어 살 수도 있겠지만(요 11:4),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요 9:3). 우리 모두가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막 3:1-6).  가령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이나 백부장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이들이 주님께로 나아가면 고쳐주실 것을 믿었을 때 예수님은 이들의 질병을 깨끗하게 고쳐주셨는데(막 7:24-30, 마 8:5-13), 하물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놀라우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주의 자녀들이 육체의 질병에서 고침 받기를 원한다면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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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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