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비롯한 내륙의 복음전도자들은 말세에 나타날 성령의 놀라운 임재와 은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인 Charles Spurgeon은 1857년 『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예언적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이제 수년 안에 언제가 될지 어떤 방식일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령이 부어지게 될 것이다. 사역자들은 단조롭고 틀에 박힌 방식으로 설교를 하고 또 설교를 해서 아주 약간의 변화만 일으킬 뿐이지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열리기 바라고 지금보다 더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원하며 성령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임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위해 왕래한다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주님을 아는 지식이 이 땅 위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러한 성령의 역사를 목격하게 되리라는 확신에 눈이 뻔쩍 뜨인다. 자녀들은 예언을 할 것이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때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그분을 경험하는 일이 거의 없을뿐더러 시간을 들여 성경에 이러한 경험이 있는지를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이러한 경험을 이야기하면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는 영적세계에 대해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신학자나 목사의 어설픈 주장이나 서적, 그리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닌 신빙성 없는 자료를 수집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쉽게 정죄하며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지 자신에 관해서 관념적으로만 아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호 6:3, 6), 그분이 우리 안에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경험한 것이 그분의 임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의 오감으로 분별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듯이(요 10:27),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우리는 실제로 몸으로 느끼거나 감지할 수 있다(사 6:5).  마치 다니엘이 하나님의 분명한 임재를 느끼는 것처럼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성령이 다니엘에게 임하여 환상을 전할 때 그 임재 때문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환상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임재가 얼마나 강했던지 육체적이고 감정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도망을 가듯 숨어버렸다(단 10:7).  반면에 다니엘은 육체에 힘이 빠져 약해지고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어 땅에 쓰러져 떨림과 흔들림의 반응을 보였다(단 10:8-10).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분 자신을 이런 식으로 알리셨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기도 하다(출 20:18-20, 삼상 19:18-24, 사 6:1-5, 렘 23:9, 겔 1:28, 행 2:1-13, 계 1:9-17).  다시 말해 ‘약해짐’, ‘쓰러짐’, ‘떨림’, ‘취함’ 등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드러난 육체의 반응들로 인간의 몸은 유한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이런 ‘품위 없는’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교회사에 걸쳐 특별히 신앙부흥의 기간 동안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거룩한 사역자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났던 현상들이기도 하다.  먼저 1730년대 후반과 1740년대 초에 있었던 영국 신교의 신앙부흥 기간 동안 John Wesley는 수많은 외적인 표적들과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에 의해 여러 가지 육체적 반응이 그가 전도하는 동안에 일어났다.  1739년 6월 17일 Wesley가 야외에서 설교하는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The Works of John Wesley, 3rd Edition』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크게 외치고 울면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의 사람들은 몸이 구부러졌고 그들에게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떨며 진동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격렬해서 네다섯 사람이 그들 중의 한 사람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5개월 전인 1739년 1월 1일 일기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강하게 역사해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많은 사람들이 마룻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Wesley가 설교 도중에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본 것은 그가 목회를 시작한 지 14년이 되는 해였다.  이 쓰러지는 현상은 Wesley가 새로 건설된 식민지 조지아 주에서의 선교활동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후 1738년 5월 24일 9시 15분 전 “이상하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 유명한 Aldersgate 체험으로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받고 나서부터였다.

또한 Wesley의 여행기록 일기 『The Journal Of The Rev. John Wesley V5』에서는 “화요일 뉴게이트에서 설교하다가 나는 그들에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실 것인지를 묻는 기도를 하도록 요청했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이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땅 위로 무너져 내렸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쓰러졌다. 한 사람이 크게 울부짖었다. 우리는 그녀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은 그녀의 무거운 짐을 희락으로 바꾸어주셨다.” 그는 연이어 “4월 말에 이르러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에 사로잡힌 많은 사람들의 울음이 어떤 이들을 불쾌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월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웃음에 대해 전보다 더 많이 불쾌해했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통곡과 울부짖음, 구원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을 부르는 부르짖음에 파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들을 땅에다 내던지시거나 그분의 임재 앞에 떨며 통곡하고 울부짖는 것, 그리고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말씀처럼(요 7:38), 목에서 나오는 웃음이 아닌 배(belly)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주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사 61:3).  하지만 성경에서는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현상이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쓰러지기도 하며(시 119:120, 렘 5:22), 또 다른 경우 몸에 힘이 빠지거나(단 10:8), 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Wesley가 설교할 때마다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동료 중의 한 사람인 John Cennick의 말을 Arnold A. Dallimore의 저서 『George Whitefield』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Wesley가 이러한 현상을 장려하는 것을 보자 거기에 반대하여 감리회를 떠나 버리고 말았다. 나는 종종 그런 현상이 사탄의 역사가 아니라는 주장에 의문을 가졌고 하나님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Wesley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실 Cennick보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던 사람은 동료 설교자이며 친구인 George Whitefield였다.  그는 Wesley의 집회에서 보고되는 현상들을 듣고 심각하게 우려했지만 정말 아이러니컬하게도 Whitefield가 설교할 때 그러한 현상이 똑같이 일어났다. 

Wesley는 1739년 7월 17일 그의 일기 속에서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토요일에 Whitefield와 나는 하나님의 내적역사와 함께 매우 자주 외적으로 나타나는 표적에 대하여 토론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반대가 주로 사실상 조잡한 허설에 근거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날 그는 이 문제를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가 모든 죄인들을 그리스도를 믿도록 초청하기 시작하자마자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그 앞에서 꼬꾸라졌다. 그중 한 사람은 아무런 동작도 없이 쓰러졌고, 두 번째 사람은 몹시 떨고 있었고, 세 번째 사람은 온몸에 강한 경련을 일으키며 신음소리 밖에 내지 못하고 있었다. 네 번째 사람 역시 똑같이 경련을 일으켰고 큰 소리로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러면서 Wesley는 이런 말로 그날의 일기를 맺었다.  “이때부터 나는 우리가 그분의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을 이끌어 가시도록 해드려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만약 Wesley와 Whitefield가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이러한 사역을 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겠느냐는 것이다.  분명 누군가 가짜 부흥운동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사악한 이단으로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의 집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기괴한 현상들, 소리 지르고, 울고, 흐느끼고, 통곡하고, 쓰러지는 것들이 녹화되어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전파를 탔을 것이다.

Wesley와 Whitefield의 집회는 성령의 운행하심에 의하여 강력한 감동(감정)을 불러오는 놀라운 능력을 수반하였기 때문에 만일 그 당시에 방송이 있어 오늘날의 현실로 본다면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이 수도 없이 올라와 “귀신의 역사니, 늙은 사도 운동이니” 하면서 이들을 정죄하며 침을 튀겨가며 비난하기에 바빴을 것이다(마 12:34).  솔직히 말해 목회를 못하는 목사들이 이 짓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당시 사역을 하면서 온갖 중상모략과 비방을 당한 역사적 인물들이 오늘날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대각성 운동이 처음 세간에 알려졌던 것처럼 그런 ‘대혼란’이 다가올 때 거기에 마음을 열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은혜를 받는 자는 소수이지 다수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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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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