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거부하고 납득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말씀하신다는 예언의 은사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갈등을 겪고 난 후에 뒤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는 성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에 대해 환영하고 인정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 예언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오늘날 현대교회의 현실이고 무엇보다도 ‘예언’한다고 하면 점쟁이가 점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한 고백은 나 자신도 오래 동안 그런 생각과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예언하는 사람을 만나면 미혹의 영에게 사로 잡혔던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예언을 한다는 사람들의 삶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실망했기 때문인데(마 7:20), 여기서 한 가지 깨닫지 못했던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사들 중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약 1:17), 예언하는 사람의 열매 맺지 못하는 행동을 보고 하나님의 주신 은사까지(고전 12:7), 잘못된 것으로 바라보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잘못된 생각과 판단 그리고 성령의 은사(엡 4:7)에 대한 무지함에 대해 철저하게 회개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내 자신이 얼마나 성령의 은사에 대해 무지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강하게 새롭게 부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사도행전 2장17-18절에서 ‘내가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성령이 임한 결과 중 하나는 예언의 은사이고(고전 12:10),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롬 8:14),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요 10:27).  한 마디로 베드로처럼 예언의 말씀을 듣고 예언적인 꿈을 꾸며 환상을 보게 되는데(행 10:9-16), 예언은 성령께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계시를 적절한 때 교회에 적절한 방법으로 전하는 것을 뜻합니다(고전 14:24-26).  이 예언에 대해 Jack Deere“예언은 하나님이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하시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하며, Peter Wagner“예언은 영적으로 감동된 발언”이며, Wayne A. Grudem“예언은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마음에 주신 것을 말함”이라고 정의하고, Calvin 역시 고린도전서 12-14장을 해석하면서 “예언은 하나님의 은밀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계시하는 독특하고 탁월한 은사”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말을 요약하면 예언이란 Gordon Fee가 말한 대로 “회중의 건덕과 격려를 위하여(고전 14:3), 집회시간에 구두로 전달된 성령의 감동된 자발적이고 알아들을 수 있는 메시지”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계시 받는 것이 가능한지를 문제 삼으면서 교회 안에 예언의 역할은 끝났다고 주장하는데, 물론 오래 전 개혁주의 입장에서 나 자신도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이들의 고집하는 주장을 이해하겠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8-10절에서 ‘온전한 것이 올 때까지’ 예언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구절에서 ‘온전한 것’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보듯 서로 알게 된다고 말하는데(고전 13:12),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Grudem은 얼굴과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구약적인 표현으로(창 32:30, 출 33:11, 신 5:4),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며,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말도 주님의 재림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Charles C. Ryrie 역시 온전한 것은 주님의 재림을 뜻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더 이상 예언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우리가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하게 되고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만큼 우리도 주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예언은 주님과 그 백성 사이의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고(요 10:2-5), 성경은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믿는 자 모두의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요 10:27).  한 마디로 양이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입니다(요 10:16).

 

그러면 여기서 오늘날에 하는 예언이 성경에 첨가돼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게 되는데, 사실 현재 주어진 예언적인 계시는 성경의 계시와 전혀 다르고 그 범주도 다르며, 이 예언의 말씀은 “현재의 말씀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한 특별한 방향 계시”로 만나처럼 오늘에만 적용되는 반면 성경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로 모든 상황에 다 적용됩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예언은 신뢰적인 측면에서도 성경과 다를 뿐 아니라 이 예언은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의 그릇을 통해 주어지고 말하는 사람의 성품에 따라 오염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언은 반드시 분변해야 하고(고전 14:29),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만을 취해야 합니다(살전 5:20-21).  이렇게 바울이 “분변하고,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했다면 예언에는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는 것도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듣고 좋은 것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인데(딤후 3:16-17), 여기서 ‘영감’이란 하나님의 진리가 사람을 통해 주어졌지만 초자연적인 보호를 입어 혼탁함이나 오류가 전혀 없습니다(벧후 1:20-21).  즉, 성경의 원본에 적힌 글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뜻을 정확히 적은 것이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은 시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1세기에 성경기록은 마감되었지만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통해 계속 말씀하고 계시고, 만약 예언이 필요하지 않다면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하려고 하라’(고전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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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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